강추위에 구수한 선짓국밥, 속이 확 풀립니다

해장국으로 선짓국만한 게 있을까요

등록 2017.01.17 10:22수정 2017.01.17 10:2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구수한 선짓국밥으로 속이 확 풀립니다. ⓒ 전갑남


한겨울의 다른 이름을 동장군이라 부릅니다. 사람이 맞서 싸울 수 없을 만큼 위세를 부리는 겨울 한파를 의인화하여 부르는 말일 것입니다.


요 며칠 매서운 동장군이 엄습해왔습니다.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에다 바람까지 씽씽 붑니다. 체감 온도는 더욱 낮아졌습니다. 피부 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파고듭니다. 한겨울 예행 연습을 이제야 끝내고, 본격적인 겨울 한복판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날이 하도 추워 바깥바람 쏘이기가 싫습니다.

예전 한파가 몰아쳐 아랫목 구들장 신세만 지고 있으면 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놈아, 시한에 방안퉁수처럼 처박혀 있지 말고, 밖으로 싸돌아다녀! 마실이라도 다녀야지!"

시한은 겨울을 뜻하고, 방안퉁수는 추위 때문에 문밖출입을 하지 않을 때 듣는 말입니다. 고향 사투리를 떠올리면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해장국으로 선짓국은 최고


아내는 한나절 내내 컴퓨터 앞에만 있는 내가 딱한 모양입니다.

"우리 해 나니까 자전거라도 탈까?"
"이 사람, 얼마나 추운데 자전거를 타!"
"아님, 이웃집에 마실이나 가시든지?"

오후 늦게 아내 등쌀에 마실을 갔습니다. 이웃집 아저씨는 친구라도 만난 듯 나를 반깁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꺼냅니다.

"우리 선짓국이나 먹으러 갈까? 마누라도 없고, 점심도 건너뛰고! 속이 출출하네!"
"아주머니 어디 가셨나 보네요. 선짓국 좋죠! 나도 뜨끈한 게 생각났는데…."

아저씨는 혼자 밥 먹기도 그래서 점심을 거른 모양입니다. 밖에 나가 이른 저녁이나 먹자고 합니다. 나도 어제 과음을 한지라 선짓국 소리에 입맛이 다셔집니다.

아저씨와 나는 차를 몰고 국밥집을 찾아가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전 부친께서도 약주 많이 드셨나?"
"네, 막걸리를 짊어지고는 못 가도 뱃속에 채우고는 가신다고 하셨어요!"
"애주가였던 모양이시구먼."
"그래서 어머니께서 막걸리가 집에서 떨어지지 않게 담가댔지요."
"해장국으로 선짓국도 해드렸겠네."
"해장국이 따로 있었나요? 따끈한 국으로 속 푸셨죠. 어쩌다 선짓국을 끓이시기도 하였지만…."

장날에 우리 부모님은 푸줏간에 들르시곤 했습니다. 비싼 고기는 못 사고, 소 선지를 사셨습니다. 선지는 육고기에 비해 값이 무척 쌌습니다. 선짓국은 아버지 해장국으로도 최고였지만, 형제 많은 우리 집에선 모처럼 먹는 별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선짓국을 참 맛있게도 끓였습니다. 어머니 음식 솜씨는 동네에서도 알아주었습니다.

선짓국은 찬물에 선지를 담가 핏물을 빼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가마솥에 소금을 조금 넣어 물을 끓인 후 살짝 데칩니다. 데쳐서 덩얼덩얼 뭉쳐진 선지는 채반에 받쳐놓습니다. 선짓국에는 푹 삶아 놓은 무시래기가 꼭 들어갑니다. 집에서 기른 콩나물과 대파를 숭숭 썰어놓고, 된장을 풀고 집간장으로 간을 합니다.

어머니 손맛으로 가마솥 하나 선짓국을 끓이면 한겨울에 먹는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아버지께 큰 국대접으로 가득 담아드리면 "아! 시원하다. 속이 확 풀리네!"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나도 예전 어머니가 끓여주신 선짓국의 구수한 맛을 잊지 못해 해장국으로 선짓국을 즐겨 먹습니다.

김치와 소 내장이 들어간 색다른 맛의 선짓국

국밥집에 도착하였습니다. 해 넘어가는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주차장에 차가 들어찼습니다. 매서운 날씨라 우리처럼 따뜻한 해장국이 생각난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김치와 소 내장이 듬뿍 들어간 선짓국이 색다른 맛을 냈습니다. ⓒ 전갑남


선짓국 두 그릇을 시켰습니다.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되게 친절합니다. 음식점에선 맛도 좋아야 하지만,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면 맛은 두 배로 늘어납니다.

"맛나게 해드릴 게 조금만 기다리세요. 오늘 담근 겉절이가 아주 맛나요. 드시다가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선짓국밥집에서 나온 소박한 밑반찬입니다. ⓒ 전갑남


새로 담근 배추겉절이가 맛있었습니다. ⓒ 전갑남


밑반찬이 나왔습니다. 아주머니 말마따나 빨간 배추겉절이에 눈길이 먼저 갑니다. 시큼한 맛의 무 깍두기에 시금치나물, 어묵 조림도 차려집니다. 소박하지만 맛깔스럽습니다.

뚝배기에 선짓국이 등장합니다. 뽀글뽀글 넘쳐난 국물에 회가 동합니다. 이곳 선짓국은 색다른 맛이 있네요. 시래기 대신 김치를 넣고, 선지와 함께 쇠고기 내장이 듬뿍 들어갔습니다. 선지가 들어간 소내장 국밥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공깃밥 뚜껑을 열자 하얀 쌀밥에 윤기가 자르르합니다. 음식은 맛도 좋아야 하지만, 밥맛이 좋아야 합니다.

윤기 흐른 하얀 쌀밥이 선짓국 맛을 더해주었습니다. ⓒ 전갑남


"아저씨, 어서 밥 말아서 드세요."

나도 국물에 공깃밥을 말았습니다. 따뜻한 국밥이 들어가니 속이 확 풀리는 것 같습니다.

예전 아버지께서 술 드시고 하시던 말을 지금 내가 꺼내고 있습니다.

"정말 속이 시원하네! 아저씨도 그렇죠?"

아저씨도 고춧가루 다진 양념을 듬뿍 넣어 먹습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연신 훔치면서 내가 한 말을 되받습니다.

"뜨끈해서 좋고, 칼칼한 맛이 시원하네!"

착한 선지국밥입니다. 우리 서민들과 함께한 음식입니다. ⓒ 전갑남


선짓국밥 한 그릇에 6000원으로 착한 가격입니다. 우리네 서민들 속풀이 해장국으로 딱 좋습니다.

추운 겨울날 바깥출입으로 선짓국 한 그릇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 것 같습니다. 예전 부모님 생각을 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욱 맛이 있습니다.
#선짓국 #해장국 #선지국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감정위원 가슴 벌벌 떨게 만든 전설의 고문서
  2. 2 "김건희 여사 접견 대기자들, 명품백 들고 서 있었다"
  3. 3 유시춘 탈탈 턴 고양지청의 경악할 특활비 오남용 실체
  4. 4 타이어 교체하다, 대한민국의 장래가 걱정됐다
  5. 5 윤 대통령이 자화자찬 한 외교, 실상은 이렇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