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물은 씨앗 두 알... 이 독특한 박물관, 뭘까?

충남 예산에 '한국토종씨앗박물관' 개관

등록 2017.01.26 10:52수정 2017.01.2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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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진 관장이 전시된 씨앗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무한정보> 장선애


반달벼, 각시동부, 갓끈동부, 울타리강낭콩, 예산스슥….

고놈들 이름 한번 정겹다. 대체로 생긴 모양이나, 자라난 터전 등을 담아 누군가 옛사람이 지어 내려온 이름들이다. '스슥'처럼 씨앗의 고향 사투리가 들어간 경우도 있다. 우리 흙과 물, 햇빛, 바람, 그리고 농부의 발소리가 만들어낸 '토종'들이다.

충남 예산군 대술면 시산서길 64-9 한국토종씨앗박물관(관장 강희진).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에 박물관 등록을 마치고, 한국박물관협회와 사립박물관협회 회원으로도 가입했다. 개인소유지만, 국가유물로 등록된 공공재이며, 명실공히 대한민국 유일의 토종씨앗박물관이다. 지난 17일, 이곳을 방문했다.

34평 남짓 조립식건물 내부는 정갈하고 따스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3개로 구분된 공간에는 1500여 종의 씨앗들이 10㎝ 길이 유리관에 담겨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이 그 모양과 색깔, 특징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벼만 해도 400여 종, 콩 80여 종, 보리 50여 종 등 그 종류가 상상 이상이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예산토종씨앗들이다. 현재 200여 종이 들어와 있는데, 올해 본격적으로 채종과 씨앗마실(농가를 돌며 씨앗을 구하는 일)을 통해 그 수를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두 번째 방, 가장 넓은 전시관 한가운데에 체험교육공간이 마련돼 있다. 지역에 사는 목수 후배가 직접 짰다는 탁자와 의자, 따스한 조명 불빛과 전시된 씨앗들이 어우러져 카페 같은 느낌마저 든다. 가장 안쪽에 자리해 있지만 박물관의 주인인 듯, 어디에서도 잘 보이는 위치에 걸린 안완식 박사의 사진. 우리나라 토종의 산증인이요, 선구자인 안완식기증관이다. 그가 기증한 400여 종의 씨앗들과 저서, 연구자료, 사진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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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진 관장이 '안완식 기증관'에 전시된 씨앗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무한정보>장선애


씨앗들 중에는 유리관을 넉넉하게 채운 것도 있지만, 단 두 알 뿐인 것도 있다. 가장 오래된 씨앗은 1985년에 생산된 것이다. 같은 종자라도 서로 다른 해에 채종한 것들은 시기를 구분해 진열해 놓았다. 강희진 관장은 바로 이 부분이 땅에 뿌려져야 할 씨앗을 굳이 '박물관'에 보관 전시하는 이유라고 강조한다.

"처음 계획을 내놨을 땐 안 박사를 비롯해 토종씨앗 보급에 힘써온 분들로부터 '씨앗이란 생명을 갖고 있어야 온전한 것이다. 살아있는 종자를 박제화하겠다는 얘기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토종종자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만 외래종도 일정기간 한 지역에서 자라면서 그곳 기후와 풍토 등에 적응해 진화하고 정착하면 토종으로 분류되고, 또 토종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되므로 그 역사성을 기록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안 박사님도 저희 박물관 취지에 공감하시고, 귀한 종자 400여 종을 정확히 반씩 나눠 기증해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박물관을 만들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출발은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과 공부, 그리고 보존운동이었다. 2015년 강 관장의 부인 김영숙(국제슬로푸드코리아내포협회 회장)씨가 토종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지역 사람 5명과 함께 씨앗도서관(토종씨앗을 빌려 재배해 수확한 뒤 되갚으면서 보존과 보급에 참여하는 운동)사업을 위한 준비 모임을 꾸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70여 종의 종자가 사라집니다. 토종 여부를 떠나 오래전부터 인류를 먹여 살린 종자들이 이렇게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육종도 중요하지만 보존의 중요성과 가치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김씨의 말이다.

부부는 내륙은 물론 제주도, 울릉도도 마다치 않고 단 한 두 종만을 위해서라도 씨앗마실을 다녔다. 그렇게 수만 킬로를 돌아 예산 대술땅 한지붕 아래 깃든 토종생명들을 보면서 '역사성'에 주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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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진 관장이 씨앗마실을 통해 모은 2016년산 토종종자들. ⓒ <무한정보> 장선애


"지난해부터는 저희가 텃밭에 직접 심어 수확한 씨앗들도 있지만, 그 이전 시기의 것들은 모두 남한 땅 곳곳에서 오랜 시간 땅을 일군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노고가 담긴 귀한 씨앗들입니다. 박물관은 저희가 꾸렸지만, 이 씨앗들은 저희들 것이 아닌 거지요. 그런 점에서 오랫동안 토종보존과 연구를 해오신 분들게 죄송스럽고, 그만큼 책임감을 느낍니다. 안완식기증관을 만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조상이 남긴 존귀한 유산이요, 세계 유일무이한 자원이며 미래가치가 될 토종을 지켜낸 분인데 아직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계절이 겨울이고, 아직 정식 개관식도 하지 않아 찾는 이가 많지 않지만, 박물관은 벌써부터 분주하다.

"우리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에 그치지 않고 보급과 생산, 판매 더 나아가 가공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팜파티나 미니장터도 주기적으로 열어 소비자와 직접 만날 생각입니다. 토종을 지키려면 먹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요.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교육도 당연히, 이미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습니다. 토종의 중요성을 일반에 알리고,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 가치를 심어줘야 토종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정식 개관식은 3월 예정이며, 사전 연락을 한 뒤 방문하면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10-6744-5613/010-8816-5028.
덧붙이는 글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한국토종씨앗박물관 #종자 #안완식 #체험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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