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화장하는 광경 구경하는 사람들

[히말라야 설산과 그곳 사람들을 찾아서②]

등록 2017.01.31 16:58수정 2017.01.3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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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설산 나갈콧에서 아침에 바라본 희말라야 설산의 풍경 ⓒ 임재만


어제는 밤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달빛에 설산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볼까 하고 달구경을 나갔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자정이 다되어 밖을  살펴보았다. 초저녁에 보이지 않던 달이 훤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 카메라 장비를 챙겨 급히 옥상으로 올라갔다. 달빛이 히말라야 설산을 카메라에 담아 줄 것만 같았다. 카메라 장비를 설치하고 오랫동안 설산을 노출시켜 보았다. 그러나 별들의 궤적만 그려질 뿐 설산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새 구름이 두텁게 장막을 쳤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젯밤 구름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설산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났다. 하루 밤사이에도 히말라야 산에서는 짐작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시계가 그리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고대하던 히말라야 설산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삼각대를 세우고 설산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정신없이 눌렀다. 설산은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근사한 자태를 드러냈다. 구름도 어느 틈에 나타나 멋진 설경을 그리는데 보탠다. 장소를 옮겨 가며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셔터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결국 인증 샷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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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말라야 나갈콧에서 새벽에 바라본 설산의 풍경1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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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새벽에 바라본 히말라야의 풍경 2 ⓒ 임재만


눈앞에 거짓말처럼 나타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맘껏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간밤에 그렇게 보려고 애를 써도 꼭꼭 숨겨 놓고 보여주지 않더니 말이다. 날씨가 청명할 때는 팔천 미터가 넘는 고봉(랑탕, 마나슬루, 에베레스트)들이 눈에 쏙 들어온다고 한다.

나갈콧에 그림같이 펼쳐진 설산을 남겨두고 꼬불꼬불 산 비탈길을 다시 내려왔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역시 먼지로 인해 시계가 뿌옇다. 공장 스모그 지대로 다시 온 기분이다. 짱구나라얀으로 이동하기 위해 산길로 들어섰다.

다락 논을 거쳐 언덕하나를 넘자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짱구나라얀은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그만 산동네였다. 마을 맨 꼭대기에는 오래된 힌두사원이 위치해 있고, 그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상점들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 서 있었다.


짱구나라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밝고 따듯했다. 맨 먼저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털모자를 손수 떠가며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사진 포즈를 자연스럽게 취해주며 모자 하나를 쓱 내민다. 모자도 예쁘고 아주머니 마음씨도 고와 그냥 뿌리칠 수가 없었다. 산골여인의 솜씨치고 색감도 디자인도 참 고급스럽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러 아이들을 만났다. 여자 아이들은 신나게 고무 줄 놀이를 하고 있었고, 남자 아이들은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 하나 같이 표정이 밝고 순수해 보였다. 마치 영화에서 본 동막골 아이들 같았다. 사진 한 장을 얼른 찍어 보여 줬더니 매우 좋아한다. 이곳 아이들에게는 아직 핸드폰이 없는 모양이다.

짱구나라얀 사원은 323년에 창건된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교 사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사원은 인도 무굴제국의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702년에 재건된 건물이라 한다.

다시 카트만두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잠시 빈민촌에 들려 보기로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이 달려 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이방인이 찾아오는 것에 매우 익숙한 아이들 같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머리감는 여인에서부터 빨래하는 사람들까지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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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촌 양지바른 곳에 나와 사람들이 물건은 사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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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 밥퍼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 임재만


이곳은 그늘진 곳에 있으면 춥기 때문에 대부분 양지 바른 곳에 나와 일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처음엔 빈민촌이라 하여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고 성격이 거칠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모두 표정이 매우 밝고 친절했다.

그리고 잘 먹지 못해 병자나 걸인들이 많을 거라 생각 했는데 그것 또한 착각이었다. 골목 구석구석을 다녀보아도 그런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가난할망정 마음만은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그렇다. 행복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한다. 물질 만능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끝없는 물욕과 명예욕으로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지 모른다. 작은 것이라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이곳에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된 것 같아 발걸음이 훨 가볍다.

카트만두 마누하르 강변에 자리한 티미라는 마을은 카트만두에서 가장 큰 빈민촌으로 네팔 주민과 인도 이주민, 네팔 남부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 등이 서로 경계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최일도 목사가 아이들에게 직접 밥을 퍼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밥퍼"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빈민촌을 나와 해지기 전에 파슈파트나트 사원에 들렸다.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흰두교 사원으로 화장장도 있었다. 바그마티 강변에 있는 이 사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시바신을 모신 사원으로 매년 수 천 명의 힌두교 신자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화장터에서는 불교의 다비식처럼 장작더미에 시신을 올려 태운 후, 다시 화장한 것을 강물에 씻어 흘려보내는 장례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여러 곳에서 화장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가끔 군인들이 나와 망자를 보내는 의식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화장은 완전히 오픈된 길가 강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시체는 물론 화장되는 광경을 가까이서 생생히 지켜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생소한 광경에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앉아서 숨죽이며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곳이나 망자를 보내는 의식은 비슷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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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 사람들이 시신을 화장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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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 군인과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신을 장작불로 태우는 모습 ⓒ 임재만


강을 따라 쭉 늘어서 있는 화장터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파슈파트나트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는 머리를 오랫동안 감지 않고 진한 메이크업을 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이들이 바로 "사두"라 불리는 힌두교 수행자들이다. 이들 중 다수가 가짜 수행자들로 관광객들의 사진모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화장장의 연기가 하늘을 뒤덮으며 시신 태우는 냄새가 사원 곳곳으로 파고든다. 오랫동안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머리도 무겁고 여행의 피로가 막 몰려온다.

누구든 이 세상에 한번 오면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음이 멀리 있다 생각했거늘, 오늘 시신이 장작불에 타 없어지는 것을 목도하게 되니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영 마음이 불편하다.
#네팔 #장구나라얀 #밥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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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며 만나고 느껴지는 숨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가족여행을 즐겨 하며 앞으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기고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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