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교사 부부가 산골로 간 까닭은

전남 장성 윤태홍·이숙연 씨의 아로니아 예찬

등록 2017.02.05 15:36수정 2017.02.0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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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홍 씨가 눈 쌓인 아로니아 밭에서 아로니아의 생육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 이돈삼


"꿈을 이뤘어요. 전원생활을 하고 싶었거든요. 40대 때부터 막연하지만, 동경했거든요. 지금 생활에 만족합니다. 여유도 있고요. 방장산 자락, 장소도 좋잖아요. 아로니아 재배도 재밌고요. 즐기면서, 많지 않지만 돈도 벌고 있으니까요."

전라남도 장성의 방장산 자락에 새 둥지를 마련한 윤태홍(62)씨의 말이다. 광주광역시에서 살면서 33년 동안 근무했던 교직을 일찍 그만둔 윤 씨는 이곳에 들어와 아로니아를 재배하고 있다. 윤씨를 지난 1월 23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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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방장산 자락에 자리한 윤태홍 씨의 집 풍경. 윤 씨는 교직에서 명예 퇴직하고 이곳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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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홍 씨의 아로니아 농원. 아로니아 나무에서 새 싹이 돋아나고 있다. ⓒ 이돈삼


"귀촌하면 뭘 하고 살까 고민을 많이 했죠. 배 같은 과수 재배도 생각해 봤고요. 꽃이나 허브도 고민해 봤는데, 일하는 걸 보니까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아로니아를 만난 건 행운이었습니다. 나무가 씩씩하게, 쉽게 잘 자라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만만하게 본 거죠."

윤 씨는 2014년 퇴직과 함께 곧바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집 앞뒤 산자락에는 아로니아 1000주를 심었다.

아로니아 재배 면적은 노지 2600㎡. 예상대로 아직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면적도 혼자서 감당하기에 부담이 없는 규모다. 귀농·귀촌 상담에서부터 작물 재배까지 농업기술센터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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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니아 열매. 윤태홍 씨가 지난해 키운 열매다. 지난해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이돈삼


윤씨는 지난해 아로니아 2톤을 수확했다. 이 가운데 3분의 2를 직거래로 팔았다. 생과와 즙으로 절반, 나머지는 분말로 만들어 팔고 있다. 저온저장을 해두고 연중 판매한다.

"지인들이 많이 사 갑니다. 귀농·귀촌한 사람들의 장점인 것 같아요. 도시에 사는 지인들이 많다는 게요. 저도 모임에 참석하거나 지인들 만나러 갈 때 시제품을 늘 갖고 나가죠. 내가 직접 생산한 것이라고, 먹어 보라고 자랑하죠. 제가 아는 사람 중, 대여섯 명에 한 명은 아로니아를 먹을 겁니다."

윤씨는 장성군 아로니아연구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연구회의 재무를 맡아 회원 50농가의 궂은일을 도맡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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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홍·이숙연 씨 부부. 윤 씨는 물리교사, 이 씨는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명예 퇴직을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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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홍 씨가 깎아 놓은 곶감. 윤 씨의 집 처마에 걸려 있다. ⓒ 이돈삼


윤씨는 중·고등학교 물리교사였다. 정년을 4년 남기고 그만뒀다. 그의 부인(이숙연·56)은 28년 동안 영어 교사로 일했다. 정년을 9년 남기고 일찍 퇴직했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귀농·귀촌을 준비했어요. 학교를 그만두기 1년 전에 지금의 집터를 구했고, 설계까지 끝냈죠. 퇴직하자마자 바로 집을 지었고요. 농사도 실험이라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저의 전공 물리와 흡사한 응용과학이잖아요."

윤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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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홍 씨가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지난 1월 23일 모습이다. ⓒ 이돈삼


윤 씨는 일찍부터 퇴직 이후의 생활을 그려왔다. 40대에 전원주택을 염두에 두고 관련 서적을 뒤적였다. 통나무집 짓는 요령을 배우는 '통나무학교'에도 다녔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기사도 관심 갖고 꾸준히 오려뒀다.

퇴직 후엔 귀농·귀촌 교육과 농사관련 교육을 찾아다녔다. 아로니아 재배용 액비를 만드는 법도 그때 배웠다.

윤 씨는 전원생활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매주 두세 차례 붓글씨를 쓰러 나가는 서예원은 도회지와의 연결고리다. 도회지에 나갈 일이 있거나 모임이 있는 날이면 일찍 나가서 글씨를 쓴다. 붓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도 올해 5년째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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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홍 씨가 자신이 쓴 붓글씨를 펼쳐 보이고 있다. 윤 씨는 틈틈히 붓글씨를 쓰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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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화순 운주사의 원형다층석탑. 윤태홍 씨의 사진이다. 윤 씨는 틈틈이 문화재 사진을 촬영한다. ⓒ 이돈삼


문화재 사진 촬영도 매달 한두 차례 나간다. 교사로 있을 때부터 시작한 사진 촬영이다. 그동안 문화재 사진 전시회도 열댓 차례 한,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문화재 사진에 빠져 지낸 시간도 벌써 14년 됐다.

윤 씨는 인문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목공예 공방에도 틈틈이 나가고 있다. 집안의 가구들을 하나씩 직접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다. 집 주변의 나무를 돌보고, 방장산을 산책하는 건 일상이다.

"귀농·귀촌을 생각한다면, 일상에서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꾸준히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학생을 가르칠 때도 그랬는데, 제가 부족한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늘 묻고, 도전했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윤씨의 경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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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치우던 윤태홍 씨가 자신의 집 주변 풍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 뒤로 보이는 산이 방장산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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