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달란 스님, 이상하게 밉지 않았다

인도 맥그로드 간지에서 만난 미얀마 스님

등록 2017.02.18 11:01수정 2017.02.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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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해발 1770m의 맥그로드 간지. 나처럼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 송성영


히말라야는 천년만년 설산인 줄 알았는데...

영상 40℃, 델리의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해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지(이하 맥간)에 도착하자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들어서 있는 해발 1770미터의 맥간은 3개월 전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3개월 전에는 젊은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였는데 지금은 혼자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전에 묵었던 칼쌍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갔다. 게스트 하우스의 매니저인 콧수염의 티베트 사내가 나를 알아봤다. 다행히 숙소 옆에 공동 화장실과 샤워장이 딸려 있는 150루피 짜리 빈방이 있었다. 낡고 딱딱한 침대 하나 달랑 놓여 진 두 평 남짓한 작은방이었지만 지친 몸을 눕히기에는 충분했다.

지친 몸으로 네팔 룸비니에서부터 고락푸르를 거쳐 델리, 그리고 이곳 다람살라에 도착하기까지 버스에서 이틀 밤을 보냈기에 잠자리를 구한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딱딱한 침대에 누워 샤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눈을 떠보니 점심 무렵이었다. 홀쭉해진 뱃고래에서 뭔가를 채워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뭔가를 먹고 또 먹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일인가. 그럼에도 먹어야 한다. 어깨에 걸쳐 메고 다니는 천 가방에 여권과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비로소 저 만치 히말라야 산맥이 눈에 잡혔다. 천년만년 설산일줄 알았는데 6월 하순의 히말라야는 3개월 전과는 달리 갈빗대가 드러날 정도로 빠삭 마른 내 몸처럼 뼈대가 드러나 있었다.

맥간에서 바라본 6월 하순의 히말라야 산맥. 3개월 전에 비해 뼈대가 들어날 정도로 눈이 녹아 있었다. ⓒ 송성영


'한국 사람 만난 게 뭐 그리 반갑다고', 말투에서 찬바람이 분다

베란다에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반가운 한국말이 들려왔다.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 둘이서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다. 인사를 대신해 가볍게 말을 건넸다.


"한국 사람이네요."
"예."
"언제 왔어요?"
"어제요."

사자 머리의 여성이 담배 연기를 한숨처럼 길게 품어대며 짧게 대답했다. 그녀의 무신경한 말투에서 찬바람이 불었다. 아마 수염발 허연 놈이 치근덕거리는 것일까, 옆 눈질로 힐끔 쳐다보며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보내온다. 그 표정에는 '한국 사람을 만난 것이 뭐 그리 반가운 일이라고...'라는 의미가 덧붙여 있었다.

3개월 전에 함께 왔던 한국의 젊은 청춘들과는 딴판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선생'으로 깍듯이 대해 줬던 지희, 현정, 순이, 주상, 이준.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고 스스로를 낮추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들이 보고 싶어졌다.

도도한 젊은 여성들에게 더 이상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샤워를 하고자 했던 것을 잊고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숙소 밖으로 나왔다. 3개월 동안 인도 네팔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부터 만난 젊은 청춘들처럼 경이로운 눈빛으로 인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고 돈 좀 있다고 인도 사람들에게 이놈 저놈 해가며 건방 떠는 인간, 혹은 잘 생긴 남자 여자를 찾아 헤매는 눈빛들이 있다.

그리고 바로 어제 델리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같은 한국인이라는 반가움에 밥값까지 내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조금 전 만났던 젊은 여성들처럼 주렁주렁 장식구들을 달고 다니며 인도 여행에 이골이 난 사람처럼 한국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보헤미안 흉내를 내는 부류들이 있다.

맥간 중심지는 인도와 티베트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양인과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형형색색의 옷가지에 과감한 노출, 타투와 요란한 머리스타일, 장신구를 치렁치렁 달고 다니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거기다가 손에 염주를 굴리는 티베트 사람들과 붉은 가사를 걸친 라마승들이 한데 어울려 있다.

하지만 나에게도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풍경들이 더 이상 낯설거나 경이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장발의 머리에 긴 수염, 허름한 옷차림의 나는 그 낯선 풍경 속의 하나로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혼잡한 맥간 시장을 걸으며 노련한 여행자처럼 짐짓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조금 전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보헤미안 흉내를 내고 있다며 손가락질 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여자들처럼 인도 여행에 이골이 난 사람처럼 건성건성 인종전시장의 한 사람으로 걷고 있었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그 함부로 손가락질 한 것이 너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라는 자책을 하며 식당을 찾아 나섰다.

과일가게 사이에 한 평 반도 채 안돼 보이는 정육점이 얼핏 보인다. 인도에서는 소고기는 물론이고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 송성영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식당에서 시킨 돼지고기 두루치기. 이전에 먹었던 저렴한 인도 음식 보다 5배 이상 비쌌지만 맛도 없고 고기가 질겨 고무 씹는 기분이었다. ⓒ 송성영


그동안 먹은 인도음식보다 5배 이상 비싼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시키다

허기진 뱃고래 때문인지 다친 무릎 때문인지 30여분도 못 걸어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거리 여행길에서 과일과 과자, 만두와 국수 종류로 그것도 하루에 한두 끼를 먹어오다가 무더위에 기진맥진 졸도까지 하지 않았던가. 고기를 먹고 기운을 회복시켜야 할 것만 같았다.

어제 델리에서 먹었던 한국음식이 떠올라 한국인 식당을 찾아갔다. 기운을 돋우는 매콤하고 칼칼한 고기를 먹고 싶었다. 큰 맘 먹고 그동안 먹어왔던 저렴한 인도 음식 값보다 5배 이상 비싼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시켰다.

양배추 김치는 소금과 고춧가루에 대충 버무려져 있었고 돼지고기는 생각보다 무지하게 질겼다. 고무를 씹는 기분이었고 맛도 없었다. 한국에서 먹었던 돼지고기 두루치기와는 전혀 달랐다. 체력의 고갈로 치아조차 흔들리는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맛을 느끼겠다고 씹고 또 씹고 있었다. 맛도 없는 고기를, 기운을 회복하겠노라 아픈 치아를 피해가며 질겅질겅 씹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한심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가능하면 육식과 멀리하겠노라 스스로 다짐을 놓고 있었지만 결국 육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고 핑계 삼아 고기를 씹고 있었지만 사실은 고기 맛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어쩌다 닭고기를 비롯해 소와 돼지고기를 먹는다. 동물 중에서 유독 사람과 가까운 개고기를 먹지 않고 소 닭 돼지를 먹어도 상관없다 여기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폭력성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개나 돼지나 소나 매한가지로 소중하다. 인간과 가까운 동물만을 보호하는 것은 내 자식만 소중하고 다른 자식은 나몰라라 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그 어떤 고기를 먹든 육식은 나보다 약한 다른 생명을 취하는 폭력성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내 몸속에 길들여져 있는 악습이다. 그 폭력적인 악습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 중에 하나다. 그 어떤 생명을 함부로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내게도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고기를 먹고 그 기운을 좋게 되돌려 놓으면 될 것이라는 교묘한 논리를 내세워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고기를 씹고 있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악습을 당장 끊지 못한다면 조금씩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반도 채 먹지 않고 한국인 식당을 빠져나왔다.

이전에 즐겨 찾았던 한국인 여성과 티베트 남성 부부가 운영하는 '피스 식당'을 찾아가 수제비 종류의 뗌뚝을 시켰다. 가격은 돼지고기 두루치기보다 몇 배 이상으로 저렴했지만 맛은 훨씬 좋았다.

티베트 전통 옷을 만드는 옷가게에서 여행 중에 너덜너덜해진 옷을 수리했다. ⓒ 송성영


수선집에서 너덜너덜해진 옷을 꺼내다

뗌뚝을 배불리 먹고 나와 옷 수선 집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수선집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거리에서 만난 티베트 사람들이 알려준 티베트 전통 옷집을 찾아갔다. 몇몇 사람들이 형형색색의 옷이 널려 있는 옷가게에서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아, 여기는 옷을 만드는 곳이군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그게......"

나는 머뭇거리며 천 가방에서 너덜너덜해진 옷을 꺼냈다. 차마 수리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옷감을 재단하던 사내가 슬며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여성에게 건네준다. 그 여성이 내 너덜너덜한 옷을 살펴보고 나서 재봉틀을 드르륵 드르륵 몇 바퀴 돌리자 수선이 끝났다.

"얼마입니까?"
"5루피요."

재활용하기도 힘들 정도로 낡은 옷의 수선비가 우리 돈으로 100원도 채 안 돼는 단돈 5루피.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10루피를 건네주자 5루피를 거슬러준다.

숙소에서 젊은 마얀마 유학승들을 만났다. ⓒ 송성영


미얀마 유학승 둘, 공부에 열중인 스님, 장난기 많은 스님

숙소에 돌아와 보니 스님 둘이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나마스테 인사를 하자 반갑게 인사를 받는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어디서 오셨습니까?"
"미얀마입니다."
"어떻게 이곳을..."
"티베트 불교를 배우러 왔습니다."

이들은 미얀마 유학승들이었다. 맥간에서 머무르던 닷새 동안 두 스님과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열 살 무렵부터 함께 스님 생활을 해왔다는 두 스님은 서로 성품이 달랐다. 한 사람은 계율을 철저하게 지켜나가면서 공부에 열중이었고 장난기가 많은 또 한 스님은 나만큼이나 담배를 즐겨 피웠는데 말이며 행동이 거침없었다.

"미얀마 스님들은 담배를 피워도 됩니까?"
"술과 여자는 멀리해야 하지만 담배는 상관없습니다."

담배 스님은 모바일에 코를 박고 뭔가를 부지런히 탐색을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때로는 내게 도전적인 행동을 보인다. 손가락을 까딱 까닥거리며 담배를 달라고 한다. 한국이라면 '저런 싸가지 없는 중놈이...' 어쩌구 불만스런 표정을 보냈을 것인데 장난기 많은 스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밉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럴 때 마다 질세라 나도 장난기를 발동했다.

"스님은 아주 위험한 얼굴입니다."
"왜요?"
"잘 생긴 스님을 좋아하는 여성들 때문이에요."

그런 여성들이 당신의 잘생긴 외모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파계승으로 만들 수 있다 했더니 낯빛이 발그레 해지면서 수행자는 모름지기 여성을 멀리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수행자들은 왜 이성과의 사랑을 멀리 해야 하는가. 이성과의 사랑은 수행자의 덕목인 자비와 다르다. 이성과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집착을 유발한다. 그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자의 길을 걷는 것이기도 하다. 나 또한 저들처럼 젊은 시절 수행자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 문턱에서 한 여성에게 집착 했다. 그녀를 만나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의 길을 포기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그 삶 속에서 집착은 고통과 한 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수행자의 길을 걸어왔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행자의 길을 접고 살아온 삶은 정해진 운명의 길은 아니었다. 성품 따라 가게 될 길이었다. 내가 만약 그녀를 만나지 않고 계율을 지키는 스님이 되었다 한들 나는 결국 성품에 따라 계율을 지키지 못하고 그녀와 같은 여성을 만나 파계승이 되었을 것이었다.

"나도 한때 스님이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여성을 만나는 바람에 스님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스님이 된 것은 정해진 운명이라고 보십니까?"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사람의 길은 성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요."
"나도 그 말에 공감합니다."

승복은 수행자의 길을 가는 방편에 불과하다

정해진 운명이란 것은 없다. 미얀마 스님이든 누구든 승복을 입게 된 것은 운명이 아니라 수행자로서 타고난 성품에 따른 것이다.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타고난 성품을 바꾼다는 것이다. 성품을 바꾸지 않는 한 나는 저들처럼 승복을 입은 수행자의 길을 갈 수 없다. 하지만 승복을 입지 않고도 얼마든지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자의 길을 갈 수 있다.

승복은 수행자의 길을 가는 방편에 불과하다. 승복을 입었다 하여 모두가 수행자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승복이 아니라 얼마나 자비로운 길을 가느냐에 따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수행자야 말로 중생을 불쌍히 여겨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덜어 주려는 부처나 보살의 마음을 지닌 대자대비한 길을 가는 사람이다.

승복, 법복은 계율을 지키겠노라는 서약의 증표이기도 하다. 법을 수행하는 법관들의 법복 또한 마찬가지다. 법을 수호하고 정의롭고도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의 증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의사들의 흰 가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옷을 입었다 하여 모두가 자비로운 수행자이며 정의로운 법관, 인의를 실천하는 의사라 할 수 없다. 그들이 입은 옷은 매우 엄격한 것이다. 그럼에도 엄격한 옷이 상징하는 계율과 법을 수호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자신들이 마치 '깨달은 자'라도 된 듯 툭하면 신도들을 꾸짖어대고 장작 자신들조차 실행하지 못하는 붓다의 가르침을 함부로 들이대는 얼치기 수행자들이 떠올라 젊은 미얀마 스님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수행자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법복을 입은 스님들은 모두가 자비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는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입니다."
"세상이 탐욕으로 가득한 것은 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스님이 계율을 지키고 법관이 법을 수호하고 의사가 인의를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상은 그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드높여 칭송한다.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떤 일이든 모두가 제 역할을 마땅히 수행한다면 어느 한 사람을 칭송할 이유가 없다. 50대 중반에 이르러 이혼의 압박을 받아 파산 지경에 이른 내가 인도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마땅한 내 역할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맥그로드 간지 #칼쌍 게스트하우스 #돼지고기 두루치기 #미얀마 스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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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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