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대연정 제안, 신의 한 수? 배신의 한 수?

등록 2017.02.15 16:19수정 2017.02.1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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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14일 오후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정기대의원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안희정 지사가 제안한 대연정. 이것이 과연 한국당과 손잡자는 것일까? 그렇다면 대연정은 국정농단은 물론 헬조선을 만들어 놓은 한국당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고, 회생불능 상태에 빠진 한국당을 구해주는 꼴이 된다. 하지만 대연정이 대한민국 대개혁을 위한 안정적 의석 확보 전략이라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현재 의석분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121석, 한국당 94석, 국민의 당 38석, 바른정당 32석, 정의당 6석, 무소속 7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국회의원 121명 가지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쟁점 법안인 경우 재적 의원 5분의 3이상, 즉 180명 이상이 찬성해야 신속처리법안으로 상정 가능하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180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확보해야 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대연정이 아니라, 야권연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대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 당, 정의당과 연합하는 야권연대를 이룬다 해도 확보할 수 의석은 165석에 불과하다. 그러나 야권연대에 바른정당이 가세한다면 총 의석수는 197석에 이른다. 여기에다가 더불어민주당이 무소속 의원의 지지를 얻어내고 재보궐선거를 통해 추가 의석을 확보한다면 200석 이상의 거대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 대연정이 이것을 노린 것이라면, 이는 신의 한 수이다.

작년에 있었던 탄핵소추안 발의를 생각해 보자. 매주 수백만의 국민들이 촛불시위에 나와 '박근혜 하야'를 외쳤지만, 탄핵 말고는 대통령을 퇴진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한데도 당시 야권은 탄핵안 발의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탄핵안 발의를 위해서는 국회의원 3분의 2이상, 즉 200석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야 3당 의석수를 다 합쳐보았자 165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박 세력의 도움이 없었다면 탄핵안 가결은 불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탄핵안 가결은 대연정이 왜 필요하고, 또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대연정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정치가 대결의 정치가 아니라, 협력의 정치로 탈바꿈하기 위해 대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협력의 정치가 그 자체로 선인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대결의 정치가 악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협력의 정치를 권력에 영합하는 야합이라고 평가하며, 폭압적 독재정권에 맞선 대결의 정치를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한다. 중요한 것은 협력이냐 대결이냐가 아니라 이를 통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또한 대연정은 협치와 다르다. 협치가 권력의 중심 없이 다양한 정파가 합의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라면, 대연정은 연정 참여자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지면서 각기 담당 분야에서 국정을 주도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연정을 위해선 연정 참여자들 사이의 대타협이 전제되어야 하며, 이를 토대로 각자의 역할과 권한을 명시하는 '연정계약' 체결이 관건이다. 예를 들어 보수 정당에게 외교와 안보를 맡기는 대신 진보 정당은 노동, 복지, 교육을 담당하고, 각기 담당 분야에서는 정책 주도권을 인정하는 식으로 계약이 체결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누가 어떤 분야를 담당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는 연정의 핵심 사항이 된다.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른다. 상위 10%가 전제 소득의 50%를, 하위 70%는 단지 10%만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비정규직 평균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이고,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 역시 대기업에 절반인 나라. 자영업자 3명 중 2명은 실패하고, 국민들은 빚내서 생활하는 나라. 청년들의 삶은 또한 어떤가? 낮에는 학자금 융자받아 대학 다니고, 밤에는 최저임금으로 아르바이트. 대학 졸업해 보았자 취업은 하늘에 별 따기. 천신만고 끝에 직장이라도 얻으면 비정규직.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출산도 포기한다는 N포 세대의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들은 어떤가? 열심히 공부해야 특목고나 자사고에 입학하고, 그래야 명문대학에 갈 수 있고, 또 그래야 출세해서 상위 10%가 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성적스트레스도 감내하지만, 결국 명문대학과 출세는 고스란히 상위 10% 몫이 되고 마는 대한민국. 그래서 결국 금수저-흙수저라는 새로운 신분사회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만약 대연정의 목표가 대한민국 대개혁이라면, 그 목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바로 신분사회의 원인이 되고 있는 사회 각 분야에서의 양극화, 격차,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재벌 개혁, 비정규직 차별 철폐, 최저임금 현실화, 경쟁위주의 교육제도 철폐 등 전향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것. 지금은 분명 위기의 시대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 그 토대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따라서 안희정의 대연정 제안이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를 밝혀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야 3당은 물론 바른정당까지도 재벌개혁이나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연정이 이들의 목소리를 하나도 모아 대한민국 대개혁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면 대연정은 신의 한 수이다. 그러나 안희정 지사가 대연정을 주장하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한다든지, 현 시국에 대한 처방전은 이미 인터넷에 다 나와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의 대연정 제안은 신의 한 수가 아니라, 지금까지 그를 믿고 지지했던 민주세력에 대한 배신의 한 수가 될 것이다.

#안희정 #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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