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부터 역사탐험까지, '여성 저력' 알린 20년

[3.8 세계여성의날⑤] 풀뿌리여성마을숲

등록 2017.03.05 15:33수정 2017.03.0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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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대전지역 여성단체의 이야기를 3월 1일부터 8일까지 연재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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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업 평과가 익는 부엌 보리와 밀 ⓒ 보리와 밀


"안녕하세요?"

아침에 현관 계단을 내려와 골목길 끝에 있는 채소가게 사장님과 인사를 나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야쿠르트 아주머님과도 아침인사를 나누고, 아침 산책길을 나선 노인정 어르신과도 인사를 나눈다.

수년 간 주공1단지 아파트 안을 통과하여 마을기업 '보리와밀'로 출근하고 있다. 길목마다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나의 눈길이 간다. 어느 날은 수많은 참새들이 우르르 짹짹 나무와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고, 마을에 제일 먼저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살구나무 앞에 잠시 멈춰 서서 가지 끝에 한껏 부풀어 오른 꽃눈을 바라보기도 한다.

눈치 챘겠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풀뿌리여성마을숲은 특별할 것 없는 반복되는 일상을 가꾸어 가는 마을여성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마을어린이도서관, 마을카페, 마을부엌, 방과후 마을학교, 마을기업, 공동육아 어린이집, 마을텃밭 등등 마을 곳곳에 활동공간을 만들었고, 부모모임, 빵 동아리, 반찬봉사모임, 그림책모임, 요리교실, 마을역사탐험대 등 다양한 마을동아리에서 여성들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마을살이라고 부른다. 뿔뿔이 개별화되고 각자도생의 단절된 삶에서 벗어나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마을살이가 일어나는 현장은 바로 일상의 공간, 마을이다.

지자체마다 마을만들기가 유행인데, 마을은 누군가의 계획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울퉁불퉁 저 마다 다 다른 삶이 있고, 그 다름이 인정되고 이해되어 관계가 맺어지면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마을살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변화의 씨앗을 품는다. 변화의 씨앗 중 하나는 민주주의를 익히며 심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광장의 민주주의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연결할 때, 제도와 일상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 질 수 있을 때 한국사회의 변화는 비로소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을 안에 더 다양한 여성그룹이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묻는다. 지난 20여년 가까이 마을여성운동을 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그 것은 무엇보다 마을살이를 통해 마을여성리더그룹이 형성된 덕분이다. 마을에서 절반의 여성이 전업주부로(그러나 실상은 대부분 단시간 알바와 전업주부를 오가고 있다) 살고 있다. 이들이 마을살이에 참여하여 역할을 나누고 활동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욕구와 내재된 힘을 알아채는 과정을 통해 마을리더로 성장했다.

마을여성리더는 뛰어난 개인이 아니라 그룹으로 형성되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보완하는 협동과 협력의 과정을 통해 그룹으로 형성된 것이다. 마을어린이도서관 프로그램에서부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활동과 마을촛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의논하여 실행해 왔다.

마을 안에 더 다양한 여성그룹이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여성주의 독서모임이 생겼으면 좋겠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착한 여자는 천국을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말에서부터 생각에 생각을 해야 하는 '여성혐오를 혐오하라'는 말까지 함께 공부하여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밝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부모여성 마을모임이나 여성장애인 마을모임 혹은 성 소수자 마을모임, 청년마을모임 등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마을모임 자체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숙되었다는 증거이리라... 그리고 마을에서 청년기본소득 실험도 해 보고 싶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펀딩하여 마을주민인 청년에게 1년간 기본소득을 보전해 주면서 청년들의 마을살이를 응원한다면 마을에 훨씬 활력이 넘칠 것 같다. 우리는 마을에서 모이고 떠들고 꿈꾼다.

함께 나누고 돌보는 안전한 마을,
자립과 자치의 삶이 가능한 마을,
평등과 평화가 일상의 가치로 존중되는 마을!

풀뿌리여성마을숲은요
대전여민회에서 2012년 분화한 여성단체다. 마을 방과후학교, 마을 어린이 도서관 짜장, 유기농 빵을 제조하는 보리와밀, 마을역사탐험대 등 마을살이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전업주부로 있던 회원들을 마을 여성리더로 키워낸 저력있는 단체다. 20여년 가까이 마을여성운동을 한 비결을 마을여성리더그룹에서 찾고 있다.


덧붙이는 글 민양운 기자는 풀뿌리여성마을숲 공동대표입니다.
#풀뿌리여성마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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