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삼전도비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아야 할 때

등록 2017.03.13 11:59수정 2017.03.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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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비 제2롯데월드가 뒤로 보이는 가운데 삼전도비가 석촌호수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 이순례


어떤 이는 현 시국을 '병자호란' 때와 같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이들은 구한말 조선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가운데에 끼어서 양국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며, 강대국 미국과 핵으로 위협하고 있는 북한이라는 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사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서 부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출발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8:0이라는 탄핵 인용이라는 결과를 낳았으며, 그와 맞물려 한반도의 정세는 더욱 불확실성의 시대로 밀쳐지고 있다.

남한과 북한으로 쪼개지고 남남이 이념으로 또 쪼개지고 있는 사이에 중국에서는 2001년 6월부터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라는 명목하에 '동북공정'이 추진되었으며, 현재는 지자체별로 계속적으로 '동북공정'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아시아 최강을 자랑하고 있을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군대로서, 2014년 기준 총 24만 8000여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자위대는 2016년 3월 해외 활동을 확대하는 개정안이 발효되어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자위대는 무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일본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지리적 제한 없이 미군을 후방 지원할 수 있도록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북한은 어떠한가. 북한도 여러 가지 대량 살상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수준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남한에서 이념으로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있는 사이에 중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은 그들의 힘을 나날이 키우고 있었던 것을 알아야 한다. 탄핵 인용이 되고 난 후에, 회장님(필자 회사의 회장님)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회사 근처에 아주 가까운 데 돌무리가 있는데, 그 곳에는 병자호란때, 인조가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남한산성에서 끌려나와 항복의 예로써 '3배 9고두'를 행했던 장소란다. 3배 9고두란 상복을 입고 3번 큰절을 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꽝꽝 박아 그 소리가 단 위에 앉아 있는 청 태종에게 들리게 하는 것으로, 3배 9고두를 마친 인조의 이마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고 하더구나. 이 얼마나 수치스런 역사니... 가까운데 한 번 가봐야 하지 않겠니. 난 보수인데도 태극기 집회 나오라고 맨날 문자오는데도 한 번도 안갔어. 나라가 지금 그렇게 둘로 나뉠 때가 아니지 않겠니?"


회장님 말씀이 자꾸 귓가에 맴돌아 주말에 아이 손 잡고 다녀온 '삼전도비(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를 만나고 왔다.

석촌호수와 제2롯데월드가 있는 사거리 작은 귀퉁이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던 '삼전도비'는 지난 봄 벚꽃구경하러 석촌호수를 찾았을 때에도, 그 이전에도 평화와 행복의 메시지였던 러버덕이 있었을 때에도 찾았던 곳이지만 만나지 못했었다.

그럼, 우린 여기서 '삼전도비'가 세워지게 된 병자호란 때의 모습으로 올라가봐야 할 것이다. <병자록>에 따르면, 인조 이전에는 광해군이 조선을 지키고 있었다. 광해군 때, 명나라와 여진족이 세운 후금과의 전쟁에 원병을 요청해오자,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1만명의 병사를 주어 보냈다. 그러나 강홍립은 후금과 싸우는 척하다가 투항해 화의를 맺었다. 조선의 대신들은 강홍립이 역적이라며,그 가족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광해군은 오히려 그가족들을 돌보아 주었다. 강홍립의 투항은 광해군의 책략이었기 때문이다. 후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나아가 침략을 예방하게 되었다는 결과다. 국제 정세를 읽을 줄 아는 지도자의 안목이 돋보인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반정에 성공한 인조가 왕위에 오르고 조선은 대명 사대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다. 조선은 패전한 명나라 장수와 군사들을 공공연하게 보호해주었으며, 1627년에는 후금의 3만 군사가 파죽지세로 쳐들어오자 조선은 서둘러 화친을 맺었다. 1636년 청나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의 사신 용골대가 군신관계와 과다한 조공을 요구해 왔지만, 조선 조정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 추장에게 황제 칭호는 가당치 않다"며 전쟁 불사를 주장하는 척화파(斥和派)가 득세했던상황이었다. 이에 인조는 평안감사에게 청의 침입에 대비하라는 교서를 보냈는데,그 교서를 달아나던 사신 일행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그해 12월 청 태종 홍타이지가 12만 군사를 이끌고 다시 침입했으니, 바로 병자호란이다. 추운 겨울이기도 했으며, 늦게 알아, 강화도로 피난을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에서 버틴 지 40여일 만에 인조는 한강 나루터인 삼전도에서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청 태종 홍타이지는 인조가 항복한 장소에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를 세우라는 명을 내렸다. 그 위치가 삼전도여서 이것을 흔히 삼전도비라고 부른다.

2007년에는 이 '삼전도비'에 철거를 요구하는 페인트 낙서가 쓰여지기도 했다. 사적101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전도비'가 치욕스런 역사이기에 더 보기 싫을 수도 있겠으나, 그런말도 있지 않은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박근혜 파면'으로 인해 美·中·日 복잡한 손익계산서라는 기사가 벌써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발등에 떨어진 중국의 사드보복의 절정이 될 소비자의 날, 미국 금리인상과 네덜란드 총선, 그리고 미국 부채한도 적용 유예기간 만료라는 4개의 불확실성이라는 폭탄도 우리앞에 떨어져 있다.

이젠 이념의 전쟁이 아니라, 제대로 나라와 나라간의 경쟁을 위해,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북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할 때이다.

'삼전도비'가 우리에게 주는 그 의미가, 단순히 치욕의 역사로만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삼전도비 #동북아정세 #소지개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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