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무, 유세윤 광고 논란... 그들은 눈치를 봐야 했다

혐오와 폭력을 답습해도 '웃긴 사람'이 될 수 있는 사회

등록 2017.04.04 17:52수정 2017.04.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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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두 기업이 공개한 광고 때문에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바로 에뛰드하우스와 넷플릭스 이야기다. 에뛰드 하우스는 새로운 광고의 티저 영상을 촬영하며 전현무를, 넷플릭스는 드라마 <아이언 피스트>의 홍보 모델로 유세윤을 기용했다. 그리고 광고를 공개한 직후, 두 기업의 SNS 계정은 항의 메시지와 코멘트로 난리가 났다.

경쟁사의 홍보물을 들고 와 이제 에뛰드 하우스 대신 그 기업의 제품을 쓰겠다는 이들도 있었고, 아예 넷플릭스를 해지했다는 인증이 올라오기까지도 했다. 결국 두 기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광고들을 철회했고, 소비자들에게 사과 공지를 올리게 되었다.

이후 SNS에는 농담처럼 '홍보팀 결정권자가 죄다 중년 남성이었을 것이다'나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상급자를 엿 먹이려는 직원의 작품이었을 것이다'는 추측이 떠돌았다. 그런데 사실 이건 정말 질문해볼 만한 것이긴 하다. 왜 두 기업은 전현무와 유세윤을 자기 브랜드의 얼굴과도 같은 광고에 출연시켰을까. 물론 모든 회사가 광고에 자사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지는 사람을 사용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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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코리아 트위터 계정이 22일 오후 게재한 <마블 아이언 피스트> 관련 게시물. ⓒ @Netflix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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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됐던 전현무가 나온 에뛰드 광고 ⓒ 에뛰드 인스타그램


때론 단지 대중적 인지도가 높거나 호감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델이 결정되기도 한다. 가령 SKT 광고 속 설현을 생각해보라. 그 광고에서 그녀는 딱 '예쁘고 날씬한 젊은 여성'의 역할 정도만을 맡을 뿐이다. 그렇게 재현된 설현을 본다고 해당 통신사의 서비스 품질에 대한 신뢰가 올라갈까? 내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문제의 그 광고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쩌면 에뛰드하우스와 넷플릭스에게 전현무와 유세윤은 완벽하게 들어 맞지는 않지만 써먹기 적당한 인기를 지닌 연예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도 말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전현무나 유세윤은 두 기업의 주 소비층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이 아니라 도리어 불쾌감을 주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에뛰드 하우스는 젊은 여성 고객들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기업이고 넷플릭스에는 기성의 낡고 고루한 한국 콘텐츠들에 질린 사용자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익히 알려져 있듯 두 연예인은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태도,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이들은 무난한 게 아니라 매우 위험한 모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두 기업의 홍보 담당자가 전현무나 유세윤이 일으킨 문제들을 몰랐거나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이 유세윤이 팟캐스트에서 여성을 두고 어떤 말을 했으며 그것 때문에 무슨 논란이 벌어졌으며, 결국에는 사과 기자회견까지 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전현무가 과거 시상식에서 어떤 무례한 멘트를 했고 사람들의 빈축을 샀는지 까먹었을 수도 있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불성실함이지만, 사실 많은 일이 주먹구구식으로 처리되는 이 나라에서 아주 벌어지지 않을 상황 같지는 않다. 거기에 두 사람은 그 사건들 이후에도 경력이 단절되기는커녕 더 많은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었다. 이제는 이들이 벌인 일들이 수습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유머를 가장한 혐오를 보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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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4월 개그 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이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의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여성 비하 발언' 등에 대해 사과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는 장면. ⓒ 이정민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두 기업이 자사의 모델들과 관련된 논란을 몰랐거나 이제는 시간이 지나 괜찮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두 연예인이 이후에 출연한 방송과 제작한 영상까지도 그들은 보지 않았을까.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난 이후에도, 유세윤과 전현무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유세윤은 직접 설립한 광고 회사를 통해, 여성을 '고기 덩어리'나 단지 '가슴'에 비유하는 광고를 찍었다.

전현무 역시도 방송에서 여성 게스트들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이들에게 가부장적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멘트를 계속 던져왔다. 상상해보라, 그냥 보아도 불쾌한 이 멘트들을 당사자라 할 여성들이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한국 방송 특유의 젠더 폭력과 소수자 혐오에 질려하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지.

결국 남는 답은 하나다. 전현무와 유세윤을 캐스팅한 사람들은 그들의 유머를 불쾌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심지어 자기 회사의 주 소비층을 포함한 누군가가 그것들로 인해 상처받거나 분노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딱히 놀랍지는 않다. 잠시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재 개그'를 떠올려 보자. 누구도 재밌어하지 않고, 아무런 맥락도 없지만 말하는 사람만 웃기다는 이유로 툭툭 던져졌던 농담을 말이다.

물론 상대방의 당혹스러움과 어이없음을 자아내는 것이 때로는 좋은 유머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농담이 누구도 웃기지 못하고 실패한 개그가 될 때 성공한다는 점, 오직 웃는 사람은 발화자뿐이라는 자체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아재 개그에는 우리가 가부장적 중년 남성의 단점으로 여겼던 '눈치 보지 않음'과 '누구도 배려하지 않음'이 내재되어 있다.

혐오와 폭력을 답습해도 '웃긴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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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무는 서울가요대상에서 EXID 하니에게 과도한 농담을 던져서 구설수에 올랐다 ⓒ SBS


아재 개그의 이러한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구사하는 것과 그냥 아재로서 유머를 던지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통제된 각본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치는 진짜 아재들의 개그는 사실 '개저씨 개그'에 가깝다. 이들의 유머에는 상대방이 나의 말을 재밌어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나 상호 형성된 공감대가 없다. 그저 '내가 웃기니까'라는 식으로 마구 던질 뿐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자기 중심성은 종종 농담이 유해해지는 결과로 나아가기도 한다. 지금도 '웃자고 한 이야기'라고 하며 빈번하게 발생하는 공동체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대부분 이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나이/직급/성별에 있어 상대적으로 더 큰 힘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생각해보자. 권력이 있는 사람은 고민하지 않는다. 이게 웃길지, 불쾌할지, 폭력이 될지.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예민한 존재로 지목된다. 혹은 그런 낙인이 두렵거나 상대방이 내게 줄 불이익이 두려워 침묵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만연한 사회에서 유세윤이나 전현무와 같은 사람들은 문제적인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존재가 될 뿐이다. 불쾌하고 폭력적인 농담을 해도 불이익을 주긴커녕 오히려 그게 문제임을 사유할 능력조차 가지지 못한 공동체에서, 연예인이 같은 행동을 저지른다고 그들의 행동이 유해한 것으로 인식이 되겠는가.

그래서 유세윤이나 전현무와 같은 사람들이 유머를 빙자해 혐오와 폭력을 답습해도, 그저 '웃기고 재밌기만 한 사람'으로만 계속 여겨지는 것이다. 작금의 사태는 그런 측면에서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아니었다. 다만 슬픈 것은, 이런 일들이 '상식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가능한 공간'이 우리가 사는 사회라는 점이다.
#유세윤 #전현무 #농담 #혐오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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