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던 당병공양탑, 통양마을에 나타나다

일제시기 조명군총 앞에 세워졌던 것

등록 2017.04.04 13:47수정 2017.04.0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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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에 조명군총 앞에 세워졌던 당병공양탑이 통양마을에서 수십년 만에 발견되자 선진마을 강영숙 씨가 이를 확인하고 있다. ⓒ 바른지역언론연대


최근 경상남도기념물 제80호 사천조명군총에 관계된 석물이 하나 발견돼 눈길을 끈다. 발견 장소는 용현면 통양마을의 한 골목. 사천시가 종포지구 항공산업단지 주변 지역 지원사업의 하나로 이 마을의 골목길을 넓히는 공사를 하던 중 땅속에서 나왔다.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라 여긴 주민들이 사천시에 연락했고, 시는 옛 조명군총 앞에 서 있었다는 당병공양탑(唐兵供養塔)임을 확인했다.

당병공양탑. 사천시가 펴낸 사천시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선진공원(船津公園)을 조성하면서 조명군총 앞을 지나는 도로를 개설했고, 일부 붕괴된 무덤을 수축한 다음 그 위에 '唐兵供養塔(당병공양탑)'이라 새긴 높이 1m쯤 되는 표석을 세웠다. 그런데 1945년 광복 후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

당병공양탑에 얽힌 기록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누군가가 도랑을 건너는 다리로 쓰기 위해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인근 주민들 사이에 전해오는 정도였다. 그러나 행방은 묘연했다. 용현면 출신의 조영규(68) 문화관광해설사조차 이야기 속 주인공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탐문했으나 구체적인 정보에 이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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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 공사 도중 발견된 당병공양탑. ⓒ 바른지역언론연대


그 공양탑이 어느 날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통양마을에 사는 강태진(67) 씨는 "공양탑이 발견된 곳은 옛날 마을 공동우물이 있던 곳"이라며 "아마 옛날 어른들이 디딤돌이나 빨래판으로 쓰기 위해 갖다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씨에 따르면 우물 자리는 새마을운동 시기를 거치며 시멘트 포장길로 바뀌었다. 탑의 존재는 점점 잊혀졌다.

3월 31일 통양마을 어귀에서 당병공양탑 실물을 확인했다. 키는 1미터가량. 한눈에 봐도 여느 비석이나 탑비와 생김새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낯설게 다가오는 점은 비석의 윗부분. 둥그스름한 게 보통이나 뾰족하게 각이 졌다. 또한 세로 모양도 나란하지가 않고 사다리꼴 모양으로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넓었다. 이를 두고 사천시 김상일 학예사는 "우리나라 전통적 모양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당병공양탑은 언제 누가 왜 만든 것일까?

이 탑에는 당병공양탑이라 적힌 글 말고는 다른 글이나 문양이 전혀 없다. 따라서 유래 등 다른 정보 확인이 어렵다. 다만 일제가 선진리성에 벚나무를 심는 등 선진공원으로 정비하던 때가 1912~1918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무렵 조명군총도 일부 정비하고 탑을 세우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참고로 선진리성을 공원화할 당시 '사천신채 사적보전회'가 조직됐고, 정유재란 당시 사천신채를 지켰던 장수 시마즈 요시히로의 후손 시마즈 다다시게가 자금을 댔다. 보전회는 공원 내에 신사 두 채와 사천신채전첩지비(泗川新寨戰捷之碑)를 세웠으나 광복 후 주민들에 의해 모두 제거됐다.

31일 만난 선진마을 강영수(97) 씨는 당병공양탑의 존재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게 실물을 보여 주자 금방 알아봤다.

"이게 어디 있다 나왔을까? 내가 어릴 때부터 봤던 것 맞아. 무덤 있는 길가에 있었지. 해방 되고 나서 얼마쯤 있다가 사라졌는데, 누가 가져갔는지는 모르고 있었어."

같은 마을 윤맹호(87) 씨도 기억 몇 조각을 더듬었다.

"옛날에 조명군총을 댕강무더기라 불렀는데, 그 앞에 작은 비석이 있었지. 학교 다닐 때 항상 보고 다녔어. 일본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허리 숙여 절을 하곤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절하는 모습은 못 본 것 같아."

강 씨의 기억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공양탑 제작 시기다. 그가 1921년생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1920년대거나 그 이전부터 공양탑이 세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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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조명군총 전경. ⓒ 바른지역언론연대


또 윤 씨의 기억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탑의 용도다. 공양탑의 본래 의미라면 불교에서 부처에게 공양하는 뜻에서 세우는 탑이지만 일본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심한 듯 지나다닌 반면 일본사람들은 절을 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그 옛날 승전을 기념해 선진리성을 공원화 한 것에 비춰 공양탑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탑의 모양이나 규모 등이 지극히 소박한 점에서 보면 민간 차원에서 추도 의미로 세웠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는 얘기도 있다.

사천시는 이 당병공양탑을 어찌 처리할까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먼저 주민들에게 뜻을 물었으나 "시가 알아서 처리해 달라"는 답을 얻은 상태다. 이에 시는 경남도 문화재위원들과 상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탑의 운명은 탑을 세운 뜻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당병공양탑 #선진리성 #조명군총 #사천 #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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