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노동자 140여 명이 일자리 잃은 이유

[뉴스속의 노동법(23)] 현행법상 제한규정 없어, 조속한 입법 필요

등록 2017.04.05 16:41수정 2017.04.0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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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자동차 부품공장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140여 명이 대규모 해고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3월 노동조합 지회를 설립하고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교섭을 요구하자 하청업체가 변경되었고 새 하청업체가 돌연 사업을 포기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현재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했던 공장의 생산직 업무는 정규직인 사무직 노동자들로 대체된다고 한다. 이번 만도헬라 사태는 전형적인 비정규직 노조 탄압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2.6%. 만도헬라 사태는 노조 조직률이 10년 전의 절반 수준(5.1%→2.6%)으로 주저 앉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번 만도헬라와 같은 행태에 대해서 이를 제한하는 현행법상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이번 사건의 흐름을 단순화시켜 볼 필요가 있다.    

(1) 만도헬라는 생산 공장의 생산직에 대해서는 A하청업체에 도급을 준다.
(2) A하청업체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직 공정 책임을 진다.
(3)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고, 근로조건 개선 단체교섭을 A하청업체에 요구한다.
(4) 만도헬라는 A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종료하고, B하청업체와 다시 도급계약을 한다.
(5) B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간 고용승계 문제 등을 협의하던 중 B하청업체가 사업 포기선언을 하고, 만도헬라와 B하청업체의 도급계약관계도 종료된다.

통상적으로 이번 사건과 같이 하청업체의 사업자가 변경되는 경우, 기존 하청업체의 근로자들이 새로운 하청업체에 고용승계가 되느냐가 쟁점이 된다. 현행법상 이러한 경우의 고용승계 문제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조항이 명시적으로 없기 때문에 대법원은 상법의 영업양도 법리를 빌려와서 판단한다. 영업양도란 "일정한 영업목적에 의하여 조직화된 업체", 즉 인적·물적 조직을 그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경우에 근로관계는 포괄적으로 승계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예컨대, 새로 도급계약을 체결한 B하청업체가 비정규직 노동자 140명중 120명에 대해서만 고용승계를 하고, 기존과 동일하게 생산 공장의 생산직 공정 책임을 지는 일을 한다면 인적·물적 동일성이 인정된다 할 것이고, 고용승계에서 배제된 나머지 20명이 부당해고를 다툴 경우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이들에게도 고용승계를 하라는 주문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B하청업체가 비정규직 노동자 전원에 대해 고용승계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대법원의 법리에 따라 '인적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므로 영업양도가 아닌 것으로 판단돼 고용승계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이번 만도헬라 사건은 B하청업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승계 의무가 있느냐가 쟁점이 아니다. 왜냐하면 B하청업체는 사업을 포기하고 만도헬라와 도급계약을 종료하게 되므로 이는 곧 당사자의 소멸, 근로관계의 당연종료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폐업을 하게 되면 노동자들도 당연히 일자리를 잃는 것이므로 이번 만도헬라의 비정규직들은 형식적으로는 해고를 당한 것이 아닌 근로관계가 자동으로 종료된 것이다. 노동자들로서는 법원이 그나마 판단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는 "영업양도" 법리를 다툴 여지도 없게 된 셈이다.


독자적인 물적 기반이 거의 없이 원청업체의 사업장내에서 원청업체가 제공한 사무실, 설비, 도구, 원료 등을 이용하여 작업을 수행하는 사내하도급이나 청소경비용역에서는 노무용역공급업체의 변경이 주로 인건비를 삭감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업체를 교체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이는 노무용역 공급업체의 교체가 근로기준법상의 해고제한 조항이나 근로조건 불이익변경의 법리, 심지어는 부당노동행위를 탈법적으로 회피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법상으로는 이러한 노무용역 공급업체의 변경에 따른 각종 노동권 침해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뚜렷한 법률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근로의 권리와 노동3권을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입법은 반드시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영국의 경우 '서비스 공급주체의 변경' 개념을 도입하여 이러한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했다는 것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원청의 사업 일부가 하청으로 전환되는 경우, 하청업체가 변경되는 경우, 하청으로 전환되었던 사업이 다시 원청으로 귀속되는 경우를 모두 단지 사업이전으로 인정하고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명문의 규정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비스 공급주체'가 A하청업체이든 B하청업체이든 원청이든 상관없이 사실상 생산 공장의 생산직을 수행하는 일을 한다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고용은 승계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번 만도헬라 사태와 같은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내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이후록 시민기자는 공인노무사입니다.
#근로기준법 #도급 #하청업체 #영업양도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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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로서 '노무법인해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노무자문, 급여관리, 근로자들의 부당해고, 체당금 사건 등을 수행하면서 널리 알리면 좋을 유용한 정보를 기사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blog.naver.com/lhr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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