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7년 민간인쇄 <조보> 실물.
김영주
세계 최초의 신문으로 알려진 1577년 조선시대 <조보(朝報)>의 실물로 추정되는 문화재가 발견되어 학계에 관심을 끈다.
지금까지는 1660년 독일에서 발행된 <라이프찌거 짜이퉁>이 세계 최초의 일간 신문으로 알려졌는데, 1577년 <조보>는 이보다 80년 앞선 것이다.
1577년 <조보> 추정 인쇄물은 17일 경북 영천 용화사에서 공개되었다. 용화사 지붕 주지스님이 서지 관련 경매 사이트에서 입수한 자료다. 오랫동안 <조보>를 연구해 온 김영주 경남대 교수는 "조보 실물이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
조선 조정은 법령 개정, 관리 인사, 농정 등에 관한 소식을 담은 <조보>를 배포했고, 태종 13년인 1413년에 <분발(分發)>이라는 명칭의 정보 전달 수단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보>는 왕과 사대부의 전유물로, 일반 백성은 접근할 수 없었다. <조보에 대한 몇 가지 쟁점>이란 논문을 쓴 김영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선조 때인 1577년 민간 인쇄 조보가 만들어져 일반 백성들이 구독료를 내고 본 것으로 밝혀졌다. 민간인쇄 조보는 상업 신문인 셈이다.
당시 민간인쇄 조보는 3개월간 나왔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577년 음력 11월 28일 선조가 우연히 <조보>를 발견하고 대신들 앞에서 크게 분노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가 <조보>를 발행 석 달 만에 폐간시키고, 조보 발행에 참여한 30여 명에게 가혹한 형벌과 유배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민간인쇄 <조보>가 있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그동안 실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추정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민간인쇄 조보는 필사가 아닌 목판활자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