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캠프에서 하산을 결정한 이유

마차푸차레를 보자 하산을 결정했다

등록 2017.05.15 17:21수정 2017.05.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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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란드룩에 발이 묶이고 다음날 숙소 안에서 나눈 대화다. 지프를 알아봤지만 '번다' (파업)였고 비는 내일까지 온다고 했다. 방법이 없었다. 비가 그치기만 바랐다.


"위에는 눈이 엄청 오겠어요. 여기는 비가 이렇게 오는데."
"그렇겠지. 걱정인데"
"번다래요. 지프도 움직이지 않는대요. 비가 그칠 때까지 꼼짝없이 갇혀 있겠어요."
"...."

숙소 안 창밖을 말없이 바라봤다. 안개가 껴있어 반대편 간드룩은 보이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이어진 비는 숙소 지붕을 줄기차게 때리는 중이다. 책을 읽어도 읽히지 않는다. 음악도 들리지 않는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와이파이 이용이 가능했다. 수시로 끊기긴 했지만 말이다.

비가 그치면 내려갈 수 있다고 게스트하우스 사모님께 현재 상황을 알려드렸다. 눈이 엄청 오고 있을 테니 ABC, 라운딩 가실 분들에게 전달해 달라 부탁드렸다. 그동안 연락드리지 못해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도 연락했다. 나의 소식을 알렸다.

일주일 만에 세상과 연결된 후로 한동안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세상은 달라져 있지 않다. 나는 달라져 있는데 세상은 역시 잘 돌아가는 중이다. 1시간도 못되 휴대폰을 다시 꺼버렸다. 휴대폰 액정 불빛이 너무 강했다. 자연과 벗 삼아 산속에 보름 이상 있다 보니 삶의 큰 변화를 가져다준 기기들이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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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안에서 바라본 건너편 간드룩은 보이지 않았다. ⓒ 정웅원


#포레스트 캠프


비가 그치면 내려가야지 이제 진짜 끝내야지 했는데, 하늘이 다시 맑아져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자 마르디히말에 올라가 보고 싶었다. 베이스캠프까지는 못 가더라도 미들 캠프는 갈수 있을 것 같았다. 미들 캠프에서도 마차푸차레는 날씨가 도와주면 볼 수 있을 테다. 포레스트캠프를 넘어서면 아마도 눈은 많이 쌓여 있을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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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캠프 올라 가는 길 하늘이 보인다. ⓒ 정웅원


란드룩에서 포레스트캠프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로가 대략 30 도는 돼 보였다. 상당한 높이다. 능선까지 올라서면 그다음부턴 쉽게 걸어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능선 오르기 까지 1시간 반은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능선을 다다라서야 몇몇 트레커들이 왜 엄지를 척 올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거진 나무숲과 짙은 안개로 더욱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던 포레스트캠프.

포카라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나는 이곳을 강력 추천했다. 물론 산사태로 인해 숙소가 복구되기 전까지 ABC로는 올라갈 수 없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곳은 정말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명소는 지금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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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캠프 가는 길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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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캠프 가는 길. 능선 길은 짙은 안개로 운치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정웅원


#미들 캠프에서 하산을 결정한 이유

일기예보에는 오늘까지 비가 내린다고 했고 그 예보는 틀리지 않았다. 포레스트캠프 숙소를 벗어나자 곧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등산길은 지난 며칠간 내린 눈으로 상당히 쌓여있었다. 더 이상 오를 수 없으니 미들캠프에서 하산 하라고 산이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미들캠프 숙소에 도착하니 눈은 더욱 거세졌으며 숙소 식당까지 눈발이 들어오고 있었다. 가이드, 트레커 전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건 숙소에 방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다시 내려가야 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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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캠프를 지나자 아래 란드룩 마을과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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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캠프로 올라가는 길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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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캠프 숙소 ⓒ 정웅원


#마침내 마차푸차레와 마주하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곳부터 위로 올라가는 길은 눈에 사라져 있고 하이캠프 이후 베이스캠프 구간은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사실 미들캠프로 올라오면서 발자국을 따라서 올라왔지 그것마저 없었다면 란드룩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내일 아침이 되면 하늘은 다시 맑아진다고 했으니 믿고 잠자리에 들었다.

별이 보인다. 새벽녘 문밖을 나온 순간 별들이 하늘에 가득 차 있었다. 눈이 그치고 먹구름들은 사라져 있던 것이다. 오늘에서야 길고 길었던 네팔에서 진행한 모든 산행이 모두 끝남을 예감했다. 에베레스트부터 시작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안나푸르나 라운딩에 이어 마르디히말까지 날짜를 계산해 보니 산속에 있던 기간이 40일이다. 위험했던 순간도 한두번 있었다. 때론 힘에겨워 숙소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즐거웠고 행복했다. 히말라야는 모든 기억을 깊은 추억으로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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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가려져 있지만 저 아래가 마을이고 포카라로 가는 도로가 있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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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캠프에는 구름이 아래로 보인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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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 마차푸차레는 얼굴을 내밀었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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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 인증샷 ⓒ 정웅원


'이제 하산해도 되겠다.'

네팔 히말라야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칸첸중가, 마나슬루, 다울라기리,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킹 등 걸어보고 싶은 곳들이 많이 남아있고 인도, 티벳, 파키스탄 히말라야도 있다. 이곳을 언제쯤 가볼지 아직 모르지만 1년에 한 번씩이라도 히말라야을 방문하고 싶다. 꼭 걷지 않더라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싶다. 산을 그리고 자연을 마음에 품은 사람이면 히말라야는 1순위는 아니더라도 2순위는 차지하지 않을까. 세상 어딘가에는 사람 발길이 닫지 않은 그런 곳이 존재할 테니까 말이다.

마차푸차레 꼭대기는 2분 남짓 볼 수 있었다. 구름에 수시로 가려진 탓에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줬고 나는 하산을 결정했다. 마을로 빠르게 내려갈 수 있는 다른 루트가 있었고 포카라에는 오후 3시에 도착했다. 트레킹은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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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포카라는 다른 세상. ⓒ 정웅원


덧붙이는 글 1월 12일부터 3월 21일까지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네팔 #마르디히말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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