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파리에서 크루아상으로 해장하다

[프랑스 여행기] 관용과 여유를 잃은 듯 보이지만

등록 2017.05.02 10:43수정 2017.05.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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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언덕 위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전경. ⓒ 구창웅 제공


잠시잠깐 내린 비가 그친 후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선 개선문이 보인다. ⓒ 구창웅 제공


누구나 마찬가지다.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은 어색하다. 평소 살아온 공간으로부터 수천 km가 떨어진 곳. 전날의 과음으로 인해 편치 않은 위장을 달래줄 방식이 한국과는 판이한 프랑스.

콩나물국이나 뜨끈한 새우죽을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장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뜨지 않은 새벽 6시쯤. 허한 속을 달래줄 뭔가를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다행이었다. 가까운 곳에 빵집이 있었다.


바게트, 크루아상, 베이글, 샌드위치…. 이른 시간임에도 파리의 제과점은 갓 구운 빵들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로 가득했다. 검은 머리칼이 한 올도 보이지 않는 은발의 할머니가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와 따스한 웃음이 세련돼 보였다.

그런데, 빵을 고르고 값을 치르는 방식이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할머니의 새벽 빵집을 찾은 손님 중 어떤 사람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한 걸음 떨어져 빵의 냄새를 맡아보고, 색깔로 구운 정도를 확인한 후 아주 천천히 빵을 고른 파리 사람들은 전혀 급할 것 없다는 태도로 줄을 서서 자신이 값을 치를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다닥~" 소리가 나도록 급하게 치즈케이크와 단팥빵을 쟁반에 주워 담고는, "빨리 계산해주세요"라고 서두르는 '한국적 방식'에 익숙한 나는 조금 놀랐다.

어떤 방식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이런 게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여유'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허겁지겁 골라 재빨리 값을 치르고 먹은 어떤 빵보다 자그마치(?) 20분을 기다려서야 먹을 수 있었던 그날의 크루아상이 유난히 맛있었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프랑스 연인들은 애정표현에 거침이 없다. 거리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커플. ⓒ 구창웅 제공




불 밝힌 에펠탑. 아래 선 사람들을 보면 탑의 크기와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 구창웅 제공




가난한 거리의 연주자들... 그러나 얼굴엔 미소가

파리에서 보낸 며칠을 떠올려보면 '한가로움'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소급된다. 프랑스가 지닌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 공간인 파리 국립도서관과 퐁피두센터를 찾았을 때다.

100m가 넘는 긴 줄임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조급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 행렬 속에 서 고등학생들은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고, 내 또래로 보이는 40대 파리 시민들도 손에 든 신문이나 잡지를 들여다보며 나른한 봄날의 햇살을 즐기는 듯 보였다.

비단 도서관이나 문화센터만이 아니었다. 파리 거리와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코디언이나 바이올린을 꺼내들고 버스킹(busking)을 하면서도 그들은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넉넉한 웃음이 그들을 '거리 연주자'가 아닌 '인기 뮤지션' 이상으로 멋져보이게 했다.

삶은 받아들이는 자들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기엔 궁핍하고 곤궁할 수도 있는 예술가의 삶.

하지만, 가난에 굴복하지 않고, 그걸 넘어 삶의 어떤 '궁극'에 닿으려는 노력이 있다면 허름한 입성의 거리 연주자가 연미복(燕尾服)을 갖춰 입은 유명 연주자만 못할 것이 무엇인가. 애초부터 예술은 돈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가난에 주눅 들지 않은 파리 거리의 음악가와 화가들을 보며 마음 속으로 이런 물음을 던져봤다.

"그들이 곤궁함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과 더불어 타자의 삶을 바라보는 '대범함'과 '여유'였다. 물질적 이유만으로 누구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는 당당한 자세에서 오는.

멋진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인 파리의 거리 연주자. ⓒ 구창웅 제공




센 강 유람선을 타고 가며 본 파리의 야경. 아름답게 축조된 교량이 인상적이다. ⓒ 구창웅 제공




야트막한 파리 시내, 거기엔 높은 인간적 이상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우리가 '프랑스의 장점'으로 인정해온 것들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쓴 망명객 홍세화가 말한 '톨레랑스(관용의 정신)'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 2017년 파리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속적으로 유입된 아랍계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감은 적지 않은 청년들이 극우정당 '프랑스 국민전선' 대통령 후보인 마린 르펜(Marine Le Pen)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과도한 톨레랑스와 여유가 파리 젊은이들을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바뀐 세상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리면 모두는 예민해진다. 그건 동양인과 서양인, 젊은 세대와 노년층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밥그릇이 위협받는다고 불합리한 이유와 온당치 않은 방식으로 다른 이들의 숟가락을 빼앗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런 딜레마는 비단 프랑스만이 아닌 한국도 겪고 있는 사회변화의 과정인 듯하다.

이러저러한 상념에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려 센 강 주위를 산책하기도 하고, 어둠이 깔린 파리를 배경으로 유유자적 떠가는 유람선에 올라 수천 년을 소리 없이 흘러온 강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파리에 도착한지 사흘째였던가? 짙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던 날,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처럼 휘청휘청 몽마르트르 언덕을 향했다. 스스로의 그림자가 자신을 놀라게 하는 현기증 나는 오후.

사크레쾨르 성당 앞 난간에 올라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도시의 풍경.

10층 이상의 높은 건물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 소박하고 야트막한 풍경에서 나는 보았다. 정체와 퇴행으로 오해될 수도 있는 '프랑스의 오류'가 버릴 수 없는, 아니 버려서는 안 될 '인간만의 이상'으로 바뀌어가는 광경을. 그건 분명 취기에 의한 환시(幻視)가 아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프랑스 #파리 #톨레랑스 #마린 르펜 #몽마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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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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