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해명 내놓은 SBS, 왠지 석연치 않다

[미디어 톺아보기 ⑥] SBS 게이트키핑 잘못 아닌, 의제설정 잘못 더 커

등록 2017.05.04 15:26수정 2017.05.0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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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는 2일 8시 뉴스에서 '차기 정권과 거래?…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조사'를 제목으로 보도했다 인터넷에서 기사를 삭제했다. 국민의당은 이 보도를 토대로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 맞춰 세월호 인양을 연기한 것처럼 주장했지만 실제 기사 내용은 거꾸로 해양수산부가 차기 정부 눈치를 보느라 뒤늦게 인양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 SBS


"저희 보도 취지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략) 이는 기사 작성과 편집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SBS 보도책임자로서 기사의 게이트키핑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는 데 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거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누구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로 모범을 보여야 할 지상파 방송사가 '게이트키핑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어물쩍 사과했지만 사과만으로 쉽게 수그러들 문제가 아니다.

유권자(시청자)들에게 올바른 선택과 소중한 주권행사를 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유용한 선거보도를 준수해야 할 지상파방송이 저지른 실수라고 보기엔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대선 일주일 전 SBS 대형오보, 무엇이 문제였나?

그것도 선거 일주일을 남겨놓고 대형 오보를 냈으니 내·외부적으로 파문이 쉬 가라앉을 리 만무하다. 선거 이후에도 이 문제는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해당 방송사 노조 말마따나 '보도참사'가 벌어진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규명하여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SBS는 19대 대통령 선거일 7일 전인 지난 2일 초대형 의제를 설정했다. 이날 저녁 <8뉴스>에서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란 기사를 비중 있게 내보냈다. 하지만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한 세월호를 객관적 사실 확인 없이 의제로 선택한 것이 큰 화근이 되고 말았다.

기사는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눈치를 보며 인양속도를 더디게 조절하는 듯한 뉘앙스로 전달했다. 해수부 공무원의 발언 녹취를 핵심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확인 결과 취재원은 세월호 인양 일정수립과는 아무런 권한과 책임이 없는 사람으로 드러나 충격과 논란을 야기했다.


당장 민주당과 해수부는 세월호 인양 지연과 문재인 후보와의 연관 가능성을 제기한 SBS에 강하게 반박하고 나서는 등 이 문제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지만, 선거를 코앞에 두고 발생한 문제여서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한다.

SBS는 문제의 보도가 나간 다음 날인 3일 <8시 뉴스> 시작 전에 '세월호 가족·문재인 후보·시청자들께 사과드립니다'란 제목과 함께 사과방송을 내보내고 "기사 작성과 편집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결과"라며 "SBS 보도책임자로서 기사의 게이트키핑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명과 사과를 했다. "해당 기사를 SBS 뉴스 홈페이지와 SNS 계정에서 삭제했다"고도 했다.

[의문①] 왜 게이트키핑의 잘못이라고 해명했나?

이날 사과는 김성준 본부장이 직접 했으나 미심쩍은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중대한 의제를 설정해 전파로 날려놓고 '가짜뉴스' 또는 '악의적 보도'라는 지적이 거세지자 기사를 삭제하고 해명과 사과를 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날 보도된 내용 중 방송사 스스로 인정한 대목, 특히 '인터뷰의 자극적인 표현들이 특정 후보에게 근거 없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는데도 여과 없이 방송된 점', '녹취 내용에 대한 반론을 싣지 못한 점'을 '잘못'이란 사과 한마디로 어물쩍 넘길 사안은 아닐 듯싶다.

김 본부장은 이날 사과방송에서 "SBS 보도책임자로서 기사의 게이트키핑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는 데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지만, 이 점이 바로 더욱 의문이 가게 하는 대목이다. 게이트키핑의 문제만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뉴스의 선별과정(의제설정)에서 게이트키핑(gatekeeping)은 수많은 게이트키퍼(gatekeeper)들의 취사선택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방송사(또는 언론사) 조직 내에서 어떤 뉴스는 보도하고, 어떤 뉴스는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수용자들에게 뉴스의 문(gate)을 열거나 닫는 문지기의 역할을 하는, 이른바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게이트키핑이라고 한다면 최종 게이트키퍼는 해당 매체의 최고 보도책임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적 가치 판단에 따른 심리적 요인뿐만 아니라 내·외부적 상황에 따른 이익이나 조직상의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곤 한다. 게이트키퍼가 초기 정보 수집 단계에 참여하는 취재기자이건, 최종 승인 의제설정 책임자인 보도국장이건 그들이 속한 조직의 이념적 성향과 경영 방침 등을 항상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이러한 게이트키핑은 의제설정의 전제 과정이기 때문에 이번 SBS에서 발생한 사고는 하루 만에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방송을 내보냈다는 것 자체가 게이트키핑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의제설정의 잘못으로 보는 게 옳다.

[의문②] 비중 있는 의제설정 과정을 왜 보도책임자가 몰랐을까?

의제설정(agenda-setting : 언론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현재 진행되는 이슈에 대해서 공중의 생각, 토론을 설정하는 방식)은 언론이 어떤 특정한 이슈를 선정하고 그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과정이기 때문에 타 언론사가 제기하지 않은 의제를 항상 헤드라인 또는 톱뉴스로 설정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럴 경우 의제 파급력이 크다는 사실을 최종 게이트키퍼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기사들 중에서 특정 기사를 비중 있는 의제로 설정해 보도할 때는 사전에 여러 단계의 지시 또는 확인절차가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단독기사로 그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경우 의제설정 과정은 더욱 꼼꼼하고 반복적인 확인이 수반된다는 것쯤은 언론사 내부 종사자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더구나 SBS는 '우리는 사실에 기초해 진실을 추구한다. 우리는 권력과 자본을 비롯한 모든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독립해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보도한다. 우리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우리 보도의 근간임을 확인하며 이념적 편향을 거부한다'를 보도준칙으로 삼고 있는 언론사다.

그렇다면 선거 과정에서 의제설정은 더욱더 신중하게 이뤄졌어야 한다. 중요한 의제설정 과정을 보도책임자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공정성과 객관성, 윤리성 등이 결여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부족할 민감한 기사에 대해 덜렁 의제로 설정해 보도해 놓고 반향을 보면서 기사를 내린다든지, 사과로 어물쩍 순간을 넘기려 한다면 어찌 전파방송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의문③] 취재의 기본원칙 무시한 기사를 왜 성급히 다뤘나?

전파의 희소성 때문에 공공재인 전파의 주인은 다름 아닌 국민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부가 공공재인 전파를 공정하고 유용하게 관리해야 하는 까닭이다. 오보를 내보내고도 '아니면 말고 식'의 방송보도라면 공공재인 전파를 낭비하는 꼴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촛불 시민혁명과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말미암아 비롯된 조기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방송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간과할 수 없는 사고다. 박근혜 탄핵 정권의 압력으로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을 지연했다는 의혹은 이미 수차례 입증됐다.

그럼에도 SBS가 다른 방향의 의혹을 새롭게 제시하기 위해 기사를 내보내기로 의제설정의 방향을 잡았다면, 사전에 더욱 신중하고 철저한 취재와 확인을 거쳤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취재의 기본 원칙인 복수의 취재원을 통한 확인과 비판의 대상 입장 확인을 무시한 기사를 중요 의제로 설정했다는 것은 어떠한 해명과 사과로도 쉽게 설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뉴스본부장은 이를 '게이트키핑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여러 게이트키퍼들 즉, 내부 종사자들에게 공동으로 전가하려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어 더욱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 철저한 진상규명 유선

물론 최종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이나 부적절한 개입이 있었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아무리 상업방송이라 하더라도 공공재인 전파를 활용해 사회적 공기 역할을 수행해야 할 기본적 원칙들을 소홀히 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일부 정치권에서 '가짜뉴스'란 비판과 함께 '집권하면 당장 없애겠다'며 벼르고 있다. 이처럼 방송사가 수모를 당하는 것은 전파의 주인인 국민이 욕먹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선거철에 정치적·정략적으로 활용돼서는 더욱 안 된다.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 그리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한 책임소재를 더욱더 분명히 해줄 것을 많은 시청자들과 유권자들은 바라고 있다.
#SBS오보 #게이트키핑 #의제설정 #대선보도 #방송보도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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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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