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농성... 이곳도 곧 '정상화' 되겠죠?

용산화상경마장추방대책위의 대선 이후 첫 주말 풍경

등록 2017.05.15 18:39수정 2017.05.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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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도박장 옆 천막농성장 모습 ⓒ 설혜영


학교앞 화상경마장 반대운동 1473일째, 노숙농성 1208일째 5월 13일 토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전 10시 삼삼오오 용산화상경마장천막농성장으로 학부모 주민들이 모입니다. 금토일 경마가 있는 날은 주민들도 어김없이 경마장 앞에서 5년째 싸우고 있는 곳이란 걸 각인시키려고 합니다. 담임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이 둘러 앉아 아이들 자라는 얘기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성심여중 부모님들에게는 다른 한가지 미션이 더 있습니다. 학교앞 경마장 폐쇄를 바라며 학부모님들은 중학교 1반, 고등학교 1반이  돌아가는 경마장 당번 날을 나란히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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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일째, 노숙농성 1208일째 5월13일 토요일 집회 ⓒ 설혜영


오전 11시 30분, 집회를 정리하기 30분 전이면 함께 집회 소감을 나눕니다. 이제 학기 초를 넘어서서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성심여중 1학년 학부모들의 경우 집회 참여는 낮설기만 합니다. 피켓 들기도, 구호 외치기도 낮설기는 마찬가지지요. 반 대표 어머님들은 어색하시는 부모님들에게 화상경마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려고 경마장으로 동네가 피폐해진 대전 월평동 사례를 카톡으로 전파하며 독려를 하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 긴 터널을 지나온 새로운 정부의 활동은 따뜻한 봄바람 같기도 합니다. 우리 경마장에도 하루 빨리 따뜻한 봄소식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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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일째, 노숙농성 1208일째 5월13일 토요일 단체 사진 ⓒ 설혜영


낮 12시, 집회를 마치면 어김없이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킨 우리들이 대견하고 작은 힘이지만 한 명 한 명이 소중함을 알기에 단체사진 찍기는 얼굴 도장 찍기가 아닌 여전히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봄나들이 하기 좋은 날씨를 뒤로 하고 많은 학부모님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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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 공동대표 ⓒ 설혜영


경마장대책위 집행부를 맡고 있는 정방대표를 비롯한 몇 사람은 금방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천막농성장 뒷정리도 해야 하고 지난 수요일 진행한 운영위 회의 결정 사항을 점검하기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여연대와 간담회도 진행하기로 하고 대선 때 학교앞 경마장 폐쇄를 약속했던 더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으니 우리 문제도 풀릴거라고 믿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막막하기도 하고,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나눕니다. 중요한 시기니만큼 놓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꼽아 봅니다. 이제 곧 천막농성을 시작한지 1600일이 다가옵니다. 6월 10일이니 그 날을 계기로 새정부에 우리의 의견을 다시 한번 전달하는 계기로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거의 다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정방대표는 어지러워진 천막을 정리합니다. 좀 있으면 학교 선생님이 당번으로 오실텐데 어지러운 상태를 두고 갈 순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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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0시 길가의 모퉁이돌처럼 불을 밝힌 화상경마장 ⓒ 설혜영


저녁 10시 경마장, 원효대로 6차선 차로 바로 앞 천막, 화려한 불빛의 18층 화상경마장 건물 바로 옆에 있지만 어쩐지 천막은 외소해 보지지 않습니다. 가까이 가야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그리 밝지 않은 불빛이지만 천막의 불빛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늦은 저녁 오늘의 경마도 종료되고 오가는 사람도 없는 거리에 켜져 있는 도박경마장을 반대하는 천막의 불빛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모퉁이 돌입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눈에 잘 보이지 않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모퉁이 돌입니다.

오늘은 성심여중고 14분의 남자 선생님 중 한분이 철야농성 당번입니다. 주중에는 동네 남성들이 지키고 그리고 학교 수업에 지장이 작은 토요일은 학교 선생님이 철야를 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당번은 돌아옵니다. 대책위의 가장 어른이신 성심여고 김율옥 교장수녀님과 성심여중 임태연 교장수녀님은 집회때마다 고마워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재충전의 시간인 휴일을 반납하고 집회 나와 준 선생님들, 부모님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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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앞 도박장 추방을 염원하는 일요일 미사 ⓒ 설혜영


5월 14일 일요일 오전 11시, 도박장 추방을 염원하는 미사가 진행중입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5시 15분에는 미사가 열리고 매 달 첫 번째 금요일에는 기독교 예배가 진행됩니다. 오늘 함께해주신 신부님은 오늘로 두 번째 저희 미사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4년간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큰 힘은 중심을 잡아주시고 작은 이견보다 대의를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던 성직자 분들의 가르침과 안내 덕분이었습니다.

5월 14일 11시 40분 "문재인 새 정부에 바랍니다"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합니다. 기자가 오셨습니다. 한 분밖에 안 오셨지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시지 않으셨어도 집회 이후 트윗, SNS 활동으로 알려나갈 것이기 때문에 저희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4년의 활동이 가르쳐준 것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기자회견, 피켓팅 등등 사람들이 많이 오든 적게 오든 언론 보도가 많이 나던 적게 나도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왔기에 지금껏 버텨 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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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부에 바란다" 기자회견 ⓒ 설혜영


"저희가 싸운지 1474일이라고 합니다. 사실 너무 힘들지요. 전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기운이 빠져가지고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서부터 첫 해는 큰 일났다. 학교앞에 화상경마장이 들어온다 해서 싸웠고 2014년에는 기습개장을 막느라고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 곳을 지켰던 시간들도 있었고 2015년 5개층 개장을 하고 나서 2016년을 지나면서 잘 하고 있는건가? 우리가 제대로 싸우고 있는 건가 질문했던 시간들도 기억이 납니다. 지난해 겨울 국정농단 교육농단의 시간에 우리는 이 곳을 지키면서도 광화문을 지키려고 무척 애썼던 기억도 납니다. 이 곳에서부터 광화문까지 두 차례 행진도 했고, 우리 식구들을 매번 그 곳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비정상 속에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학교앞에 화상경마장 분명히 비정상입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은 학부모와 대통령이 새롭게 분명히 바꿀 수 있는 농림부장관의 시행령으로 벌어진 이 일이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학교앞에서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주거 환경을 지키기 위해 내 주말을 희생해야 하는 비정상이 아니라 주말에는 쉴 수 있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비정상의 정상화 안에 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막바지까지 우리 안에 힘을 끌어내고 서로 연대하고 다시 그 힘을 모아서 그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 공동대표/ 성심여고 교장 김율옥 수녀님)

교장선생님이 지치고 힘이 든다는 말씀을 듣고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솔직한 말씀을 들으니 그 만큼 이제 그 심정을 이해할 정도로 우리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는 걸 새삼 확인합니다. 이제 정말 빨리 끝내야겠다는 간절함이 생깁니다.

이제 선생님과 교장선생님들 학교로 온전히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모든 에너지와 사랑을 아이들에게 온전히 쏟을 수 있도록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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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 설혜영


"오늘 죄송하기도 하고 고맙습니다. 지난 5년간 너무 고생하셨는데 이제 끝이 보이지 않나 감히 생각해 봅니다. 임종석 비서실장 분석기사에 상당한 분량이 용산에 와서 반대 농성에 힘을 실어주고 국민대통합위원회 쫒아가서 중재하려고 했던 노력이 보도되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 정무부시장때 여러 번 통화하고 모시고 오고 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과는 차원이 다른 뭔가 기억력이 뛰어나고 스마트한 비서실장이다. 설마 잊어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용산 대전에서 도박장이 폐쇄된다는 것은 앞으로 두 지역에만 좋은 일이 아니라 학교 앞 주거지 앞에 도박장이 들어올 수 없다는 중요한 계기와 교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좀 지치기도 하지만 전국의 많은 국민들이 응원을 하고 있으니 빨리 좋은 결과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여연대 안진걸 공동사무처장)

나온 배를 가리기 위해 피켓으로 몸을 가리고 바람을 맞으며 나오신다는 안진걸 처장님의 발언에 잠시 웃습니다. 안진걸 처장님의 존재감은 남다릅니다. 연대하는 사람이 아닌 가족같은 느낌입니다. 항상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뭐가 미안한지 어리둥절합니다. 권력의 핵심 정부를 견제하고 전국구를 뛰어다니는 사람이 매주 일요일은 거의 어김없이 경마장에 옵니다. 일정 때문에 집회시간에 맞추지 못할 때에는 혼자 경마장 출구 앞 1인시위를 하고 천막농성장에서 SNS를 무기로 힘을 보탭니다. 화상경마장 천막 화이트보드는 그가 용산 화상경마장에 쏟은 시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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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 내부 모습. 노란 현수막 박원순 시장의 메세지가 눈에 띈다. ⓒ 설혜영


미사, 기자회견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바로 헤어지기 어려워 천막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머님들이 정성들여 집에서 만들어오신 남은 간식을 맛보며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길을 나눠봅니다. 단연 화제는 새정부요, 청와대입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농성장 방문 얘기가 나옵니다. 서울시 정무 부시장을 할 때 박원순 시장이 오시기 전 임실장은 먼저 경마장을 방문했습니다. 진영의원, 화상경마장지사장을 만난 뒤 부패방지위원회도 뛰어다닐 정도록 열정을 보여주었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님이 우리에게 써준 천막농성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노란 현수막 글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그 의지는 바로 임실장의 의지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박과 교육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용산경마장이 문 닫는 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2016년 3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정방대표는 임실장 방문을 떠올리며 말씀이 별로 없어서 특별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사람이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었다고 하니 이제 길이 열리겠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때 받은 명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전화도 못 넣고 있었습니다.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와도 하루 빨리 우리도 돌아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어도 새 정부가 얼마나 바쁠까, 우리 보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을 텐데 생각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모여서 말이 나온 김에 문자라도 보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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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장 추방을 염원하는 투표 참여 캠페인 ⓒ 설혜영


지난 운영위에서 결정된 상주 대책위 후원금 집행을 얘기 나누는데 깜짝 놀랄 소식이 도착합니다. 조심히 보낸 문자에 이렇게 금방 답을 받으리라고 생각 못했습니다.

"그때 해결 못해 늘 맘에 걸렸습니다. 새정부가 안정되는 대로 같이 의논하지지요."

천막은 들썩들썩 어찌나 박수를 쳤던지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네요. 이제 생각해보니 문자를 보낸 시간은 일요일 12시 20분. 청와대 참모진 발표 기자회견 3시간 전. 이삿날 찾아온 억울하다는 주민의 손을 붙잡고 들어가 라면을 대접했다는 대통령 부인의 배려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아직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능성, 소통의 메시지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사실 지난 5년은 전쟁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사회가 카드깡으로 만든 돈으로 주민들을 이간질 시키고, 듣도 보도 못한 폭력 폭언이 난무하는 전쟁통같은 경마장앞을 지켜야 했습니다. 촛불이 끝나고 집으로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우리는 계속 같은 현장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그 동안의 고통은 보상받지 못합니다. 다만 학교앞 주거지앞을 지키겠다는 우리의 노력을 위로해 줄 거라고 믿으며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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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옥 성심여고 교장수녀님 발언 모습 ⓒ 설혜영


"5년째 노숙농성과 집회, 미사를 이어가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학생들을 위해 맨앞에 서 계신 성심여중과 여고 교장수녀님들을 비롯한 선생님, 수녀님들, 함께 해주시는 학부모, 주민들이 계셔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내에 비정상이 정상으로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희는 그 날까지 굳건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겠습니다."(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 정방 대표)
#용산화상경마장 #교육환경 #참여연대 #임종석 #문재인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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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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