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춧값 폭락하니 계약 무효" 농심 울리는 밭떼기

봄배추 매매계약 허술... 표준계약 적극 홍보해야

등록 2017.05.16 10:47수정 2017.05.1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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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생육상태가 좋지 않아 농민과 유통상인 간에 책임공방이 발생한 배추밭 모습. ⓒ <무한정보>이재형


농산물 포전매매(일명 밭떼기) 거래 시 표준계약서 작성이 관련법에 명시돼 있음에도 농촌현장에서 적용되지 않아 농민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불합리한 포전매매 계약으로 피해를 당하는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작성을 적극 독려하고 보급·홍보해야 할 지자체가 뒷짐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5월 들어 본격 수확철인 봄배추 가격이 폭락하면서 전국 최대 주산지인 충남 예산군(오가·신암면 등) 시설재배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배춧값이 폭락하자 산지유통인(중간상인)들이 계약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아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농민들이 받은 배춧값 일부를 돌려주는 등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전 매매 시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산지유통인이 제시하는 약식계약서를 썼기 때문이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 제53조(포전매매의 계약)에는 '농식품부 장관은 포전매매 표준계약서를 정해 보급·권장하고, 계약당사자는 표준계약서에 준해 계약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생산자 및 소비자 보호와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해 필요시 대상품목·지역·신고기간을 정해 포전매매 계약내용을 신고하도록 할 수 있다'고 밝혀 지자체가 적극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놨다.


표준계약서 내용을 보면 산지유통인과의 분쟁소지를 막고 농민피해를 보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잔금지급일이 농산물 생육기간의 3분의 2가 경과하기 전 지급 △계약금은 매매대금의 30% 이상 지급 △농작물의 생육상태 확인 △농산물의 용수·시비·제초·방제 등 관리주체와 위험부담 명시 △농산물의 반출조건 등이 세세하게 적혀 있다.

특히 종종 분쟁의 대상이 되는 천재지변, 기상재해 및 병충해, 종자결함 등 불가항력으로 농산물 멸실시에도 농민이 잔금을 받았다면 산지유통인이 부담토록 하고 있다. 또한 농산물의 반출도 후작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이뤄지도록 조건을 달아놨다.

하지만 농촌에서 이같은 표준계약서가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현실이다. 상인들이 표준계약서 작성을 회피하고 있고, 농민들도 관행 때문에 표준계약서 작성을 강하게 요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게 표준계약서 작성을 적극 홍보·교육하고 현장 지도해야 할 농업행정(군청, 기술센터)과 농협들 또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해남군 등 타지역과는 달리 그동안 예산군에서는 표준계약서 작성에 대한 홍보조차 이뤄지지 않았을 정도다.

최근 예산읍을 비롯해 오가·신암면 등 주산지에서는 가격폭락으로 산지유통인들이 배추를 수확해 가지 않아 농민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농민들은 결국 후작재배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산지유통인에게 받은 배춧값 일부를 돌려 주거나 대폭 깎아주고 있는 실정이다.

오가면에 사는 한 농민은 "비닐하우스 한 동당 280만 원에 계약했는데 결국 80만 원을 빼줬다. 또 '작업비도 안 나온다. 더 달라'며 수확을 해 가지 않아 미칠 지경이다. 배춧값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면 우리한테 한 푼도 더 안 주면서 매번 이러니 농민들만 당한다. 얼른 까닥 짓고 다음 농사를 져야 하니 어쩌지 못하는 것 아니냐. 농민들 다 마찬가지 심정이다"고 목청을 높였다.

농민 김·이·윤아무개씨 역시 올해 산지유통인 최모씨와 봄배추 포전매매계약을 한 뒤 골탕을 크게 먹었다.

수확을 앞둔 배추의 생육상태가 좋지 않자 산지유통인이 '농민의 관리 잘못'이라며 소송을 하겠다는 등 으름장을 놓고 계약무효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만난 농민들은 "우리는 물관리만 해주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그런데 장사꾼(산지유통인)이 배춧값이 떨어지니까 생장을 억제하기 위해 빈나리 등 각종 농약을 과도하게 살포해 배추가 약해를 입었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물관리를 잘못 해서 꿀통(배춧속이 썩는 속 무름병)이 발생했다며 돈을 돌려 달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우리가 평생 농사지었는데 그걸 왜 모르겠냐"며 입을 모아 하소연했다.

이들이 작성한 계약서는 유통상인이 제공한 약식계약 서식으로 농산물 멸실과 반출에 대한 분쟁을 대비한 조항이 명시되지 않았다. 더구나 특약사항으로 '추대·꿀통 발생 시 농민이 책임'지는 것으로 조건을 달아놓기까지 했다.

이와 관련 예산군농어업회의소 윤동권 사무국장은 "배추 등 시설재배 채소류는 특성상 밭떼기가 아니면 팔기가 어려운 구조다. 특히 올해 봄배추 같이, 장사꾼들이 돌아다니며 좋은 가격에 농민들을 현혹해 왕창 심게 해놓고 가격이 폭락하니까 각종 구실을 달아 돈을 되돌려 받고 있다"고 포전매매유통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었다.

그는 이어 "농민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유통정상화가 시급하다. 특히 농업기술센터, 군청, 농협들이 나서 표준계약서 이행을 교육홍보하고 계약시기에 나와서 현지 지도해야 한다. 농업회의소에서도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포전매매 #밭떼기 #표준계약서 #봄배추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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