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이번엔 역사박물관으로 보낼 수 있을까

등록 2017.05.24 11:12수정 2017.05.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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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에 턱없이 모자란 정부여당의 의석수와 2% 초반대로 주저앉은 경제성장률 그리고 산업구조의 성숙함으로 인해 불가피한 구조조정 등 정치적, 경제적 환경 모두가 최악이다.

국외적으로는 더하다. 한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미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정치적 고립주의와 경제적 보호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이는 한미동맹을 무기로 한국의 방위비 추가부담과 한미FTA 재협상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또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균형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보통국가 전환에 대한 야욕은 한일군사비밀보호협정 등 한반도 문제 개입의 가능성으로 작동할 여지도 있다.

더구나 북의 핵과 미사일 위기는 안보위기론으로 연결돼 수구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또 ICBM 등 북의 군사력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도달할 경우 현재 한반도가 처한 전략적 지형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 경우 우리 스스로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방도도 모색해야 한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처한 상황은 결코 녹록지가 않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난 정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함께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가 필수다. 문재인 정부도 스스로 촛불항쟁이라는 '피플 파워'를 통해 출범한 정부임을 자임하고 있다.

새 정부는 국민주권과 적폐청산이라는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위한 통합의 분위기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미래지향적인 가치와 대안도 함께 지향해가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보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문재인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박수가 이어지고 있다. 기대한 것 이상의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의 부당하고 부패한 일들을 바로잡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겠다는 행보 덕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정치인 문재인을 옭아맸던 친문패권주의의 프레임도 힘없이 무너지고 있다.

우려했던 대북 통일정책에 있어서도 박수를 받을 만한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국면을 진정시키기 위한 남북 간의 대화는 이와 별도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청와대 핫라인의 조속한 재개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대북제재 체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인적, 사회·문화·스포츠 교류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5·24 조치 해제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그리고 6·15 공동선언 남북 공동 행사에 대한 검토도 언급했다. 참으로 기쁘고 다행스런 모습이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통일에 대한 입장은 지난 참여정부의 모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북의 비핵화를 위한 노력과 함께 당면한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투트랙(two-track) 전술을 동시에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대화를 통한 상호신뢰 구축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이나 남한의 진보세력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대북송금 특검 수용이었다. 이 결정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고 남북관계 또한 경색케 하였다.

또 다른 이유는 국가보안법 철폐의 실패다.

유난히 추웠던 2004년 12월. 여의도 국회 앞 노상에서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수백 명의 단식농성이 전개되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은 탄핵 기각으로 인해 열린 우리당이 국회의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고 노무현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역사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히던 때였다. 누가 봐도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폐지는커녕 개정조차 하지 못했다. 정부는 무기력했고 집권여당은 무능력했다. 되돌아보면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불철저함과 책임정치라는 정당정치의 미성숙함이 그 원인이 되었다.

국가보안법이야말로 냉전시대의 진영논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표적인 적폐다. 그동안 반민족·반통일 기득권세력들은 국가보안법을 무기 삼아 정권유지와 기득권 보존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국가보안법의 뿌리가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인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치안유지법이 국가보안법으로 이름이 바뀐 지금은 독립운동가가 아닌 민주주의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군림하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제19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제22조)를 탄압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참여정부의 국가보안법 폐지 실패의 역사를 반성하며 오늘의 결의를 다잡아야 한다. 이것이 다시 국가보안법 철폐의 요구를 꺼내 든 이유다.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촛불의 거대한 흐름은 정권교체를 넘어 새로운 역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 한복판에 국가보안법 철폐가 있다. 대선 기간 중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조항은 개정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남북관계의 긴장이 해소되고 대화국면으로 들어갈 때 할 얘기"라고 답했다. 비록 단서를 붙이고는 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입장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보며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저는 제가 한 말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졌다. 묘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발언이다.

국가보안법, 이번엔 진짜 역사박물관으로 보낼 수 있을까?
#문재인 #장금석 #국가보안법 #적폐청산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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