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들은 암보험 등 전혀 무관한 상품도 인수가 거절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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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 Z코드, 우울증인데 암보험은 왜?어이가 없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다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제가 들려던 보험은 상해보험이 아니라 암보험이었습니다. 자살이나 자해 등을 보장하는 보험이 아니었단 얘기죠. 흡연자도 폐암이 보장되는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일부 보험사 콜센터들은 '최근 진료가 있느냐'는 말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말을 하면 더 이상 듣지도 않고 어떠한 보험도 안 된다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보험 가입 거부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등에 관한 법률 제 17조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이를 언급하자 장애인이시면 몰라도 약물과 검사를 계속하고 계시는 분이면 안 된다고 상담 자체를 거부하더군요.
시중에 가입을 도와주겠다는 설계사들도 찾을 수는 있었으나 정신과 치료 사실을 미고지한 후 일정 기간 이상 정신과와 관련한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편법만이 대안이라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죠. 이는 말 그대로 편법이었고 보험 가입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서너 번 정도 거절을 당하고 나니 다소 짜증이 나서, 인수를 거절했던 보험사 콜센터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에 다시 전화해 Z코드를 언급하며 따져 물어봤습니다. Z코드(보건일반상담)란, 약물이나 검사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주 경미한 정신과 환자들에 부여되는 코드로 보험 가입이나 취업, 승진등에 차별을 우려하는 이들을 위해 기록이 남지 않도록 국가에서 조치한 질병 분류 코드입니다.
어차피 저는 F코드 환자지만 최소한 코드는 물어보고 거절해야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정신과 치료를 고지하는 환자의 인수를 거절하는 것에 법률적 문제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 자살률... 정신과로의 걸음을 망설이게 하는 차별들이는 명백한 차별입니다. 앞서 가입코자 하는 보험이 상해가 아닌 암보험이므로 가입 거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긴 했습니다만 사실 어지럼증도 없고 자해도 전혀 하지 않으며 자살생각도 아예 없는 저와 같은 환자는 상해보험 역시 거절할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OECD에서 압도적인 자살률 1위 국가 자리를 수년째 지키고 있는 이 나라, 갖은 혐오표현이 인터넷과 일상에서 판을 치는 나라에서 자기 몸 자기가 간수하겠다고 스스로 병원에 다니는 이들의 보험 인수를 거절하는 것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시중에서 정상적인 경로로 구입이 가능한 정신과 약물은 모두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완료된 것이나, 정신과 약물의 오랜 복용이 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우려된다면 뇌에 대한 보장을 제외하면 될 일입니다. 우울증을 앓는 환자라면 자살에 대한 보장을 제외해서라도 인수를 해야 옳습니다.
이런 일 생기지 말라고 나라에서 정해놓은 Z코드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역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경증이어도, 하다 못해 가벼운 불면증이어도 약물 처방은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Z코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Z코드 환자에 대한 인수 거부를 장애인 가입 거절처럼 '차별'로 취급하여 법률로 강제하고 있지 않아 그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해 진료를 받았을 뿐인 이들은 보험사의 인수 거절 앞에 속수무책이고요.
이런 사소한 차별들이 자살률 최고의 나라에서 정신과 행을 망설이게 한다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잠 안 와서 병원 가서 약 몇 번 먹었더니 아무 보험도 가입이 안 되더란 말을 듣고 각종 암이나 심혈관 질환 등을 우려하는 이 중 누가 정신과 문턱을 쉽사리 넘겠습니까.
어느 누구든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면 안과 내과에 가듯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하고, 안과 내과에 내원한 적이 있더라도 겪었던 질환이 보험의 인수를 거절할 중대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면 인수하듯 정신과 환자들 혹은 치료 이력이 있는 이들 역시 보험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좀 더 실효성 있는 Z코드 정책과, 보험사들의 차별 없는 인수를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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