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을 '아내의 날'로 보낸 하루

호주 시골 생활 이야기

등록 2017.05.25 15:04수정 2017.05.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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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작은 식당이지만 음식이 좋아 자주 찾는 타이 식당. 이제는 주방장도 우리를 알아본다. ⓒ 이강진


지난 5월 14일은 호주의 어머니날이었다. 호주에서는 매년 5월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보낸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미국도 호주와 같이 어머니날을 정해 지내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어머니날은 호주와 다르다. 호주는 영국의 종주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관계이며 많은 관습도 영국과 유사하다. 그러한 호주가 영국과 다른 어머니날을 택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어머니날을 맞았다. 아내와 둘이서만 지내고 있으니 어머니날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 멀리 떨어져 사는 딸에게서 전화 한 통화 받은 것이 전부다. '아내의 날'이 아니라 어머니날이라며 손사래 치는 손을 잡고 가까운 동네 포스터(Forster)를 찾았다.

포스터는 관광지라 식당이 많다. 음식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 입맛에 맞는 일식집만 해도 서너 개 있다. 그중에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일식집도 있다. 따라서 웬만한 나라 음식은 쉽게 맛볼 수 있다. 식당도 고급스러운 것부터 대충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저렴한 식당까지 다양하다.

얼마 전에는 시드니에서 찾아온 친구 내외가 한 턱 내겠다고 해서 바닷가에 있는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 가장 비싼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신 것 같다. 음식값이 너무 많이 나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이렇게 비싼 식당이 시골 동네에 있으리라고 생각 못 했을 것이다. 맛있게 잘 먹긴 했지만...

오늘은 타이 음식을 먹기로 했다. 태국에서 1년 정도 산 적이 있어서 그런지 타이 음식을 좋아한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새콤하면서도 타이 향이 넘쳐나는 탐냥꿍이라는 음식을 특히 좋아한다.

타이 식당은 전역 군인을 위한 RSL(Returned and Services League)클럽에 있다. RSL클럽 주차장에 들어선다. 저녁을 먹기에 이른 시각이지만 주차장에는 빈자리 찾기가 힘들다. 간신히 주차하고 클럽으로 들어선다. 클럽은 평소보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어머니날에는 모든 식당이 만원

이른 시각이지만 2층에 있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타이 식당에 일단 가본다. 가끔 왔던 곳이라 낯설지 않다. 눈에 익은 직원이 인사를 한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식당에는 직원이 예약한 손님 좌석 배치를 하느라 분주하다. 예약 없이 찾아온 우리를 난감한 눈초리로 보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조금 있더니 간신히 두 자리 낼 수 있다며 웃음을 보낸다.

식당에서 저녁 손님을 받을 때까지 시간이 있다. 호주의 많은 식당은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어 식사 시간을 놓치면 끼니 때우기도 힘들다. 얼마 전 한국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관광 온 부부가 점심시간이 지난 후에 식당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푸념을 들은 생각이 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와인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바로 앞에 있는 카지노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으로 붐빈다. 많은 사람이 노름 기계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며 행운을 기다린다. 옆 테이블에는 나이든 여자 혼자서 뜨개질하고 있다. 테이블에 맥주잔이 두 개 있는 것으로 보아 동행이 있는 것 같다. 조금 있으니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카지노에서 나오더니 테이블로 돌아와 맥주를 마신다.

식당에 손님 받을 시각이 됐다. 맥주를 다 마신 부부가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간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이들과 함께 있던 대식구도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간다. 식당이 열기까지 아래층에서 우리처럼 기다리던 사람들이다. 우리도 먹다 남은 포도주병을 들고 천천히 타이 식당으로 향한다.

직원이 창가에 있는 자그마한 테이블에 의자 두 개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하얀 천으로 덥힌 테이블에는 서너 개의 풍선이 매달려 있다. 어머니날 특별 메뉴도 조금 비싼 가격에 준비되어 있다. 삼삼오오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이 대부분이다. 우리처럼 부부만 앉아 있는 테이블도 하나 보인다. 이른 시각이라 자리는 많이 비어 있다. 우리 옆으로는 20여 명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예약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대식구가 올 모양이다.

어머니날 특별 메뉴를 주문했다. 조금 기다리니 메뉴에 포함된 샴페인을 가지고 온다. 샴페인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분위기에 어울린다. 잔을 부딪친다. 이제는 어머니를 지나 할머니가 된 아내가 앞에 앉아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맺고 아옹다옹하며 살아온 또 다른 나의 삶이다.

흔히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조건 없는 사랑을 품고 있기에 어머니는 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 앉아 있는 아내를 잠시 바라본다.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여자는 약하지만, 아내는 강하다'. '남자는 약하지만, 남편은 강하다' 등등.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사랑이 넘쳐난다면.
덧붙이는 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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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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