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 기업이 책임지게 해야 줄일 수 있다

구의역 참사 희생자 고 김군 1주기를 맞아 (2)

등록 2017.05.25 15:48수정 2017.05.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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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노동절 낮에 삼성중공업에서 타워크레인이 쓰러져,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노동자 단결과 연대의 날, 투쟁과 축제의 날에, 아니 유일한 법정 유급 휴일인 5월 1일조차 쉬지 못하고 일하던 노동자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다니 산재왕국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이다.

왜 하필 노동절에, 왜 하필 휴게실을 덮쳐서... 탄식할 수는 있지만,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 노동절이든 일요일이든, 명절날이든 어린이날이든, 원래 하루에 꼬박꼬박 6~7명이, 365일 내내, 일 때문에 죽고 있다. 노동절이 아니더라도, 휴게실을 덮치지 않았더라도 이미 우리 곁에 늘상 있던 일이다.

물론 '원래'는 없다. 하루 6~7명이 일하다 죽는 것은 비정상적인 사회다.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해, 지금 당장 변화가 필요하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5월 2일 곧바로 입장을 발표해 하청중심 생산구조와 위험의 외주화를 바꿔내고, 보상과 처벌을 원청인 삼성 중공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 크레인사망사고 그 절반의 사실, 20170502, 사건 자체에 대한 가장 자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세한 주장이기에 직접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하청 구조가 위험을 키운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이후 발간된 구의역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사고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승강장 안전문 유지·관리 업무의 외주화는 관리적 요인에서 위험을 증대시킨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서울메트로의 용역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은 최소화·형식화되었고, 안전매뉴얼 미준수가 일상화되었지만, 서울메트로는 이런 상황을 사실상 방치했다. 승강장 안전문 장애처리 절차는 용역 업체와 서울메트로 본사 사이의 소통이 지속적으로 오고가는 9단계를 거쳐 이루어져야 했는데, 사고 당시 이와 같은 매뉴얼의 단계별 조치는 모두 무시된 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번 삼성중공업 사고에도 비슷한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업의 특성상 골리앗 크레인과 지브 크레인의 작업공간이 서로 겹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크레인을 운전하는 작업자와 두 크레인의 신호수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중요한데, 골리앗 크레인 운전자와 신호수는 삼성중공업 정규직노동자인 반면 지브 크레인 운전자와 신호수는 하청노동자였다. 구의역 사고와 마찬가지로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사이에 필수적인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제기된다.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도 올라와 있는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의한 대로라면, 크레인 운전은 이 법에 따른 직접 고용 대상이 아닐 수 있다. 위험을 확대시키는 하청 구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렇게 특별법 형태로 직접 고용 의무 대상을 둘 게 아니라, 상시적,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업무에 대해서는 직접 고용을 기본으로하는 것이 옳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장이 책임지게 하라

기업이 책임지게 해야 산재 사망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위험한 업무는 직접 고용하게 하는 것도 산재 사고에 대해 기업이 직접 책임을 지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책임이란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를 뜻한다. 산재사망 사고에 대하여 법적인 의무와 제재, 경제적 부담을 기업이 지게 해야, 산재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 기업이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다단계의 하청 중심 생산 구조와 특히 그 중층 구조가 위험한 업무에 더욱 집중돼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책임을 질 주체가 불분명해진다.

이번 사고에서도 병원에 후송된 31명의 노동자는 총 8개 하청 업체에 속해있다. 심지어 그 하청업체 안에서도 다른 물량팀 소속이거나 불법 인력업체 소속인 노동자도 있다고 한다.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실제 사용자는 삼성중공업이다. 게다가 이번 사고의 경우 전체적인 생산 공간을 관리하고 서로 다른 크레인의 작업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책임은 명백히도 삼성중공업에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 현재의 법체계에서는 책임 소재가 이 8개의 하청 업체 혹은 물량팀 팀장으로 내려가게 된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동안 원청 대기업들은 산재사고를 줄인다면서, 산재가 발생한 하청 업체들과 계약을 해지하거나 징계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현대중공업이 대표적이다.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현대중공업은 안전 조치에 수천억 원을 투자하고 안전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하면서도, 하청업체와 노동자에 대한 징계와 징벌, 계약해지로 산재율을 낮추려고 시도했다.

사내유보금을 수백조 쌓아 놓은 재벌 대기업은 위험을 외주화하고, 안전투자는 외면한다. 그러는 사이 하청 업체에 의한 산재 은폐는 늘어나고, 안전 펜스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망은 계속해서 반복됐다.

이것은 진짜 사장이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다. 예방책임도 보상책임도 빠져나가면서 한해에 수백원의 보험료를 감면 받는 원청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구조적 살인"이다.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고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과 정부 관료에 조직적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쓰는 최민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삼성중공업 #구의역 #위험의외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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