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걸어가는 용인외대부고생들.
윤근혁
'수상한'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은 기숙형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 경기 용인외대부고생 102명. 이 버스는 용인외대부고가 학교 돈으로 대절한 이른바 '귀가 버스'다. 2005년 외국어고로 문을 연 이 학교는 2010년부터 전국단위 학생모집 자사고로 말을 갈아탔다.
그런데 마중 나온 자동차에 올라타는 학생은 절반 정도. 나머지 학생들은 어디로 걸어가는 것일까?
"여기(대치동에) 사는 학생들은 별로 없어요. 학교 버스를 타고 지방 학생들이 많이 와요. (주말) 학원에 가야 하니까."
자녀를 마중 나온 한 대치동 학부모로 보이는 여성의 현장 전언이다.
버스에서 내린 A학생에게 다가가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했다. 대치동이 아닌 수도권 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 학생은 30여 분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용인외대부고생 "학교가 대치동 학원행 다 안다""저희 학교 수준에 맞춰 수업해주는 데(학원)가 여기(대치동 학원) 밖에 없어요. 금토일 3일간 학원에 가야 해요. 방 얻어놓고 자취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학원 수업 다 들은 뒤 지방에서 부모가 태우러 오는 아이들도 있고요. 절반가량은 대치동이 집이 아닐 거예요."네 번째 주 금요일인 이날은 용인외대부고가 정한 의무 귀가일. 용인외대부고에 따르면 이 학교는 매달 넷째 주를 의무귀가일로 정한 뒤, 버스를 대절해 학생들을 실어 나른다. 이날은 모두 18대를 대절했다. 이 가운데 3대가 대치동 학원가 근처로 온 것이다.
A학생은 "의무 귀가일이 아닌 나머지 주 금요일에는 한 대표 엄마가 돈을 걷어 버스를 부르는데, 이때는 대치동 학원 코앞까지 데려다준다"면서 "다른 지역 학생들이 집이 아닌 대치동 학원으로 온다는 것 학교도 다 안다. 서울대 몇 명 갔는지 자랑하는 학교니까 (대치동) 학원가는 걸 막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올해 이 학교가 만든 22쪽 분량의 학교소개 책자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두 군데 적혀 있다.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이 책자엔 또 '국내대학 합격현황'이 적혀 있는데,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차례대로 앞세워놓았다.
이 학교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린 뒤 4시간 30분이 흐른 이날 오후 11시 30분. 서울 대치동 학원가 한복판에 있는 6층짜리 건물. 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이 건물에 들어섰다.
이 건물 4층에 올라가 출입문을 열었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와 강남교육지원청 학원 단속반 2명의 공무원과 동행해서다.
학원 강사 앞에서 6명의 학생들이 영어공부를 하다 말고 기자를 쳐다봤다. "모두 버스 타고 온 용인외고 학생들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그렇다"고 답했다.
책상 위엔 '용인 외대부고 2017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문과 수업자료 2차'란 글귀가 적힌 책자가 널브러져 있다. 용인외고 기출문제 모음집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