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들고 오신 오이지, 눈물이 핑 돌았다

친정어머니의 사랑 담은 오이지, 여름이면 생각 나는 이유

등록 2017.06.17 16:03수정 2017.06.1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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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가 담가주신 오이지. 오이지를 염장하여 물에 담가 먹거나, 꼭 짜서 갖은 양념으로 무쳐 먹는다. 더운 여름날 얼음물에 담가 식초한방울이면 여름별미이다. ⓒ 이상명


더운 여름철이 다가오면 상큼하고 새콤하고 시원한 음식이 먹고 싶어집니다. 저희 친정에서는 여름이면 오이지를 많이 담가서 익은 후 쫑쫑 썰어 시원한 얼음물에 담가 밥반찬으로 먹곤 했습니다. 밥맛 없고 기운 없는 여름 날, 오이지 한 사발이면 반찬 걱정 없이 맛있게 먹곤 했지요.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20년 전부터 당뇨를 앓기 시작하셨습니다. 급기야 9년 전부터는 신장이 급속도로 나빠지셔서 현재 격일로 혈액투석까지 받으시는데 염장 음식은 신장에 매우 안 좋다 합니다. 그리 좋아하시고 또 담그시는 재미가 있다며 즐거워하셨던 오이지도 당연히 중단했고 드시지도 않았답니다.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고 여름이 되면 친정어머니의 짭짤한 오이지가 그렇게 생각이 나더군요. 인터넷 보며 집에서 담가보아도, 재래시장에서 파는 오이지를 사와도, 마트에서 파는 포장 오이지조차 짜기만 하고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은은하고 깊은, 무어라 표현할 길 없는 그 맛이 너무도 그리웠습니다.

지난해에는 친정어머니께 당뇨발까지 생겨 전보다 걸어 다니는 것이 힘들다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외손주들 보는 재미라며 자주 오시는 친정어머니께 오이지 담그는 법을 다시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전에 가르쳐 준 것이 잘 안 되었느냐며 왜 다시 묻느냐고 하더군요. 아이들 키우는 데 그런 것까지 하다 보면 더 힘들다며 사다 먹으라고요.

그래서 엄마의 손맛인지 어릴 적 엄마 집밥에 길들어서인지 맛이 없다고 하자,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본인이 건강하면 오이지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키워주고(아이들 출산과 양육으로 직장을 그만둔 딸이 항상 안쓰럽다고 하시는 친정어머니) 할 텐데 미안하다면서요.

어머니가 애써 들고 오신 오이지, 눈물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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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가 담가 가져오신 오이지 시판 오이지는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더니 아픈 몸으로 담가서 들고오신 오이지. ⓒ 이상명


젊은 시절 고생하시다 아프신 건데 그게 왜 미안할 일이냐며 낳아주고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지요.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당뇨발로 오른쪽 새끼발가락을 절단하셔서 예전처럼 걷기가 쉽지 않으신 어머니가 오이지를 낑낑 들고 오셨습니다.

몸도 안 좋으시고 힘든데 왜 이런 걸 가져오냐며 핀잔을 한 내 모습이 후회됩니다. 내 핀잔은 뒤로하고 담가온 오이지를 내려놓으며 딸 먹일 생각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며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시더군요. 예전처럼 맛깔나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연신 걱정도 하시고요.

"사 온 오이지처럼 입맛에 안 맞음 다시 엄마 줘. 아빠라도 드리게."
"아냐, 엄마. 눈으로도 너무 맛있어요. 근데 다음부턴 힘드니까 하지마. 괜히 엄마 힘들게 했나 봐."
"너 먹일 생각하니까 하나도 안 힘들더라. 또 말해. 먹고 싶은 거. 죽을 힘을 다해서 나 살아있을 때까지는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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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 오이지 여름이되니 오이지가 먹고 싶은데 직접 담갔더니 맛이 없고, 시판 오이지도 엄마손맛이 아니라하니 직접 담가오셨다. 당뇨합병증이 있으시면서도 자식 먹일 생각하니 하나도 안힘들다며 함박웃음. ⓒ 이상명


눈물이 핑 돌더군요. 당뇨망막증까지 있어서 얼굴은 보여도 얼굴에 흐르는 눈물까지는 못 보시는 친정어머니.

"내가 당뇨망막증 때문에 눈이 잘 안 보여서 돋보기 안경끼고 또 돋보기로 들여다보면서 깨끗이 씻어서 했어."
"엄마가 해 준 건 다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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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지를 생수에 담갔다. 염장오이지는 생수에 담가 먹거나 쫑쫑 썰은 후 물기 꼭 짜서 양념에 무쳐먹는다. ⓒ 이상명


맛있다는 한마디에 웃음꽃을 피우시는 친정어머니.

그 어떤 약보다 직접 한 음식 자식 입에 넣어주는 게 더 힘이 난다면서 오늘도 신장 혈액투석을 위해 병원차를 타십니다.

엄마,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주세요. 너무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오이지 #친정엄마오이지 #친정엄마 #오이지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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