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의 '클린 룸'은 정말 클린했을까?

직업병의 입증책임 완화와 전자산업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국회가 노력해야

등록 2017.06.15 08:49수정 2017.06.1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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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이 유해화학물질에 맞선 단체들의 국제네트워크 'IPEN' (ipen.org)의 제안으로,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아 <클린룸 이야기>라는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이 영상은 삼성반도체, SK하이닉스반도체, LG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첨단 전자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 뇌종양 등 직업병 피해를 입은 20여 명의 젊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소중한 증언이 담겨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질병과 죽음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클린룸에서 사용되는 독성화학물질 영향으로 의심되나, 기업의 영업비밀 주장에 가로막혀 화학물질 정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조차 가로막힌 채, 아픈 이들이 증명해야 산업재해를 인정해준다는 잘못된 법제도와 현실 속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 힘들어하던 이들의 담담하지만 아픈 증언입니다.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클린룸 이야기> 상영회를 통해 '전자산업의 유해화학물질 취급의 문제'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 '직업병 피해문제 해결'에 대해 국회와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가 같이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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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룸이야기 상영회 포스터 6월 20일 오후2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리는 "클린룸이야기" 상영회 포스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엘지디스플레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뇌종양, 다발성경화증 등 중증 직업병에 걸린 분들의 인터뷰가 담긴 상영회이다. ⓒ 반올림


2013년 클린룸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먼지 하나 없는 방, 하얀 방진복, 눈에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클린'했다.

뜻밖에 충격적이었던 것은 운동장 만한 공장 안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천장에 설치된 레일 위로 웨이퍼 박스만 빠르게 움직일 뿐 공장 안은 적막이 흘렀다. 큰소리로 소리를 질러야 겨우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에 띄엄띄엄 하얀 방진복을 입은 여성 노동자들이 서서 일하고 있었다. 인간이 기계의 한 부속품이 돼 있는 것 같은 약간의 공포를 주었던 기억이 난다.

클린룸을 방문하게 된 계기는 새로운 문제가 확인됐기 때문이었다. 국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반도체 작업 환경이 과거와 달리 현재에는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2013년 은수미 의원실은 두 가지 문제를 확인하고 폭로했다.

첫째,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에 비해 2배 가까이 '자연유산'을 이유로 병원을 찾았다는 사실, 둘째 PM작업(장비 개보수 및 청소, 세정) 노동자들이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되고 그것이 클린룸에도 퍼졌다는 점 등이었다.


2007년 황유미씨의 산재 신청으로 삼성 반도체 직업성 암 문제는 의학적 과학적 인과관계가 정확히 증명되지 못했을 뿐이지, 여러 조사와 연구결과를 통해 반도체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관리가 안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직업성 암에 걸렸다는 점이 조금씩 법원을 통해 인정되고 세상에 알려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현재도 생식독성, 발암성, 변이원성 등 독성 화학물질이 다뤄지는 반도체 공장에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자연유산'과 '불임' 등으로 고통받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충격이었다. 삼성과 달리, 하이닉스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줘서 클린룸을 방문할 수 있었고, 그 후 하이닉스는 국회와 시민단체와 함께 작업환경 개선 노력을 적극적으로 했다.

산재 입증 책임 완화, 화학물질 영업비밀 남용 방지

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은 2009년 처음 황유미씨 사건이 국회로 왔을 때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삼성 반도체 직업성 암을 비롯한 전자산업의 작업환경 문제를 다루었다. 반올림의 헌신적인 활동 덕분이다.

특히 강병원 의원은 작년, 삼성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많은 산재 입증 자료 들을 공개하지 않았던 점, 그런 삼성을 관리 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기업의 영업비밀에 대한 자체 판단 없이 국회와 법원의 문서 제출 요구에 삼성의 문서수발병 노릇만 해 온 점을 지적하고, 앞으로는 고용노동부가 영업비밀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산재 제도 개선이 더디게 이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2011년과 2012년 사이 산재 인정기준이 확대됐고, 산재 판정 절차도 개선됐다. 그 결과 7종에 불과한 직업성 암의 인정 범위가 21종으로 늘었고, 산재 판정 절차에서도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됐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게 많다.

아직 결실을 본 것은 아니지만, 산재 입증 책임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과 화학물질 관리가 더 안전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법안이 강병원 의원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돼 있다.

산재 입증 책임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작업환경 측정 자료와 특수건강검진 자료 등이 제대로 관리되고 보존되도록 하고, 꼭 필요한 영업비밀은 심사를 통해 보장받도록 하고, 그 외 안전에 관련된 정보들은 영업비밀로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입증 책임의 전환이 어렵다면, 적어도 직업병 리스트(직업병 인정기준)를 충족하면 질병과 업무 간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을 추정해 산재 입증의 어려움을 개선하려고 한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정부도 동의를 하고 있어, 야당만 동의를 한다면 머지않아 산재 입증의 어려움이 일정 정도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오는 20일 국회에서 <클린룸 이야기> 상영회를 한다.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상영회이다. 많은 분들이 관람하고 이들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조라정님은 강병원 국회의원실 보좌관입니다. 이 글은 사전 동의하에, 미디어오늘, 민중의소리와 중복게재되는 기고글입니다.
#반올림 #삼성백혈병 #삼성직업병 #강병원 #클린룸
댓글

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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