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아 봐, 선물 줄게"

[시골 아버지 살림노래] 맨발이 아주 좋은 시골아이

등록 2017.06.24 13:53수정 2017.06.2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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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살림노래(육아일기)를 적어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 태어날 무렵에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이었다면, 아이들이 제법 큰 요즈음은 아이한테서 새롭게 배우고 아이랑 고맙게 배우는 살림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아이와 지내는 나날은 '육아일기'보다는 '살림노래'가 어울리지 싶어요. 살림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듯이 배우고 누리는 나날이라는 마음입니다. 며칠에 한 번씩 공책에 짤막하게 적어 놓는 살림노래를 이웃님과 나누면서 '살림하며 새로 배우는 기쁨'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글쓴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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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이 좋지. ⓒ 최종규


맨발이 아주 좋아

어디에서든 맨발로 놀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시골에서뿐 아니라 가끔 도시로 마실을 가더라도, 아스팔트나 전철에서도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놀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두 발로 튼튼하게 서고 두 다리로 씩씩하게 달리면서 웃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얘들아, 너희 아버지도 어릴 적에 으레 맨발로 놀려고 했단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아마 너희 어머니도 똑같은 몸짓으로 놀았을걸. 우리는 맨손으로 모든 것을 짓고, 우리는 맨발로 어디이든 가며, 우리는 맨몸으로 온사랑을 길어올리거든.

비랑 우산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아이들입니다. '비가 올 뿐인데'라든지 '고작 우산을 쓸 뿐인데' 하고 여긴다면 아이들 마음을 못 읽는 셈이기도 하고, 어른으로서도 삶이 재미없는 노릇이로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재미있고, 땡볕이 뜨거운 날은 땡볕이 뜨겁기에 재미있으며,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이 불어서 재미있어요. 비가 와서 우산을 쓸 수 있고, 우산을 쓰며 걸어다닐 수 있으니, 이 하나로도 얼마나 새로우면서 즐거울까요. 날마다 늘 새롭다고 여기면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때에 어린이 마음이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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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은 비하고 논다 ⓒ 최종규


손가락 베기

오른손 넷째손가락을 벱니다. 코감기가 붙어 어제 하루는 된통 숨조차 쉴 수 없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 낮으로도 콧물바람으로 지내다가, 밥을 차려 먹이고 숨을 돌리다가 참외라도 깎아서 주어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그만 칼을 놓쳤어요. 놓친 칼이 바닥에 떨어질까 싶어 얼른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칼날에 손가락이 닿았고, 살점을 푹 박으며 찌릿한 기운을 느끼면서 손을 뒤로 빼고 발을 들었어요.

손가락은 푹 베었으나 발은 칼에 박히지 않습니다. 얼뜬 몸으로는 섣불리 칼을 쥐지 말아야 할 텐데, 그나마 한 손가락만 베고 그칩니다. 밴드를 붙여 다시 칼을 쥐고 설거지를 한 뒤, 밴드를 떼어 갈고, 다시 밴드를 뗀 뒤에 자리에 누워 골골댑니다. 코감기는 어제와 대면 많이 나아서 그럭저럭 한 시간쯤 눈을 붙일 만합니다. 갑작스레 웬 모진 코감기이랴 싶으나, 몸살을 되게 하면서 다시금 새로운 살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 몸으로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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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소재지 놀이터에서도 그냥 맨발 ⓒ 최종규


놀면서 기쁜 몸짓

아이들하고 살며 새삼스레 생각해 보는 대목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바로 '놀면서 기쁜 몸짓'입니다. 아이들하고 한집살림을 하기 앞서는 그냥 '아이들은 마음껏 놀아야 한다'고만 여겼어요. 아이들하고 한집살림을 한 지 아홉 해를 보내면서 돌아보자면, 아이들은 '그냥 마음껏 놀기'를 넘어서 '놀면서 기쁜 몸짓'일 때라야 튼튼하고 아름답게 자라는구나 싶어요. 무슨 놀이를 하든 기쁜 웃음이 될 노릇이에요. 어디에서 놀이를 하든 밝게 노래하는 하루가 될 노릇이에요. 이는 어른한테도 똑같아요. 무슨 일을 하거나 어디에 있든 웃고 노래하는 살림을 지을 때에 나부터 씩씩하고 아름답게 꿈을 펼치는구나 싶어요.

아이들 전화

광주마실을 하며 바깥일을 보는데 아이들이 전화를 합니다. 큰아이는 아버지가 오늘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서 동생하고 어떤 놀이를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큰아이더러 밥은 잘 먹었느냐고 묻다가 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이 아이들한테 '밥 잘 먹는지'가 가장 궁금할까 하고 말이지요. 오늘은 밥하고 카레를 해 놓고 나왔는데, 카레가 좀 매워 아이들이 잘 먹을는지 안 먹을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작은아이는 누나를 이어 전화를 바꾸더니 오늘 누나하고 얼마나 사이좋게 재미나게 놀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이러면서 말해요.

"아버지, 집에 돌아올 적에 전화해야 해."

광주에서 하룻밤을 묵으려다가 생각을 바꾸어 고흥으로 돌아가는 막차를 탔어요. 고흥 읍내에서 택시를 잡아 집으로 왔지요. 밤 열한 시가 다 되는데 두 아이는 아직 안 잡니다. 늦게까지 잠을 미루면서 놀았니? 아이들은 아버지를 보더니 대뜸 한마디 합니다.

"아버지, 집에 오는 길에 전화한다면서?"

그렇구나. 바삐 돌아오느라 전화할 생각을 못 했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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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에 바다에서 시원하게 놀자 ⓒ 최종규


새벽 설거지

엊저녁에 끝내지 못한 설거지를 새벽에 합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에 마당에서 별바라기를 하다가, 찬바람을 온몸에 안고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합니다. 막상 새벽 설거지를 하고 보면 '그냥 엊저녁에 마무리했어도 되었을 텐데' 싶습니다. 그러나 엊저녁에는 이 얼마 안 되는 설거지를 할 기운이 없어요. 곯아떨어지기 바빠요. 머잖아 아이들이 저녁 설거지를 도울 수 있다면 따로 새벽 설거지를 안 할 만하겠지요. 머잖아 아이들이 새벽에 쌀을 일고 씻을 뿐 아니라, 이엠발효액도 마련해 놓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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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고갯마루 공원에서 작은아이가 건넨 선물. ⓒ 최종규


선물 줄게

소포를 부치러 읍내에 나왔습니다. 읍내 한쪽 고갯마루에는 공원이 있기에, 고갯마루 공원으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쉽니다. 두 아이는 고갯마루 공원을 마음껏 달리다가 나무를 타면서 놉니다. 이러다가 작은아이가 나한테 다가옵니다.

"선물 줄게."

빙그레 웃음짓는 작은아이는 덧붙입니다.

"눈 감아 봐."

붉게 물든 나뭇잎 둘하고 솔방울 하나를 고갯마루 공원 걸상에 살짝 내려놓고 달려갑니다.

"고마워."

아이들은 늘 선물을 주는 님입니다. 아이들은 참말로 늘 선물을 주는 고운 님입니다. 아이들은 참말로 아침저녁으로 어버이한테 따스한 사랑을 담아서 늘 선물을 주는 하느님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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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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