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웠던 가사서비스, 이제 한시름 놓는다

가사서비스 이용 8년 차가 바라본 '가사근로자 고용개선법'

등록 2017.07.05 09:27수정 2017.07.0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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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쌍둥이 남매가 6세였을 때의 일이다. 친정엄마는 남매가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현관서 가사도우미 아줌마의 신발을 발견하면, "아줌마!"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신이 났었다고 전했다. 퇴근이 늦은 엄마·아빠를 대신해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게 지루했던 쌍둥이 남매가 일주일에 2번 집안일을 도와주시러 오는 분을 그렇게 반길 줄은 몰랐다.


3년간 우리 집에 오셨던 도우미 아주머니는 쌍둥이 남매를 무척 살갑게 대해주셨다. 가사도 무척 도움이 됐지만, 아이들의 정서에도 무척 좋았다. 이렇게 아이들과 정을 나누던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는 개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셨다. 그 덕분에 새로운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셨을 때, 사람의 교체로 마음이 바쁜 나와 친정엄마 사이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떼를 쓰기도 했다.

우리집의 경우 부부 모두 퇴근이 늦어서 저녁에 청소기나 세탁기를 돌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사실 쌍둥이 남매가 활동성이 넘치기도 해 층간소음까지 걱정하다 보니 늦은 시각 청소기나 세탁기를 돌리는 건 금기 항목이다.

퇴근 후 귀가하면 아이들의 잠투정을 받아줘야 하고,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는 숙제와 간단한 학습까지 덤으로 챙겨야 해 집안일은 늘 미뤄지기 일쑤다. 결국 학교에 있는 시간 외의 육아는 친정엄마, 가사는 가사도우미 서비스에 위임하는 것으로 맞벌이 부부와 쌍둥이 남매의 일상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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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소파의 쌍둥이 사용 전후 거실 소파의 쌍둥이 사용 전후 ⓒ 이나연


지난 6월 26일 고용노동부가 '가사근로자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약칭 가사근로자 고용개선법) 제정에 관한 입법예고를 발표했다. 그동안의 가사서비스는 사인(私人) 간의 금전 계약 또는 직업소개소의 알선을 통해 이뤄졌다.

이 법안은 기존 가사서비스의 구조를 고용부의 관리 감독을 받는 '가사서비스 전문 제공 기관'을 통해 가사근로자는 근로계약, 이용자는 이용계약을 하고 서비스 계약 수단을 '가사바우처' 형식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4대 보험을 포함해 근로시간에 따른 유급휴가까지 명시한 이 법안은 가사근로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한다는 근본 취지와 더불어 가사서비스의 금전 계약 양성화에 따라 향후 여성의 사회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기존 가사도우미 서비스, 이런 문제 있었다

먼저, 도우미에 따라 서비스의 품질이 균일하지 않을뿐더러 비용에 대한 가치 입증이 어려웠다. 어떤 도우미는 청소나 빨래를 잘하고 어떤 도우미는 요리를 잘했다. 한 가지를 잘하면 다른 한쪽이 아쉬웠다. 집안일 하나하나가 나름의 전문성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너무 심한 경우가 많아 마음에 맞는 도우미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이 어릴 때, 우리 부부는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반복했다. 다행히 가족의 식사는 친정엄마가 챙겨주시는 우리 가족의 환경에 맞춰 요리보다 청소나 빨래에 능한 도우미만 선호했다. 아이들이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요리도 잘하는 가사도우미가 필요했으나 교체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모든 걸 다 잘하는 도우미는 일정 시점이 되면 비용 인상을 요구해서 오랜 기간 함께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비용은 증가하는데 사인(私人) 간의 금전 계약이다 보니 어디에서도 비용을 인정받지 못했다. 가사서비스 이용으로 인해 연간 지출되는 현금은 결코 적지 않다. 카드 사용도 불가능하다. 연말정산에서 가사도우미가 대신해준 가사 노동의 가치는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또, 사람에 대한 신뢰 확보가 어려웠다. 빈 집에 모르는 사람이 오는 것이 싫어 편리성을 알면서도 가사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들도 많이 봤다. 확인되지 않은 신분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비슷한 사정에 처한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분 확인 문제뿐만 아니라 도난·훼손 사고로 인해 도우미 교체를 하게 된 사례도 드물게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나는 서비스 이용 8년 차이지만, 귀중품을 도난당하거나 심각한 물품 훼손을 겪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부부가 집안일을 할 때에 비해 소형 가전제품의 잦은 고장으로 인한 교체가 발생했고, 세탁 및 주방세제 등이 기대 이상으로 사용되는 게 불편했다.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서비스의 질에 영향을 미칠까봐 도우미에게 소중히 다뤄달라거나 절약해달라고 요청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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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설거지 ⓒ ⓒ eak_kkk, 출처 Pixabay


거꾸로 가사도우미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진상 고객'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서비스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질러진 집과 쌓여있는 설거지·빨래 등은 애교다. 가사서비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육아나 사적인 심부름까지 제공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엄연히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인(私人) 간의 계약 관계라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보호받기가 어렵다. 일을 하다가 다쳤을 때, 주인의 부주의로 분실된 물건에 대해 의심받을 때, 갑작스러운 계약 중단 통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도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 등 가사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도 힘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

퇴근했을 때 깔끔하진 집을 만나면 가족 간의 갈등이 줄어든다.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도 정리돼 있고, 통이 넘치는 빨래도 개켜 있고 새로 널어져 있다. 주말에 가사노동을 몰아서 하지 않아도 된다. 집안일을 나누기 위해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 역시 줄어든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모든 가사를 주말에 몰아서 하곤 했다. 아침만 함께 먹는 부부라 설거지는 식기가 모자랄 때마다, 빨래와 청소는 주말에 몰아서 한 번만 하면 됐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매일 빨래와 청소를 신경 써야 했고, 이유식을 비롯한 아이들 식사 준비로 매일,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요리와 설거지가 필수였다.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한 건 남편의 조언 때문이었다. 뭐든 직접 해야 적성이 풀리는 성격이던 내게 어느날 남편이 말했다. "비용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해도 되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그 시간을 아껴서 아이들과 함께하거나 차라리 네가 쉬는 시간으로 삼는 게 좋겠다." 이렇게 가사 노동에서 해방된 일부 시간을 아이들에게 혹은 내게 투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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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직후 쌍둥이가 어지러놓은 거실 퇴근 직후 쌍둥이가 어지러놓은 거실 ⓒ 이나연


'가사근로자 고용개선법', 아쉬운 대목도 있다

'가사근로자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가사서비스와 육아서비스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다. 우리집만 해도 육아도우미로부터 도움을 받다가 쌍둥이 남매를 어린이집에 보낸 이후 가사서비스로 전환하기 위해 완전히 다른 기관을 통해 구인요청을 했다.

처음 가사서비스를 이용할 때 육아 영역의 약간의 도움을 전제로 계약했으나 어느 쪽도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노동을 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대부분의 육아 전담 도우미는 가사를 하지 않거나 아이를 위한 가사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안은 육아서비스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장이 양분돼 있고, 그 수요층이 확실히 다르기 때문에 좀 더 상세한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이 법안은 가사서비스의 구조를 개인간 계약관계에서 공적 계약관계로 이전시키는 것이라 세금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이용요금의 일부를 세액공제 등을 통해 환급해줌으로써 이용요금 인상률을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업체에 등록(고용)된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법안 제정이 기대하는 효과는 얻을 수 없다. 가사근로자가 이용자로부터 받은 '가사바우처'를 전문 제공 기관에 제시하면 바우처 금액의 75% 이상을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서비스가 바우처의 금액만큼 이뤄졌는지에 대한 점검 방안은 명시돼 있지 않다. 어린이집(유치원) 보육바우처 사업에서도 경험했듯 이용자와 기관이 법을 악용하고, 서비스는 이뤄지지 않았는데 세금만 공제받는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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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우미 가사도우미 ⓒ ⓒ geralt, 출처 Pixabay


금번에 제정되는 '가사근로자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은 엄밀히 말해 워킹맘 혹은 맞벌이 부부를 위한 건 아니다. 법의 주요 골자는 가사 서비스 영역의 관리 체계 마련과 더불어 가사서비스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제정됐다. 가사서비스를 오래 이용한 소비자로서는 법의 원래 취지와 더불어 가사서비스라는 사적 영역의 일이 공적 영역으로 이끌어낸다는 점도 함께 주목하고 있다.

옛날에는 돈 많은 사모님들만 이용하는 것이라고 인식됐던 가사도우미 서비스가 이제 일하는 여성, 특히 일하면서 육아하는 여성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서비스가 됐다. 또 핵가족화돼 더 이상 다른 가족들에게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전업맘들의 몸과 마음이 지치기 전에 혹은 가사가 서툰 남성들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중에 각자의 일로 피곤한 부부가 가사를 서로 미루느라 신경전을 벌이기보다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또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확보된 시간을 자녀들에게 혹은 자신을 위한 휴식이나 자기계발에 쓸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조금 더 앞서나간다면 적절한 도우미를 구하지 못해 조부모의 도움을 받는 경우 이런 공식적인 업체와 근로계약을 통해 은퇴한 조부모들의 새로운 근로 영역을 창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조부모 세대와 젊은 세대간 신뢰할 수 있는 양육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법 시행 이후가 무척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70점엄마 #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가사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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