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환자의 몇 가지 생각

희망의 언덕 오르는 길 찾기

등록 2017.07.08 15:31수정 2017.07.0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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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는 수술과 약물 치료가 끝나면 국가가 관리하는 중증환자임에도 병원에서 약을 처방해주지 않으며 국가적인 지원이나 관리 프로그램도 없다. 환자 개인이 자기 집에서 면역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을 찾고 몸에 맞는 운동을 하는 등 자기만의 길을 찾든지, 아니면 전문적인 요양 기관에 의탁하여 치료하며 완치의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러는 중에 국가의 관리기간이 끝나는 시점까지 환자는 과제물 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들러 혈액검사와 ct촬영 등 추적검사를 통해 재발이나 다른 이상 유무를 확인받아야한다.

그런 과정에서 만약 재발이나 전이 사실이 발견된다면 꼼짝없이 환자책임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현실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재발의 불안을 털고 오직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키우자고 다짐을 하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한다는 사실은 어느 순간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가?'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의구심이 되어 가슴에 파문을 만들고 갈등을 키우는 등 환자 개인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는 현실이다. 현실적 불안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치유의 길을 찾는 삶은 중증환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시간의 연속이라고 하겠다.

모든 암 환자들이 음식에 조심해야겠지만, 특히 직장이 아예 없거나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직장암 환자들은 음식으로 인해 대변 횟수가 증가하고, 더불어 항문이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 자칫 변 지림으로 인한 낭패를 겪는 일도 많은데 이는 음식과 배변이 직접적인 상관관계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가리는 음식이 더 많아진다.

하지만 같은 직장암 환자라고 하더라도 직장이 남은 정도, 체질과 선호하는 음식, 나이, 병의 진행 정도에 따라 같은 음식을 먹고도 나타나는 반응은 다르다고 한다. 때문에 음식을 특정하여 권하는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는 정답일 수 없다고 한다.

혼자 길을 찾아가야 하는 부담에 더하여 음식의 조리를 환자 본인이 할 수 없는 경우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도 애로사항이다. 매일 매 끼니 환자의 영양상태를 고려하고 또 환자에게 뒤탈이 없는 음식 만들기란 특별한 성의와 노력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통제 불가능한 몸의 상태, 거기에 재발할 수 있다는 걱정과 불안이 상존하는 환자의 삶이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탈이 없는 음식을 고르다보면 정작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환자의 처지와 심리를 살펴 적절하게 음식을 통제하고 배려하는 역할을 가족들이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렇다보니 음식 선택은 온 가족의 문제가 되어 가족의 갈등요인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맛도 있고 더불어 배설도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음식을 찾아야하는 일은 직장암 환자들과 그 가족이 함께 겪는 고충이 아닌가 한다. 수술 후 2년을 넘긴 현재도 음식을 주의하고 새로운 음식은 시험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살피는 중이다.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기란 쉬운 과정이 아니다. 배변 횟수를 줄이고 배변 시간을 조절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조절 노력이 어쩌면 숙명적인 과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제 나는 암이란 자력구제가 불가능한 절망과 좌절의 근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절망과 좌절은 병을 키울 뿐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심리적인 갈등과 불안은 우선 입맛을 잃게 하고, 소화기관에도 영향을 주어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거나 심한 경우 장 폐색 등으로 이어진다는 사례를 보고 듣고 또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는 스스로 절망과 불안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탈이 없으면서 치료에 도움 되는 음식 찾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증환자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면역력을 기르는 음식 찾기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방사선과 항암치료와 수술로 인해 약해진 체력을 보강하여 원상태로 돌리기 위한 운동 또한 기본적인 노력사항이다.  많은 의사들과 경험자들이 각종 운동법과 그 효과를 소개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한동안 그러한 운동 요령을 프린트하여 동작을 따라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운동역시 환자 개인의 선택사항으로 본다. 환자의 상태와 운동에 대한 선호도 그리고 지속하겠다는 의지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많은 암 환자들 특히 직장암 환자들이 선호하는 운동이 걷기였음을 알면서 나 역시 매일 4km 거리를 걷는 운동을 선택했는데 6개월이 지난 현재 자세가 안정되고 걷는 속도가 빨라지는 등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또 항문의 괄약근을 강화하여 배설의 조절기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운동 시간에는 주변 풍경을 감상도 하면서 쓰고자 하는 주제의 글을 구성하고 다듬을 수 있었기에 좋았다고 본다.

가끔은 오가다가 이웃마을 노인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 농사에 관한 정보와 마을의 갖가지 소식을 듣다보면 그런 날은 1시간 코스의 길이 1시간 30분 걸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재미로 기억한다. 

아직도 화장지 등 챙겨야할 준비물이 있지만 대문 밖을 나서면 걷기에 적당한 길이 많고, 또 그 길을 걷다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조금 가려진 곳에 주저앉아 일을 볼 수 있어 시골에 터 잡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샤워하고 약간 쉬었다가 점심 먹으면 오전은 가고 만다. 자가 치유하는 중증환자의 처지에서는 집중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숙지원은 한 바퀴 천천히 돌면 10분정도 걸린다. 때문에 지금처럼 마을 길 걷기 등 바깥 외출을 못했던 시절에는 운동 장소로도 최적이었다. 그리고 숙지원은 꽃과 나무를 보살필 수 있고 몇 농작물을 자족하는 공간이다. 어떤 이는 식물들과 대화도 한다지만, 나는 아직 그런 소통의 경지까지는 이르지는 못했다. 그저 좋은 마음으로 글라디올러스와 달리아에는 지지대를 세우고 나무 주변의 풀을 뽑아주는 일을 한다. 그러면서 꽃과 나무들을 다시 본다.

꽃들의 변화에 혼자 감탄하고 생김새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명의 신비에 눈이 홀리는 느낌을 받는데, 원예치료의 자세한 과정이나 방법은 모르지만 그렇게 꽃을 보며 역지사지하는 마음과 평화를 느끼는 것이 꽃과 교감하는 원예치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하여 텃밭에 농작물을 심고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도 즐거움이지만 수확하여 저장하는 일은 보람이 된다. 수확과 저장은 단 하루라도 미래를 기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초록 생명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와 보람을 키우고 내일이 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다보면 내가 중증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기에 귀한 시간으로 여긴다.

중증환자로 살면서 글을 쓰는 일도 자기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2015년은 정신적인 충격과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글을 쓸 수 없었다. 해를 넘긴 2016년 초까지도 글을 쓰고 싶다는 의욕은 있었으나 운명에 대한 분노가 앞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고, 30분만 노트북 앞에 앉아도 허리가 아프고 등판이 벌어지는 것처럼 통증이 심해 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몸의 상태도 호전되고 정신적으로도 안정감을 되찾으면서 글쓰기가 가능해졌다.

열정만으로 글을 쓰기 어렵듯 분노의 감정만으로 글은 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최소한의 독자를 의식하는 작업이기에 사실을 건조하게 나열하기보다 객관적 주관적 관점을 따라 사실을 조명하면서 자기감정을 조절하고 정화하는 작업이다. 나를 돌아보는 일일 뿐 아니라 희망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글에 몰입하는 것이 자발적인, 이른바 셀프 치유가 된다고 본다. 비록 유려한 문장은 아니어도 나의 경험과 생각과 느낌을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쓰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감동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7월이다.

인위적인 노력만으로 병을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또 재발 가능성의 불안이나 죽음의 공포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하루에도 7회 이상 화장실로 달려야 하는 현실은 가까운 시일 내에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맵고 짠 음식이나 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서 화장실 출입 횟수는 늘고 자칫하면 변을 지리는 일도 금세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당분간 장거리 여행은 모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의 뼛속이 시려 한 여름에도 집안에서 양말을 벗지 못하고, 귀에서는 끊임없이 잡음이 괴롭히고,  자두 몇 개만 먹으면 이가 시려 칫솔질을 할 수 없고 …. 그런 후유증도 쉬 잡히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제 다소 억울할지라도 이러저러한 아픔을 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그런 일상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래서 자책과 자신에 대한 분노와 원망도 많이 줄었다.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현재의 처지를 '신의 뜻'이라든지 아니면 '인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애매한 말로 현실을 덮지도 않는다.

비록 중증환자라고 하지만 꽃을 보고 새소리를 듣고 생각한 바를 말하고 쓸 수 있으며 두 손으로 풀을 뽑고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낮에는 밭에서 풀매고 꽃밭을 정리하고 나무를 다듬는 일을 할 수 있고, 밤이 되면 오늘 내가 무엇을 했는지 반성하며 기록하고, 내일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계획하는 삶이 좋다.

2017.7.7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중증환자 #자가치료 #희망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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