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북극곰의 이상증세, 잊히지가 않더라"

[다다가 만난 그림책 작가] 동물원을 탈출한 북극곰 이야기 <냠냠빙수> 윤정주 작가

등록 2017.08.09 10:46수정 2017.08.3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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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앵커 : "무더위가 여러 날 계속 되면서 동물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흰곰씨, 한 말씀 해 주세요."
흰곰 : "내 고향 북극에 가고 싶다."
뉴스 앵커 : "흰곰씨가 동물원을 탈출했습니다. 무더운 날씨 탓에 최근 부쩍 이상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실화냐? 아니다. 지난 7월 출간된 윤정주 작가의 그림책 <냠냠빙수>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차라리 실화였으면 좋겠다. 지난달 27일 동물권 단체 케어가 공개한 에버랜드 북극곰 통키의 근황을 담은 영상을 봐서다.

북극곰은 영하 40도의 환경에서 사는 동물이다. 그런 북극곰이 여름이면 영상 40도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다. 케어가 이 영상을 촬영할 당시의 외부 기온은 30도, 통키가 있는 곳의 실내온도는 마이너스가 아니고 영상 19도(!)였단다. 이건 실화다. 얼마나 덥고 힘들었을까. 2분여 화면을 지켜보는 게 괴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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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동물권 단체 케어가 공개한 에버랜드 북극곰 통키의 근황을 담은 영상의 한 장면. 유투브 영상 캡처. ⓒ 케어tv


케어에 따르면, 통키는 지난 2015년 열악한 사육 환경이 알려져 문제가 됐는데도 여전히 폭염에 방치되어 있다. "물을 교환하는 과정 중에 촬영된 것"이라는 에버랜드 측의 해명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통키의 사육 환경이 다시 문제가 되면서 오월드에 살고 있던 북극곰 남극이가 지난 1월 폐사한 사실까지 뒤늦게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앞서 인용한 대화가 나오는 그림책 <냠냠빙수>는 더위를 참을 수 없어 동물원을 탈출한 북극곰이 우여곡절 끝에 고향 북극이 아닌 남극으로 가는 이야기를 그렸다(어쩌다 그랬을까잉?). 지난 7월 26일 윤정주 작가를 만나 <냠냠빙수>를 만든 이야기와 그림책 작가로서의 삶을 직접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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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빙수> 윤정주 작가 ⓒ 최은경


- 첫 글그림 그림책 <꽁꽁꽁>을 낸 지 1년만에 <냠냠빙수>가 나왔다. 여름 시리즈가 사전에 계획된 건가.
"그런 건 아니다. <냠냠빙수>는 <꽁꽁꽁> 작업중에 아이디어가 나왔다. <꽁꽁꽁>은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냉장실 안에 넣으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 거다. 채색 들어가기 전까진 그렇지 않았는데, 채색할 때 보니 이게 좀 지겨워지더라.(웃음) 등장 인물들이 다 냉장고 안에만 있는 게 좀 갑갑하달까, 폐쇄공포증 걸릴 것 같은. 그래서 다음 책은 '냉장고 밖으로 나가볼까?'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꽁꽁꽁>인데 밖으로 나가는, 냉장고를 산으로 데려가 보자는 생각에서 <냠냠빙수>가 시작된 거다."

- 작업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3개월 정도? 글그림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한 작품 하는데 아이디어부터 완성까지 2, 3년 오래 걸리는 작가들도 있지만 나는 한 작품 집중해서 끝내고 다른 일 하는 스타일이라 작업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내년에 나올 책도 이미 시놉시스는 끝났다."

- <냠냠빙수>에 북극곰 이야기가 나온다.

"앞서도 말했지만, 냉장고 안이 답답하다고 생각해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더울 때 생각나는 자연이 북극곰이었다. 10여 년 전, 동물원에 가서 30여 분 넘게 북극곰을 쳐다 본 적이 있다. 평일 낮 한적한 동물원이었는데, 북극곰이 계속 고개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 거다. 내가 지켜보는 30여 분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 고개를 왔다갔다...

그때는 지금처럼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조차 없었을 때다. '동물원에 갇혀 지내서 그런가, 미쳤나 봐' 이러고 왔는데, 어느날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동물원 동물들의 이상증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거기서 북극곰이 동물원에서 내가 본 북극곰처럼 그러고 있는 거다. 한 자리에 앉아서 고개만 왔다갔다... 그래서 <냠냠빙수>에 북극곰 이야기를 넣었다.

최근 북극곰 이슈가 많이 나오더라. 실시간 검색어에 에버랜드 북극곰 통키도 나오고. 대전 오월드에도 남극이란 북극곰도 있다고 해서 놀랐다(남극이는 지난 1월 죽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 편집자 말). 북극곰 통키 일을 보면서 내가 통찰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웃음) <냠냠 빙수>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전기가 뭐지?', '선풍기, 에어컨 있어서 시원하긴 한데, 환경 파괴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기를 꽂고 빼고 이런 걸 일부러 그린 데는 그런 의도가 있다."

- <꽁꽁꽁> 이어 <냠냠빙수>를 냈는데, 숨은 코드가 있다면.
"직접적으로는 냉장고가 집 안에 있다가, 집 밖으로 나온 거다. 그랬더니 그릴 게 너무 많다. 역시 나가면 개고생이다.(웃음) 다음에는 다시 안으로 들어와야겠다. 독자들이 관심있게 볼 것이라면, 호야 이빨, 아빠 안경, 요구르트 정도? <꽁꽁꽁>을 본 독자들은 이런 걸 찾아내면서 재미를 느끼더라. 신기하다."

"그림책 보는 건 재미없었는데, 그리는 건 재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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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주 작가가 쓰고 그림 그림책 <꽁꽁꽁>(2016), <냠냠빙수>(2017)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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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빙수> <꽁꽁꽁> 윤정주 작가 ⓒ 최은경



- 일러스트 일을 하기 전에 만화를 했다고 들었다.

"만화잡지 <윙크>로 만화가 데뷔까지 했는데 접었다. 5살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막상 되니까 너무 불행하더라. 만화 그리는 게 하나도 안 즐겁고 힘들더라. 만화가 재미없어졌다.(흑흑) 만화를 그리는 직업인이 되니까, (만화를 보기만 할 때처럼) 마냥 즐거워서 내 멋대로 상상하는 그게 잘 안 되더라.

그리고 한 장 꼬박 그리는데 장당 2만원이란 것도 무시 못 했다.(웃음) 혼자 한 달 내내 그렸는데 20만 원 정도 받았나? 연재를 하는 동안은 마감에 시달리면서, 혼자, 꼬박 그렇게 해야 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아, 만화가는 독자일 때 가장 행복했던 거였구나'라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만화가 재미 없어진 게 제일 충격적이었다. 20여 년을 그 꿈을 갖고 살았는데..."

- 상실감이 컸을 것 같다.
"아니다. 그리고 싶으면 또 그리면 되니까.(웃음) 돌이켜 보면 내가 좋아했던 만화는 역사만화 같은, 서사적인 만화였다. 기승전결이 있고 스토리도 있고 하는. 그런데 그때 나온 순정만화들은 대부분 꽃미남이 나와서 만나서 헤어지고 하는 거라 그랬는지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선배의 제안으로 순정만화 그만두고 학습만화, 동화로 가게 됐다. 의외로 적성이 맞더라. 내가 동화나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다."

- 동화나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림책 작가가 됐다?
"보는 건 재미없는데, 그릴 때는 재밌더라.(웃음)"

- 뭔가 이상하긴 했다. 만화를 하던 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나. 그런데 일러스트 작가 생활 20년 후에야 글그림책 <꽁꽁꽁>이 나온 게 수상쩍더라.
"아마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순정만화도 안 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도 보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만화는 아니었다. 제일 좋아하는 만화가 <유리가면>인데, 아직도 안 끝났다(2016년이 연재 40주년이었다-편집자 말). 주인공이 배우가 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이 배역, 저 배역을 맡으면서 겪은 인생 역경을 다룬 만화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대부분이 이처럼 (작품 인물에) 감정이입을 해 분석되어 만들어진 거지, 내 안의 상상력을 푸는 그런 게 아니었다."

- 아무리 애써도 작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배어나오기 마련 아닌가.
"과거에 그걸 굉장히 기피했다면, 지금은 좀 나오는 것 같다. 어릴 때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거를 이제 해도 되겠다라고 생각하는데 20년 정도 걸릴 것 같다. 나는 그림책 작업을 하는 게 내가 원고에 감정이입을 해서 마치 배우가 되어 그림을 그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출판 관계자들이 나에 대해 '원고에 대한 분석력이 좋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거다.

그런데 40살 딱 넘어가니까 감정이입이 잘 안 되더라. 웬만한 건 다 그려봐서다. 대부분 애들 책이다 보니까 애들에게 줄 감정, 희로애락 이런 것들을 다 해본 거다. 갑자기 살인 사건을 다룰 수도 없고.(웃음) 사실 아이들 그림책이라는 게 이런 한계 안에서 얼마나 창의롭고 다채롭게 그리느냐의 문제인데, 20년 정도 하다 보니 즐겁지 않더라. 그래서 그럼 내가 글도 쓰고 그려 보자, 이렇게 된 거다."

- 글, 그림을 둘 다 해 보니 어떤가.
"책임감이 다르다. 너무 부담스럽다. 그래서 안 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주목 받는 것도 싫은데... 주목을 안 받으니까 책이 안 팔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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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쓰고 그린 두번째 그림책 <냠냠빙수>를 보고 있는 윤정주 작가 ⓒ 최은경


"냠냠빙수 막 만든 거 아니다, 레시피도 있다"

- 지난해 나온 첫 그림책 <꽁꽁꽁>을 보고 어른인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냉장고인데 아이스크림이 안 녹아? 현실성이 좀 떨어지네...'라고. 반면 아이들은 전혀 그게 문제가 되지 않더라.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실험까지 해봤다. 아이스크림이 완전히 녹아내리는지 안 그런지. 냉장실 온도를 어디에 맞춰 놓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냉장고 문을 살짝 열어 놓고 했는데, 완전히 녹지는 않더라. 맛은 있을까 싶어 만들어 봤더니, 불량식품처럼 맛있더라. 사실 딸기 빼고는 내가 다 싫어하는 거다.(웃음)"

- <꽁꽁꽁>에서 냉장고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음식들, 아이디어는 어디서 착안했나.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닫고 잔다. 어느 날 한밤중에 거실에 나가 보니, 냉장고 소음이 엄청 크게 들리더라. 머리가 울릴 정도로. 냉장고에 대고 "조용히 좀 해" 소리치며 '냉장고 안이 시끄럽군' 하고 생각했다. 이런 데서 영감을 받아 쓴 게 <꽁꽁꽁>이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말이 되는지 실험도 해 본다. <냠냠빙수>도 만들어 봤다. 검색해 보면 레시피가 있다. 막 만든 게 아니다. 근데 사실 난 모든 여름 음료에 얼음을 빼고 먹는다.(웃음)."

- 아이가 없는데도 아이들 심리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게 놀랍다.
"내가 아이니까.(웃음) 그냥 수식어가 아니고 사실이다. 어른이 못 됐다.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나만큼 어릴 때 기억이 많은 사람이 있을까. 구체적인 장소, 이미지 같은 것들이 많이 떠오른다. 어떤 이유로 성숙이 덜 됐다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통해 훈련받으면서 나아지고 하는 건데, 나는 그런 경험이 없었으니까 그러질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애들하고 놀 때면 시선을 잘 맞춰 노는 편이다.(웃음)"

- 만화가로서의 경험이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데 어떤 영향을 주나.
"화가보다 만화 전공한 분들이 일러스트 쪽에서 수월하게 일하는 것 같다. 그림책은 회화보다는 영화나 연극에 더 가깝다고 본다. 그림 그릴 때는 내가 배우가 되는 기분이다. 내용 슬프다... 슬프려면 표정도 좀 젖어 있어야겠다, 즐거운 일이면 애는 좀 날아다녀야지, 애는 좀 모자라게 그려보자 하는 식으로 얼굴 캐릭터 같은 게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림책은 한 장면 한 장면 멋있게 그린다고 해서 그림책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림들이 연결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라, 만화가들이 화가들보다 좀 더 낫지 않나 싶다."

-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뚝딱뚝딱 인권 짓기>,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 이명박근혜 시대에 만들어진 인권 만화다.(웃음) '엄마가 내 일기를 보는 건 인권 침해'라는 등의 만화인데, 온갖 기법을 실험해 본 책이다. 스스로 잘했다고 놀란 책이다.(웃음) 사실 책이 나오면 보지 않는다. 몇 년 있다가 본다. 창피하고 쑥스러워서. 4, 5년 지나서 보면 완전 잘 그렸다 싶은 생각이 드는데, <뚝딱뚝딱 인권 짓기>가 그랬다."

- 어느 정도까지 실험적인 걸 해봤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실험적인 거다. 내 인생의 화두는 안정이다. 불안하고 공포감이 있어야 상상력이 생긴다고 하던데, 그런 거 같다. 불안하니까 쉬지 않고 계속 작업을 했다.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에는 거기에 빠져 있을 수 있으니까. 또 돈도 벌 수 있고.(웃음) 그래서 되도록 슬픈 그림책보다는 즐거운 걸 하고 싶다. <뚝딱뚝딱 인권 짓기>에서 광산 노동자 이야기 그릴 때는, 목판화 느낌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고, <멋지다 썩은 떡>(문학동네)는 이쑤시개로 그리기도 했다. 진흙 퍼다가 그린 적도 있고."

- 고민하는 것과 달리 그림은 평화롭고 평온하고 부드러워 의외다.
"내가 그런 걸 갈망하니까 그런 그림이 나오는 거다. 너무 갈망한 나머지 그림은 따듯하고, 행복하고 사랑만 있는 것 같은. 나한테 없는, 나한테 갈망하는 형태로 그리게 되는 것 같다."

냠냠 빙수

윤정주 지음,
책읽는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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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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