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바라고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함께 사쿠라지마를 여행하다

등록 2017.08.13 13:21수정 2017.08.13 13:21
0
원고료로 응원
형제는 아직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 어른들이 '철없는' 자신들의 엄마와 아빠일 경우엔 더욱더 그렇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별거하게 된 부모님을 쫓아 떨어져 살게 된 형제들은, 그들이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2011년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아이들은 각자의 고민들로 심각하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들의 꿈'에 대한 고민들로 가득하지만, 어른들은 그네들의 삶에 대한 계산에 빠져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 이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영화의 배경이 된 '사쿠라지마'로 향했다. 활화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어쩌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를' 기적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영화 보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본 여행 '그래, 가는거야!'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형제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소년은, 다시 가족이 함께 살게 되길 원합니다. ⓒ 미로비젼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수 많은 일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어서 여름 휴가는 건너뛸 생각이었는데, 에어컨도 없는 집안이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피서'를 결심했는데, 하필 떠오른 것이 일본 열도의 작은 섬 큐슈의 맨 남쪽 끝이라니! 이 모두, 얼마 전 다시 보았던 이 영화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인 '사쿠라지마'는 큐슈 남단의 도시인 가고시마에서 배로 15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이름에서는 '벚꽃섬 (櫻島)'이기는 있지만, 한쪽의 끝이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니 '섬'은 아니다(기록을 찾아보니, 1911년의 대분화 때에야 육지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섬'이었던 시간이 더 길었을 테니, 이제서야 그 이름이 이해가 된다).

일단, 그곳에 가야 한다.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항공편인데, 여름 휴가기간이라 가고시마까지의 비행편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 가격이면, 후쿠오카에서 JR 큐슈레일패스를 사용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레일패스와 배값을 더해도, 훌쩍 뛰어버린 비행기 값보다는 훨씬 이익이었다). 게다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 탄생하게 된 배경도, 규슈 신칸센의 개통을 기념하면서 진행된 프로젝트였으니 의미가 더해진다. 좋아, 결정!

가고시마까지의 여행 경로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세 시간이면 후쿠오카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가고시마까지는 신칸센으로 한시간 반이 걸리네요. 이번 여행은 이렇게 움직이기로 결정합니다. ⓒ 이창희


후쿠오카까지는 부산항에서 쾌속선으로, 후쿠오카에서 가고시마로는 신칸센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JR 규슈 신칸센으로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에서 가고시마까지 한 시간 반쯤 걸린다. 규슈 최남단의 주요도시 중 하나인데, 하카타역에서 280km 정도이니 서울에서 대구 정도의 거리이다. 2011년에 새로 개통된 규슈 신칸센은 무척이나 편리했고, 출발역에서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도시락을 천천히 먹고 나니 종착역인 가고시마 중앙역에 도착했다.


가고시마 중앙역의 첫 느낌은 후끈한 열기와 구름인지 연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뿌옇게 흐린 하늘이었다. 일기예보에는 30%의 '비가 올지도 모를' 확률을 예상하고 있었으나, 우산을 챙겨야 할 만큼은 아니었다. 예약한 숙소는 아직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서 짐가방만 부랴부랴 맡기고는,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사쿠라지마'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숙소에서 사쿠라지마까지 이동하는 페리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구글맵을 손에 들고 있으니, 처음 만나는 거리의 낯섦도 전혀 두려움이 아니다(다만, 구글맵에 의존하다 보니 주변에 길을 묻지 않는다. 아쉽기도 하다).

사쿠라지마까지 왕복하는 페리 가고시마의 페리터미널에서 사쿠라지마까지는 15분정도 걸립니다. 24시간 쉼없이 왕복하는 페리가 있으니, 이동에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다음에는 차를 싣고 가는 것도 고민중입니다. ⓒ 이창희


가고시마의 사쿠라지마행 페리 터미널에서는 하루 종일, 거의 15분 간격으로 배가 운행되고 있다. 배는 총 4층으로 이루어진 큰 페리인데, 1층과 2층은 차량이 실리는 공간이고, 3층과 4층은 승객이 탑승하게 된다. 3층의 객실 내에는 매점과 함께 우동을 파는 식당도 있는데, 많은 승객들이 쫄깃한 면발을 즐기고 있는 게 신기했다. 배가 딱 20분밖에 안 걸리는 왜 우동을 먹지? 답은 내려서 섬을 한 바퀴 돌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섬에서는, 분명히 '관광지'라면 있어야 하는 전형적인 식당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배고파!).

사쿠라지마 폭발 횟수 비교 사쿠라지마 비지터 센터의 박물관에는 사쿠라지마 화산의 역사와 다양한 섬의 생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어요. 사진에서도 보시는 것처럼 작년에는 폭발이 47회였는데 올해는 (7월 말 기준으로) 14회 뿐이네요. 화산도, 죽어가는 것일까요? ⓒ 이창희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사람들은 '사쿠라지마'라는 활화산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에게는 '날씨'일 매일 아침의 인사가, 그들에게는 화산이 내뿜는 '화산재'였다. 사쿠라지마는 약 5000년 전에 태어난 화산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보니, 작년의 폭발만 해도 총 47회였다고 하는 걸 보니 여전히 '살아있는' 화산임에는 분명하다(그래도 금년의 폭발은 14회에 그쳤다는 기록을 보니 '벌써 나이를 먹어가는 건가' 싶어서 안타깝기는 하다. 헛, 화산인데... 정신 차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영화는 규슈 신칸센의 개통을 기념한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라면 '신칸센'의 장점이나 기술적인 우수성 혹은 다양한 편의성을 얘기했을 것 같은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만나고 나서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아이들의 기적 만들기' 프로젝트가 되어 버렸다. 새로 개통된 신칸센이 고속으로 교차하는 곳에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니, 이보다 더 매력적인 상품 광고가 어디 있을까? 굉장하고, 부럽다!

영화 속 인물의 '사랑스러운' 여행 따라갔던 짧은 여행

사쿠라지마 분화구 사쿠라지마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순환버스를 타고, 화산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유노히라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앞쪽으로 보이는 북쪽 분화구는 거의 활동을 멈췄는데, 500년 후에 태어난 뒷쪽의 남쪽 분화구는 여전히 활발한 분화 중이예요. ⓒ 이창희


영화에서 마을을 온통 뿌옇게 뒤덮은 공기는 무척이나 비현실적인데, 무더운 여름에 이곳에 와 보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여름의 더위에 비가 잠깐씩 다녀갈 정도의 습도까지 더해진 공기는, 화산이 내뿜는 희뿌연 화산재까지 무겁게 품고 있어, 사쿠라지마를 뒤덮은 하늘은 온통 구름이 낮게 깔린 잿빛이었다. 가기 전에 찾아본 사진에선 무척이나 화창한 하늘이었는데 그런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온도가 낮아진 후에야 가능할 것만 같다. 가고시마에 사흘 머물며 세 번이나 사쿠라지마를 찾았지만, 500살이나 '젊은' 남쪽 분화구의 혈기가 만들어낸 잿빛 하늘은 끝내 환하게 열리지 않았다. 

사쿠라지마를 앞에 두고, 영화의 생기 가득한 아이들을, 지금의 삶이 힘겨웠던 어른들을 생각한다. '기적'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만큼 '절실'하게 바라지도 않고 미리 '포기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가 포기해 왔던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더 부끄러워졌다. 그만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아이들은 '굉장히' 사랑스럽고, 영화의 메시지는 묵직하다. 이곳에서 그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 느꼈다.

애들은 맛을 몰라요. 할아버지는 가고시마 특산품인 '가루칸 떡'을 만드십니다. '어린애는 알 수 없는 맛'이라는 이 떡의 맛을, 동생이 알게 되면, 어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게는, 물론 '충분히' 달았습니다. ⓒ 미로비젼


사흘 동안의 짧은 여유. 후쿠오카로 다시 돌아갈 신칸센을 기다리는 동안, 영화에도 등장한 가고시마의 특산품인 가루칸 떡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그들의 '사랑스러운' 여행을 따라갔던 짧은 여행을 마무리한다. 어딘가의 터널 끝에 아이들의 소원이 남아있을 것만 같다.

'안녕, 사쿠라지마! 하늘이 높아지면, 다시 올게!'

여행팁) 가고시마에 도착하시면 중앙역의 여행 안내소에서 '큐트'라는 교통 패스를 구입하세요. 하루 혹은 이틀의 기간을 정해서 구입하실 수 있구요, 그 기간 동안 가고시마와 사쿠라지마의 공공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으니 편리합니다. 저는 이걸 몰라서, 교통비를 많이 썼거든요. 누군가 알려줬으면 했던 정보라서 추가합니다!
#규슈신칸센 #진짜로일어날지도몰라기적 #고레에다히로카즈 #가고시마 #사쿠라지마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