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 없는 아이들, 짠하면서 고마웠다

일로 바쁜 맞벌이 부부가 아이들을 위해 포기하지 말아야할 것들

등록 2017.08.10 15:13수정 2017.08.1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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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휴가 계획이 없다. 엄마인 내가 직장을 옮겼고, 새 직장이 창사 이래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 휴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 Pixabay


"휴가 안 가세요?"
"휴가요? 아... 계획이 없어서요."


그렇다. 올해 여름은 휴가 계획이 없다. 엄마인 내가 직장을 옮겼고, 새 직장이 창사 이래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 휴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7월 말에서 8월 초는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들도 장장 한 달 간의 방학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까 방학 때에도 평소와 똑같이 학교에 간다. 그나마 돌봄에서 아이들을 봐주는 올해는 이렇게라도 아이들을 학교에 맡길 수 있지만 돌봄이 없어지는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전 학년 돌봄을 시행한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그게 언제부터인지, 당장 내년에 초등 3학년이 되는 쌍둥이 남매가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돌봄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 한편에는 안쓰러움도 있다. 학교 운동장 공사로 방과 후 수업이 하나도 없는 이번 여름에는 아이들은 오로지 돌봄 교실에서 30여 명 남짓한 친구, 동생들과 시간을 보낸다. 방학 한 달만을 위해 학원에 선택하기도 그래서 그냥 돌봄교실을 이용하게 했더니 아이들은 다소 심심해하는 눈치다. 심심한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론으로 위안 삼아보지만 미안함이 앞선다. 방학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개학 후 휴가 다녀온 친구 경험담을 듣고 볼멘소리 하진 않을까

아직 휴가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쌍둥이 남매는 엄마 아빠에게 바다에 놀러 가자고 하거나 여행을 가자는 요구를 쏟아내지 않는다. 혹 모를 일이다. 개학 후 학교에 가 보니 친구들이 하나같이 해외에 다녀온 경험담을 쏟아낸다거나 바다에 가본 추억들을 얘기할 때 왜 나만 아무 데도 다녀오지 않은 거냐며 볼멘소리를 할지도. 그저 방학이라는데 학기 중과 똑같이 날마다 학교를 가고, 복습용 문제집을 풀어야 하는 것이 불만이라 평소보다 조금 게을러졌고, 엄마가 그것에 대해 조금 덜 잔소리하는 것이 위로라면 위로일 것이다. 


평소에 학교의 행사나 집안일로 야금야금 휴가를 써놓으면 아이들이 길게 쉴 수 있는 방학에 맞춰 엄마 아빠가 함께 쉴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이런 부모의 사정에 따라 아이들은 빨리 포기를 한다. 휴가뿐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아이들은 눈치 빠르게 계속 조르면 얻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판단한다. 계속 삐져 있어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빨리 깨닫는 거다.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휴가, 여행뿐만 아니라 외출했을 때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를 때도, 집에서 함께 놀아달라고 조를 때도 부모의 거절에 익숙하다.

너무 풍족한 요즘 환경에서 매번 외출할 때마다 장난감을 사주는 것은 우리 집의 금지사항이며, 집에서는 해야 할 일을 다 한 이후 엄마 아빠와 놀 수 있으며, 일정 시간 이후에는 엄마 아빠도 쉬어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다. 아이들이 놀아달라는 내내 놀아줄 수도 없을 정도로 주말에는 지쳐 널브러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가 애착 결핍 상태를 알아야 보살핌을 받고 충족되는 느낌도 알게 된다고 말하는 육아서가 있다. 요즘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을 보면 모든 것이 너무 풍족하다. 물질적인 풍요를 넘어 자녀가 한 명, 두 명에 불과하니 그 소중함이 얼마나 클까 이해는 된다. 그래서 어떤 육아서에서는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결핍이 부족해서 일부러라도 결핍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고도 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재회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이별의 아픔을 경험해야 하고,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도움을 필요로 해야 하는 것처럼 부족함을 알아야 충만함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의 일이 삶의 중심에 놓여 아이도 부모도 서로 간의 애착을 이렇게 많이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회에서의 입신양명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아이들에게 신경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사랑을 나눠야 했던 쌍둥이 남매는 회사에게까지 엄마의 관심을 쪼개주는 것이 익숙해져서 웬만한 건 조르지도 않는다. 한참 엄마 아빠의 손길이 필요하고 부모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할 나이에 일찌감치 포기를 배우고 적응하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짧더라도 아이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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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가족만을 위한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추억을 남기는 일은 무척 소중한 일이다. ⓒ Pixabay


아이가 포기하는 것이 있다면 부모 역시 포기하는 것이 있다. 등 학교 길을 함께하며 아이의 수다를 챙길 수 없는 것, 아이의 보드라운 얼굴을 손을 더 조물락거리지 못하고 출근을 서둘러야 하는 매일 아침, 퇴근할 때 느긋하게 일을 챙기지 못하고 허겁지겁 마무리하는 상황, 동료들과의 여유로운 회식 등 많은 기회들을 포기하며 육아와 일이라는 과제를 양손에 들고 버텨내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 연일 화두다. 퇴근 후 카톡 등을 통한 업무지시 금지 및 근로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이자는 요구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며 법 개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무실의 불은 밤늦게까지 밝다. 특수한 상황이 되면 야근은 물론 주말 근무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다. 새로운 사람을 뽑으려고 해도 그 사람이 일에 숙련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닥친 일을 해결하려면 초과 근무는 어쩔 수 없어진다. 부모들의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부모 없이 자라야 하는 아이들'의 상황이 안쓰러울 뿐이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 아이들과 다니는 여행은 돈 들여서 고생하는 거다. 아이가 어려서 하나도 기억을 못 하니 비싼 돈을 들여 여행을 다닐 필요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중에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이렇게도 말했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와 함께 다닌 여행은 비싸고 힘든 여정인 것은 맞다. 하지만 아이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 행복해하는 표정을 부모는 가슴에 새긴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속을 썩여도 그때 쌓아둔 행복한 표정을 에너지 삼아 아이도 부모도 성장하는 거다."

일상에서 벗어나 휴가라는 시간을 통해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뿐더러 온전히 가족만을 위한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추억을 남기는 일은 무척 소중한 일이다. 평일에 휴가를 내서 여행을 다녀오는 일이 힘들다면 주말을 이용해서라도 아이들과 서울을 벗어나 봐야겠다. 짧더라도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행복함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나연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70점엄마 #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휴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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