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 얘기만 나오면 달라지는 박근혜

평소엔 졸거나 고개 숙인 모습, 유진룡·진재수 나올 땐 '시선 고정'

등록 2017.08.18 21:34수정 2017.08.1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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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향하는 무표정의 박근혜 박근혜 전 대통령이 7월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28일 발가락 치료를 위해 법원 부근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 연합뉴스


피고인 박근혜는 대체로 의욕이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간혹 눈에 힘을 주고 증인을 바라볼 때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석 달 가까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의 심리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늘 힘이 없다. 자신의 변호인단 사이에 앉아 수척한 얼굴로 멍하니 있다. 보통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간혹 목을 뒤로 젖히는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검찰의 증인신문이나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의 변호인단이 증인신문에 나설 때면 지루한 표정을 짓다가 졸 때도 많다.

18일엔 문화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지원배제명단) 혐의 관련 서류 증거 조사가 진행됐다. 증인 출석 없이 각종 신문조서 등을 대상으로 한 작업이라 다소 지루할 수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은 대놓고 수면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가 자신을 향해 의견을 물을 때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하거나 변호인이 대신 얘기하도록 했다. 지난 17일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공소장 중 블랙리스트 부분을 변경신청한 데 대해 재판부가 "박근혜 피고인도 그런 (공소) 취지를 전부 부인한다고 하면 되느냐"고 묻자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을 뿐이었다.

지난 5월 25일 재판장이 "검사가 제시한 서류증거에 대해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대답하면서 냈던 작은 목소리도 이제는 듣기가 힘들어졌다.

변호인단의 주장처럼 박 전 대통령의 체력이 떨어진 탓일까.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평소와 달리 눈에 힘을 줄 때가 있다. 바로 자신이 내뱉었던 "참 나쁜 사람"이라는 말과 관계된 전직 공무원들을 마주할 때다.

'나쁜 사람' 진재수 전 문체부 과장 빤히 바라봐

지난 17일 박 전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고 지목했던 진재수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과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진 전 과장은 2013년 4월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경북 상주에서 열린 승마 대회에서 우승이 아닌 준우승을 한 뒤 그해 7월 청와대 지시로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과 함께 대한승마협회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노 전 국장과 진 전 과장은 '승마협회 문제는 파벌 싸움이며 최씨와 반대쪽 모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을 불러 노 전 국장과 진 전 과장을 "참 나쁜 사람"이라고 일컬었다. 진 전 과장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노 전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좌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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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지목됐던 노태강 전 국장 ⓒ 유성호


증인석에 선 진 전 과장은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보고서에 부정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고초를 겪게 됐다"며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린 날 박원오로부터 협박처럼 느껴진 전화를 받았다. 수석실에 보고한 자료가 민간인에게 바로 유출돼 굉장히 놀랐다"고 증언했다. 정씨의 승마후견인이자 최씨 대신 삼성과 승마지원을 논의할 만큼 최씨와 가까웠던 박씨가 정부 보고서 내용을 당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이었다.

이어 진 전 과장은 "박 전 대통령이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느냐'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년까지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에 바로 명예퇴직을 했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좌천당한 노태강 전 국장의 이름을 가리키며 '이 사람 아직도 있느냐'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노 전 국장은 2016년 5월 공직에서 물러났고 진 전 과장도 두 달 뒤인 7월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평소에 입던 남색 정장이 아닌 비교적 밝은 회색 정장을 입었다. 유영하 변호사가 "대통령이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느냐며 해임을 강요했다는 말을 정확히 누구로부터 들었냐"며 반대신문을 펼치자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들어 진 전 과장을 빤히 바라봤다. 기운 없는 태도로 일관하던 박 전 대통령의 평소 모습과는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의자 팔걸이에 기대 턱을 괴기도 했고, 가끔 고개를 돌려 재판부를 쳐다보기도 했다.

유진룡 전 장관-변호사 설전 벌이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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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 권우성


박 전 대통령이 공판 중 잠깐 활기를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 13일 유진룡 전 장관이 출석해 "(박 전 대통령이) 정확히 '나쁜 사람이더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기에 더 기억에 남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증언하자 박 전 대통령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뚫어지게 유 전 장관을 쳐다봤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유영하 변호사가 유 전 장관과 언쟁을 벌이자 웃기도 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지시를 몇 번 받았냐"고 물었고, 유 전 장관은 "방금 읽은 부분에 다 나온다. 종이를 달라"고 답했다.

그러자 유 변호사는 "뭘 주긴 주냐, 그냥 들으면 되지 않냐"며 목소리를 높였고 유 전 장관은 "지금 반말하시냐"고 맞받아쳤다. 김세윤 부장판사가 개입해 "변호인은 법조인이다, 감정적인 면이 개입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의를 주자 방청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박 전 대통령은 방청객을 따라 웃다가 이내 감추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또 다른 '나쁜 사람'인 노태강 전 국장은 원래 오는 22일 오전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으나 자료가 필요하다는 변호인단의 요청으로 일정이 미뤄졌다. 피고인 박근혜는 노 전 국장 앞에선 어떤 모습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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