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박근혜가 먼저 비공개 만남 요청, '배신의 정치' 운운할 때 불길"

회고록 낸 이회창 전 총재가 본 박근혜,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등록 2017.08.22 15:13수정 2017.08.2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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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2월 16일 당시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여의도 새누리당 기자실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박근혜 후보의 아이패드 커닝 의혹, 이단종교 '신천지' 연관설 등 네거티브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2002년 대선 당시에도 김대업 병풍공작사건, 기양건설 10억 수사사건, 설훈 의원의 미화 20만달러 수수 폭로사건으로 자신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 권우성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자신의 회고록 <이회창 회고록>을 출간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 회고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가감 없이 밝혔다.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나와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곡절이 많았다"고 술회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입문과 자신이 총재로 있을 때 박 전 대통령의 탈당과 복당 과정을 염두에 둔 얘기였다.

이 전 총재는 "그(박 전 대통령)를 정치에 입문시킨 사람은 나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2일 이 전 총재에게 사람을 보내 비공개 만남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 이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사실 나는 박근혜씨와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매우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부모님이 모두 비명에 가신 참담한 일을 겪었는데도 어두운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의 입당 제안에) 한나라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의 입당을 흔쾌히 응낙했다"라며 "뒷날의 일이지만 2002년 대선 패배 후 그가 한나라당을 맡아 천막당사로 옮겨 당의 재기를 이뤄내는 것을 보면서 그의 정치 입문을 받아들인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전 총재는 "솔직히 당시 나는 그가 뒷날 대통령까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사실 나는 겉으로 알려진 것 외에 그를 자세히 몰랐다"면서 "내가 한나라당 총재로 있던 시절, 그는 다른 의원들과 어울리거나 섞이지 않고 홀로 움직이면서도 당시 언론이나 일반 여론의 관심을 끄는 당내 민주화나 당내 개혁 같은 주제를 선점해 강경론을 펴면서 자신의 당내 입지와 존재감을 키우는 독특한 행동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그가 대통령 된 후 국정운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곧 실망을 하게 됐고 기대도 접었다"고 밝혔다.


특히 "집권당의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에 대해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서 공개적으로 매도하고 결국 그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면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터지고 탄핵 사태로까지 진전되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그의 실질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후 취했던 태도에 대해서도 "국민과 국가를 위해 그가 취할 수 있는 정의로운 행동은 더 이상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대통령직에서 하야하되, 그 하야 시기를 분명하게 못박고 국민 앞에 나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변방 돌다가 바람 탔던 노무현, 대선자금 관행 깨는 데 기여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민주당 대선경선 과정을 술회하면서 기억을 떠올렸다. 이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뒤늦게 정치권에 들어온 나는 그(노 전 대통령)를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정치에 들어온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그 연륜에 알맞은 기반을 잡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이) 변방으로 돌며 전두환 전 대통령 청문회에서 보듯이 뛰어난 언변과 돌출적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정치를 해온 것으로 보았다"며 "이런 사람은 대체로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때 민감하게 이에 편승해 부상하는 데 능하다"고 평가했다.

또 "김대중이라는 큰 기둥이 뒤로 물러난 민주당에서 국민경선이란 새로운 무대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변방으로 돌았던 그가 오히려 이 변화의 바람에 적합한 인물로 부상하는 기회를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라며 "이것은 노무현 후보를 잘 모르는 제3자의 관찰이므로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나는 '노무현 부상 현상'은 조만간 깨질 바람이라고 보았다"고 적었다.

2002년 대선 패배 원인을 되돌아 보는 대목에서는 "노 후보는 나보다 훨씬 먼저 정치권에 들어와 YS와 DJ 사이를 오간, 말하자면 구 정치인이었지만 돌출적인 행동과 대선 후보가 되면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등 행동으로 눈길을 끌었다"라며 "특히 금수저 출신의 정몽준 후보와의 사이에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변화와 개혁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른바 대선자금 수사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결단'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이와 관련, 이 전 총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기업이 정치인들에게 대선자금을 제공하던 과거의 관행은 이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라며 "돌이켜보면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기여한 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승자의 대선자금은 건드리지 않는 관행을 깨고 검찰이 자신의 대선자금을 조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회창 #박근혜 #노무현 #탄핵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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