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봉분에서 41기 무덤, '아파트형 고분'

나주 복암리 고분군, 소상히 살필 수 있는 곳을 소개합니다

등록 2017.08.28 15:09수정 2017.08.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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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고분군. 영산강변을 중심으로 펼쳐진 드넓은 나주평야에 우뚝 솟은 옛 무덤이다. ⓒ 이돈삼


살랑이는 바람결에서 가을이 묻어나는 요즘이다. 초가을 햇살에 벼가 누렇게 여물고 있는 전라도 나주들로 간다. 영산강변을 중심으로 펼쳐진 드넓은 평야에 우뚝 솟은 옛 무덤이 보인다. 흡사 부러 만든 산 같다.

죽은 자들의 집단 무덤이다. 1996년 영산강 유역의 주변 정비 작업을 하던 중 발견됐다. 2년 동안 발굴 작업을 한 결과 수십 기의 무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의 봉분에서 갖가지 형태의 무덤 41기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옹관묘인 마한의 독무덤 22기와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11기를 비롯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실 석곽묘), 백제식 돌방무덤(석실묘), 앞이 트인 독덧널무덤(횡구식 석곽묘), 돌덧널 독무덤(석곽 옹관묘), 널무덤(목관묘) 등이었다. 독특한 무덤의 전시장에 다름 아니었다.

복암리 고분전시관에 재현된 복암리 3호분. 옹관묘부터 굴식 돌방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등 다양한 무덤 형식을 엿볼 수 있다. ⓒ 이돈삼


복암리 고분전시관에서 만난 옹관. 현대기술로도 어렵다는 대형 옹관을 당시 영산강 유역의 고대인들은 이미 만들어 쓰고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 이돈삼


무덤들은 3단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맨 아래에는 옹관묘만 있었다. 옹관묘 전용구역이다. 그 위에 대형 석실이 만들어지면서 봉분이 조성됐다. 마지막으로 경사면을 파고 새로운 무덤들이 들어선 형태다.

원래 옹관 무덤을 사용했다가 이후 돌방무덤을 쓰면서 봉분을 네모꼴로 확장했고, 새롭게 백제양식 돌방무덤을 추가하면서 다수의 무덤방이 완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매장 시기도 3세기부터 7세기까지 400년에 걸쳐 층층이 쌓은 것이었다.

그 가운데 3호 옹관에서 철기시대 유물인 각종 철제품과 구슬이 발견됐다. 3세기 경 백제 등장 이전, 마한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됐다. 마한은 진한, 변한과 함께 한반도의 서남부지역을 차지했던 우리 고대사의 토착세력이었다. 석실의 출토유물로 미뤄 유력한 신분의 사람들 무덤으로 짐작됐다.

학계에서는 지하에 묻혀있던 고대의 블랙박스가 열렸다고 화들짝 반겼다. 하나의 봉분에서 수십 기의 무덤이 나왔다고 '아파트형 고분'으로 이름 붙였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이다. 국가사적 제404호로 지정돼 있다.


복암리 고분전시관에 재현된 복암리 고분. 옹관묘인 마한의 독무덤과 굴식 돌방무덤이 펼쳐진 모습이다. ⓒ 이돈삼


복암리 고분전시관. 복암리 3호분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은 묘제 전시관이다. ⓒ 이돈삼


복암리 고분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사다리꼴 모양이다. 한 변의 길이가 40m, 높이 6m로 고분 중에서도 대형급에 속한다. 이 고분을 통해 영산강 유역에서 나타나는 다장(多葬)이 확인됐다. 옹관묘와 석실분의 변천 과정과 매장법, 부장 유물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당시 일본과의 관계, 영산강 유역의 토착세력과 백제의 관계 등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왜 아파트형 무덤인지, 매장된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지 그 수수께끼를 아직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세력에 대한 사료가 부족한 탓이다.

하나의 봉분에서 갖가지 형태의 무덤 41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에게 미스터리를 던져준 복암리 고분 전경.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 있다. ⓒ 이돈삼


복암리 3호분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은 복암리 고분전시관. 나주시가 국비와 지방비 97억 원을 들여 부지 4만2200㎡에 건축면적 4030㎡ 규모로 지었다. ⓒ 이돈삼


우리에게 미스터리를 던져준 복암리 고분을 소상히 살필 수 있는 곳이 있다. 고분군에서 400여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복암리 고분전시관이다. 복암리 3호분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은 묘제 전시관이다. 나주시가 국비와 지방비 97억 원을 들여 부지 4만2200㎡에 건축면적 4030㎡ 규모로 지어 지난해 봄 문을 열었다.

데크를 따라 고분 모형 위로 올라가면서 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다양한 무덤들을 만날 수 있다. 맨 아래 3세기 무렵 마한의 독무덤에서부터 3층의 7세기 백제시대 돌방무덤까지 다 본다. 다양한 묘실 크기와 모양을 하나하나 비교해 보며 당시 매장 풍습을 엿볼 수 있다.

영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마한 사람의 인골. 복암리 고분전시관에서 만나는 흥미진진한 고대사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학교에서 배울 때 어렵게만 느껴졌던 옹관묘, 석관묘, 횡혈식 석실묘 등 묘제 양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대기술로도 어렵다는 대형 옹관을 당시 영산강 유역의 고대인들은 이미 만들어 쓰고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3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큰칼 등 문화재로써 가치가 큰 유물은 모형으로 전시해 놓았다. 영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마한 사람의 인골도 보인다. 흥미진진한 고대사를 접할 수 있는 복암리 고분전시관이다.

기진화 복암리 고분전시관 학예사는 "복암리 고분은 영산강 유역의 토착세력이 백제, 가야, 신라, 일본 등 한반도 주변세력과 적극적으로 교섭하면서 토착세력의 위상과 문화를 지켰던 역동적인 우리 고대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고대인들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토기 유물들. 복암리 고분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나주 복암리 고분전시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백호로 287 / ☎061-337-0090
#복암리고분 #마한 #복암리고분전시관 #옹관묘 #독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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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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