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트리피케이션' 비판 받는 대구 '김광석길' 개선사업

김광석길 만든 작가들 대구 중구청 규탄 "열정으로 만들어, 거버넌스 구성해야"

등록 2017.09.05 12:00수정 2017.09.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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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길에 있는 고 김광석 가수의 얼굴이 그려져있는 벽화 모습. ⓒ 조정훈


서정적인 노래로 인기를 모았던 가수 고 김광석을 사랑했던 예술가들이 거리벽화를 만들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에 있는 '김광석길'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구 중구청이 관광인프라 개선사업으로 리뉴얼에 나서자 거리벽화를 만들었던 참여 작가들이 독단적인 '관트리피케이션'이라며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은 지난 2010년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40여 명의 예술인들이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만들어졌다. 처음에 90m 구간으로 만들어졌던 김광석길은 이후 2011년 150m가 추가되고 2013년 마지막 구간인 110m가 추가돼 모두 350m의 길이 조성됐다.

당시 작가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중구청은 지역공동체 일자리사업 예산을 확보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자율성과 자발성 그리고 행정의 후원이 뒷받침되는 바람직한 프로젝트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 '근대골목 관광활성화 사업'이 국가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2014년 일부 훼손되거나 부적절한 벽화에 대한 첫 번째 리뉴얼(renewal)사업이 진행됐다. 이 사업에도 여러 작가들의 참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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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방천시장에 있는 김광석길 입구. ⓒ 조정훈


하지만 중구청이 지난달 기존의 벽화와 콘텐츠 등이 최소 3년에서 7년 정도가 경과해 새로운 스토리 확장과 관광객들의 새로움에 대한 수요에 부응한다며 '개선사업 입찰공고'를 내자, 당시의 참여작가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지역이 개발되면서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빗대어 전형적인 '관트리피케이션'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당시 참여작가였던 김병호(화가)씨는 "김광석길은 정해진 사업으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길"이라며 "월세 10만 원을 주고 살던 예술가들이 이제는 다 쫓겨났다"고 한탄했다.

김씨는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도움을 주지 않았을 당시 최초의 벽화들이 가장 정체성이 있고 가장 뛰어난 길이었다"면서 "이 길을 다시 살리려면 그냥 두든지 보완을 하려면 최초로 작업한 작가들과 협의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김씨는 이어 "이 길을 만들었던 상인들과 예술가들은 다 쫓겨나고 지금은 거대 자본이 자리잡고 있다"며 "우리는 이 길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시 붓을 들지 않겠다. 하지만 김광석의 이름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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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조형물을 제작했던 조각가 손영복씨가 대구 중구청의 관트리피케이션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앞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조정훈


김광석길 조성 당시 예술감독이었고 김광석의 조형물을 제작했던 손영복(조각가)씨는 "지금까지의 사랑은 '외사랑'이었나 보다"라며 "지난 2010년 서른 즈음에 젊은 예술가들이 김광석 형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야심차게 뭉쳐 이 길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떠나려 한다"고 말했다.

손씨는 "아스팔트의 열기 속에서도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행복의 문은 중구청에 달려 있다. 이 거리에서 음악가들이 노래를 부르고 미술가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광석길 조성에 함께 했던 (사)인디053과 니나노프로젝트예술가협동조합, 대구민예총, 참여작가들 등 20여 명은 중구청의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관광인프라 개선사업' 입찰공고를 비판하며 즉각 철회와 거버넌스 형태의 운영위원회 설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4일 오후 김광석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 문제를 풀어가기보다는 일방적이고 무분별한 사업 진행을 해 왔다'면서 "심지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월권과 간섭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광석이라는 이름으로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의 감성과 서정성, 예술성을 지키기 위한 예술가들의 자율적 참여방식은 오간 데 없고 예술인들은 그저 용역을 수행하는 '을'로만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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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길 만들기에 나섰던 작가들이 대구 중구청의 '관광인프라 개선사업'의 리뉴얼 사업에 대해 '관트리피케이션'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 조정훈


예술인들은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에 대한 관광인프라 개선사업을 즉각 철회하는 대신 방향성을 재설정하고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과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형태의 운영위원회 설립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대구시와 중구청은 민관 공동연구 형식으로 공정한 거버넌스 매뉴얼 제작과 도심재생과 공공예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작업 진행을 촉구하고 창작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대응 활동을 천명했다.

이들은 중구청의 김광석길 개선사업에 항의하는 표시로 김광석 조형물을 은박지로 포장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더 이상 작가의 작품이 아닌 중구청 소유의 작품이 되어버린 김광석 조형물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지를 퍼포먼스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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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길 만들기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김광석 조형물을 은박지로 감싸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조정훈


이에 대해 중구청은 '개선사업은 김광석길의 기존 벽화와 콘텐츠 등이 최소 3년에서 최고 7년이 경과함에 따라 새로운 스토리 확장과 함께 관광객들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며 강행 의지를 밝혔다.

중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광석 노래와 이미지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벽화리뉴얼, 김광석길 입구와 출구를 효과적으로 안내하기 위한 홍보사인 또는 홍보조형물 조성, 김광석의 대표곡인 '이들병의 편지'를 주제로 한 훈련소로 가는 열차 제작 등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벽화리뉴얼은 기존 벽화 중 작품성이 뛰어나고 인기가 좋은 작품은 보존하거나 재 작화하고 작품의 훼손 정도가 심하거나 선호도가 낮은 작품은 우선적으로 교체할 계획"이라며 "계약방식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작가들은 공모참가자격을 갖춘 콘텐츠 운영업체와 컨소시엄 구성 또는 제작협약체결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석길 #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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