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기증 약속했던 나, 드디어 생명을 나눕니다

포기할 수 없었던 '마지막 기회'

등록 2017.09.08 14:22수정 2017.09.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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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장기기증 신청을 하기 위해서 직접 장기기증 운동본부의 사무실을 찾아갔었습니다. 당시에 장기기증 운동본부의 대표로 계시던 분의 권유로 장기기증을 하기로 결정을 했고, 기왕에 하는 거면 직접 사무실에 찾아가서 궁금한 걸 물어보고 기증을 신청하고 싶었습니다. 대표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담당 간호사님의 안내로 장기기증 신청서에 사인하기 위해 다른 사무실로 자리를 이동하였습니다.


작성을 하기 전에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시던 간호사님을 통해 장기기증은 사후에 기증을 하지만 살아있을 때 기증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장기기증과 골수기증을 했던 건 큰 의미를 부여한 행동이 아니었고, 유전자가 맞을 확률이 워낙 낮아서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그냥 골수기증신청서에 사인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설마 나하고 맞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아파서 내 골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겠어?'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시 골수기증신청서에 사인을 하면서 저는 속으로 '나중에 진짜로 맞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연락이 오면 미안하다고 하고 중단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골수기증신청서 사인을 하고 저는 가끔 신분증에 붙어 있는 장기기증 스티커를 보는 시간 외에는 장기기증이나 골수기증에 대한 생각을 거의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사후에 기증하는 장기기증은 어차피 제가 죽은 다음에 이루어지니까 나하고 큰 상관이 없을 거 같았고 골수기증은 낮은 확률 때문에 저한테 실제로 기증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용기가 없어 놓쳐버린 첫 번째 기회

장기기증과 골수기증을 신청하고 거의 10년 동안 저한테 맞는 유전자가 나타났다거나 장기기증이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기에 스스로 기증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증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던 저에게 첫 번째 연락이 온건 제가 국회의원 비서를 하고 있던 2012년경이었습니다.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오래전에 신청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기본검사를 통해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기증절차를 진행하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연락을 받을 당시에 저는 국회의원 비서를 하면서 선거를 준비하는 시기였고 담당하고 있던 역할이 여러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협회의 연락을 받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선거준비를 하면서 골수기증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주변에서 골수를 기증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많이 아프다는 말에 겁이 나기도 했었습니다. 계속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고 결국에는 전화번호를 바꾸는 방식으로 기증절차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당시에 상황이나 아프다는 말 때문에 겁이 나서 피했다는 것보다 기증절차를 진행할 만큼의 용기가 저한테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저한테 연락을 했던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의 담당자나 기본 유전자가 일치했던 당시의 환자는 얼마나 간절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당시에 조금만 용기를 냈었더라면 생명을 나눌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그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환자의 상태악화로 놓쳐버린 두 번째 기회

용기가 없어서 기증절치를 포기했던 시기를 보내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2017년 4월 초에 기본검사를 통해 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기증절차를 진행하겠냐는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놓쳐버린 첫 번째 기회에 대한 아쉬움, 이전에 한 번 거절한 것에 대한 미안함, 살면서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좋은 일은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냥 검사하고 병원에 가서 골수를 뽑으면 되는 거겠지 라는 마음에 골수기증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피검사, 정밀유전자검사, 2주 동안의 혈압 체크, 건강검진 등의 일정은 생각보다 골수기증을 진행하는 과정이 복잡하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 직장생활을 하던 저로서는 각종 검사를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회사의 배려로 인해 각종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이식이 가능하다는 검사결과를 받고 실제 기증이 이루어지는 일정도 잡혔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배려로 골수기증을 위한 근무스케줄까지 조정이 끝나고 실제 기증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6월 말에 기증을 진행하기로 하고 기다리는 중에 기증을 받을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기증절차가 중단되었고, 며칠이 지나서는 기증절차를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협회 담당자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정말 부끄럽지만, 기증절차를 취소하자는 연락을 받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기증을 진행하는 과정이 복잡하기도 했고, 실제 기증을 위해서는 병원에 며칠 입원을 해야 하고 입원하기 전에 3일 동안 골수촉진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그 주사가 엄청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포기할 수 없었던 마지막 기회

예정되었던 골수기증 절차가 취소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초에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어서 이식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 기증절차를 다시 진행해 줄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증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보내야 하는 복잡한 과정에 부담감, 그 사이에 직장에서 보직변경을 받아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지장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잠시 고민을 했었습니다.

협회의 담당자에게 2-3일 동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골수기증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물어봤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는 못하겠다', '그걸 어떻게 하냐'라는 말을 하면서 저를 만류했었습니다. 근데 희한한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까 더 골수기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기증하기로 했는데, '눈 딱 감고 그냥 하자'라고 마음을 먹고 다시 기증절차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일하고 있는 직장동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근무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으로 일정은 가능하게 되었지만 정작 저를 힘들게 한 건 입원 전에 맞는 촉진 주사로 인한 극심한 통증이었습니다.

입원하기 전에 골수촉진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는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에 일정한 시간에 추출할 수 있는 골수의 양이 있는데 그것으로는 이식에 필요한 충분한 양이 안 되기 때문에 미리 촉진 주사를 맞아서 골수를 추출할 때 충분한 양을 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저는 촉진 주사가 너무 아파서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더군다나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는 여건상 주사를 통해 나타나는 증상들이 저를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첫날 주사를 맞았을 때는 견딜만한 수준이었는데, 3일째 주사를 맞은 이후에는 통증이 심해져서 그냥 서 있기도 힘들고 밤에 잠을 자기도 힘들었습니다. 아프면 참지 말고 먹으라고 진통제를 받았지만, 진통제를 먹으면 혹시라도 기증에 문제가 생길까 봐 먹지도 못하고 온몸으로 통증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면서 제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억지로 끼워 맞추는 거라고 놀리셔도 어쩔 수 없지만, 저한테는 나름 포기를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첫 번째는 그동안 제가 살아오면서 제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사람들도 이렇게 많이 아프고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누가 어떤 상처를 얼마나 크게 받았는지 일일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저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누군가에게 생명을 나눈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잡하고 힘들고 아팠던 모든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오늘 병원에 입원하고 내일이면 실제 기증이 이루어집니다. 신기하게도 내일이 제 생일이라 저에게는 더 뜻깊은 날로 오랫동안 기억될 거 같습니다. ^^
#골수기증 #용기 #마지막기회 #생명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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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오마이뉴스를 통해 좋은 기사를 많이 접했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을 찾고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화, 여행, 음식...등과 관련된 정보를 많이 알고 있기에 가능하면 관련분야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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