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관아파트에서 드러나는 난민의 처절한 삶

[리뷰해외리포트] 2017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3대 미술축제 1편 '카셀 도큐멘타'

등록 2017.09.13 09:51수정 2017.09.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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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베니스비엔날레'와 '뮌스터조각프로젝트'와 '카셀 도큐멘타'가 겹치는 해이다. 이런 기회는 10년 만에 한 번 오는 것이라 기자는 지난봄과 여름 사이 40일간 유럽미술투어를 했다. 그곳에서 본 현대미술의 현황을 1편 '카셀 도큐멘타', 2편 '뮌스터조각프로젝트', 3편 '베니스비엔날레', 4편 '2017년 아트바젤'의 순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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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 도큐멘타 본 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 미술관 전경 ⓒ 김형순


독일 헤센 주 중북부 위치한 20만 인구가 사는 '카셀'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술축제가 5년마다 돌아온다. 이번에 160여 명 작가가 참가했고 예산은 420억 원 정도. 9월 17일까지 열린다. 주제는 '아테네에서 배우기(Learning from Athens)'다.


올해는 10년 만에 '베니스비엔날레'와 '뮌스터조각프로젝트'와 '카셀 도큐멘타'가 겹치는 해라 행사에 더 많은 인파가 북적인다. 등극하는 스타작가와 최근의 미술 동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세계미술계는 이를 예의주시 한다. 그래서 이번 행사를 주류언론은 물론 지방신문, 미술 잡지, 패션잡지, 여성지 등에서도 다 다루고 있다.

'카셀 도큐멘타'와 한국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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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I '진입: 탈-과거시제의 공학적 안무전동' 알루미늄 블라인드, 알루미늄 천장 구조물, 분체 도장, 강선, 전선, 모듈 박스, DMX 레코더 475×423×4506cm 2012 장소: 카셀 구(舊) 화물역사. 2012년 카셀 도큐멘타에 초대받은 작품 ⓒ presse[at]documenta.de ⓒ Documenta 13 Kassel


사실 카셀 도큐멘타와 한국작가와는 거의 인연이 없었는데 지난 2012년 제13회 때는 '양혜규' 작가와 '문경원·전준호' 팀이 동시에 초대되어 반가웠다. 1992년 육근병 작가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사람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무덤에 '눈'을 붙여 사람과도 상호소통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초대받았다.

한국작가가 이렇게 카셀에 초대받기가 힘든 건 한국미술 수준 때문인가 아니면 한국미술이 저평가되었기 때문인가를 묻게 된다. 이 문제가 궁금해 마침 베니스비엔날레에 가장 초대를 많이 받은 '구정아' 작가의 전시에 갔다 그녀에게 이점을 물었더니, 서양에선 한 작가에 따라붙는 평론가, 컬렉터, 후원자, 기획자 등이 우리보다 20배 많단다.

카셀이라는 곳의 장소적 상징성은 크다. 왜냐하면 나치가 금서를 불태운 곳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정신유산을 남긴 책을 없앤다는 것은 정말 야만적인 일이다. 이런 20세기 '분서갱유'를 고발하는 설치미술이 여기 세워진 것은 카셀의 취지와 잘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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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미누진(M. Minujin) I '책의 파르테논(The Parthenon of books)' 2017. 정면과 뒷면 ⓒ 김형순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권력을 악용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제한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소동이 있었다. 이런 역사는 길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국가가 자신의 철학적 교리를 검열하려고 하자 이에 반발한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1세기에도 이런 야만적 행위가 지구촌 곳곳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또한 사실이다.

이런 저항정신을 담은 작품이 바로 '마르타 미누진(M. Minujin)'의 '책의 신전'이다.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을 그대로 따오고 작품사이즈도 1:1 비율로 제작했다. 올 카셀 도큐멘타의 얼굴이 되었다. 10만 권의 금서로 만들어질 예정인데 책 수집은 계속된다. 이 작품에 근접해서 찍은 자료 동영상을 보면 카를 마르크스, 브레히트, 카프카, 성서 등도 눈에 띈다.

이 작품은 '미누진'이 198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선보인 '책의 파르테논'을 재구성한 것이다. 1943년생인 이 여성 작가는 원래는 개념미술가다. 과거 군부독재를 경험한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그녀의 아이디어는 과감하고 기발하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신전이 다 완성되어 다음 주부터 입장권을 소지한 사람에게는 여기 책을 무작위로 돌려준단다.

나치 적폐청산에서 시작된 '카셀 도큐멘타'

카셀 도큐멘타는 과거 유럽을 공포로 몰아간 전쟁이 낳은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치정권이 2차 대전에 저지른 범죄가 낳은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번 유럽의 3대 세계미술축제를 보면서 예술과 문화가 과연 테러공포에 떨고 있는 유럽을 구하고 지구촌의 평화와 공존을 이루게 할 수 있을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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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하케(Hans Haacke) I '모든 사람은 다 민중이다(We all are the people)' 10개국어로 적혀있다 ⓒ 이규정


바로 이런 정신에서 출발한 것이 카셀 도큐멘타다. 그래선가 본 전시장 옆에 설치한 '한스 하케'의 '모든 사람은 다 민중이다'라는 작품이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모든 인간은 다 평등하고, 피부나 종교나 국적 때문에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한스 하케는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백남준과 함께 황금사자상을 받은 독일 작가다.

카셀은 이런 정신으로 출발했기에 모든 진행 과정 역시 민주성과 투명성과 공정성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카셀 도큐멘타의 모든 과정은 까다롭고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예를 들어 예술 감독 선정 하나만 봐도 그렇다.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이 아시아 대표로 8명의 예술 감독 선정위원 중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그녀는 후기에서 이 위원회는 2013년 초부터 모임이 있었고 예술 감독 후보로 5월에 6인을, 11월에 3인을 발굴하고 최종적으로 '아담 심칙'을 선정했단다. 그러니까 본 전시 4년 전부터 제대로 실력을 갖춘 예술 감독을 뽑기 위해 진력한 것이다.

폴란드 출신의 '아담 심칙(A. Szymczyk)' 예술 감독은 2016년 <아트 리뷰지>가 선정한 미술계 파워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위상이 높다. 현재 바젤의 '쿤스트할레' 관장이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전위적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탐구력이 높은 큐레이터로 평가했다.

그는 이번 전시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카셀과 함께 아테네에서 전시를 열자는 제안을 했다. 두 도시의 경계와 차별을 없애고 변화와 변형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문화적 촉진제가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래서 이번 주제도 '아테네에서 배우기'다. 아테네는 서구민주주의의 발생지로 카셀의 관심거리인 인문정신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카셀의 두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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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언덕공원' 안에 있는 '빌헬름언덕궁전미술관' ⓒ 위키피디아


작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이은화씨가 쓴 <그랜드 아트투어>를 바탕으로 카셀 시의 영욕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이은화씨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예술대학에서 순수미술로 석사를 마쳤다).

이 도시가 유명한 것은 본 전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빌헬름언덕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 공원은 1696년 공사를 시작해 약 15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여기 높은 언덕에는 '헤라클레스'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동화작가 '그림형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명소만 있는 게 아니다. 1810년부터 '헨셀' 군수공장이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9군사령부이 주둔한 곳이다. 여기에서 탱크, 군용기, 항공기 등 전쟁무기가 생산됐던 것이다. 그러니 2차 대전 때 연합군 공격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곳은 1943년 연합군의 융단폭격을 받아 잿더미가 된다. 도심의 건물 90%가 파괴되고 23만 인구 중 5만 명만 살아남았다. 카셀은 이렇게 2차 대전 이후 재건한 도시다. 예술로 그런 역사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재도약하려고 몸부림친 것이다.

왜 전시가 아니고 '도큐멘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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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카셀 도큐멘타 메인도록 표지. 카셀은 시대정신의 기록하는 미술전시회라고 해석해도 좋으리라 ⓒ presse[at]documenta.de ⓒ Documenta 14 Kassel


1955년 카셀 도큐멘타를 창립한 사람은 화가이자 카셀 대학 예술대학 교수인 '아르놀트 보데(A. Bode)'다. 그는 '도큐멘타(documenta)'라는 독특한 표제를 달았다. 왜 전시가 아니고 '도큐멘타'인가? 그건 바로 나치에 의해서 왜곡되고 말살된 독일모더니즘 미술을 재확립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꼼꼼하고 충실한 기록과 자료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히틀러가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1937년 뮌헨에서 대규모 '퇴폐미술전'을 열어 '키르히너, 그로스, 딕스, 베크만' 같은 당시 대가들을 112명 작가와 함께 '퇴폐예술가'로 매도했다. 결국 이들 작품 등 1만7000점을 강제 소각한다. 그러니 이렇게 훼손된 독일미술의 기록 즉 도큐멘타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카셀이 '도큐멘타'가 되면서 이 미술전시의 특징은 전시 이상이 되었다. 미술사뿐만 아니라 문헌학, 문화인류학 그리고 문화예술의 담론생산 등이 아주 중요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볼 때 현대미술의 키워드가 바로 이런 '확장개념'이 아닌가 싶다.

카셀 전시가 난해하게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온다. 여기에 출품된 작품을 감상하기가 그렇게 수월치 않다. 작품 속에서는 요즘 이슈가 되는 난민, 젠더, 인종, 전쟁, 테러리즘 등의 문제도 거론된다. 이뿐만 아니라 인류가 처하고 있는 경제, 사회, 종교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용해돼 있다. 이번에 난 현대미술의 접근을 위한 센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다.

누가 카셀을 최고의 전시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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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한 요셉 보이스 모습 Joseph Beuys 7000 Eichen 1982 ⓒ presse[at]documenta.de ⓒ Documenta 7 Kassel


카셀 도큐멘타는 어떻게 단시간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미술행사로 자리매김할 될 수 있었나? 이에 대해서도 역시 <그랜드 아트 투어>를 참고로 소개하겠다.

이 미술행사는 3회까지는 유럽 중심이었고 4회부터는 유럽 이외 나라의 작가도 참가시켰다. 이 행사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제5회 행사 때부터다. 그걸 만든 장본인은 전설적 큐레이터인 '하랄트 제만'(1972)과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요셉 보이스'(1972)다.

하랄트 제만은 당시 68혁명에 영향을 받아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급진적이고 전위적이었다. 회화보다 해프닝, 실험영화, 아트사진 등을 집중시켜 세계미술계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전시를 '발명'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기존의 도큐멘타 방식을 다 바꿨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독일미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요셉 보이스'다. 백남준과 호형호제하며 가까이 지낸 사이였다. 그는 카셀 도큐멘타 100일간 미술관에 매일 나와 강연과 토론을 펼쳤고, 그 결과물로 <100일 강연집>도 출간했다. 보이스는 이렇게 몸을 던져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예술가였다.

그는 1971년부터 독일의 기존정치시스템에 불만을 품고 급진적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주장한 작가였다. 예술과 정치의 경계를 없애려 했다. 그래서 독일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그는 조각을 정치영역으로 확대해 '사회적 조각'이라는 개념을 만들기도 했다.

1982년 도큐멘타에서 그는 또다시 큰일을 해냈다. 전후 콘크리트로 급조된 카셀에 '7000그루의 나무심기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실천했다. 1986년 1월에 그가 타계하자 그의 아들이 이 사업을 이어 완료했다. 그 나무는 지금도 이곳에서 잘 자라고 있단다.

'김수자'과 본 전시장 등 작품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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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I '보따리(Bottari)' Tradition Korean bedcover and used clothes 2005. 뒤로 '쟈니스 쿠넬리스(J. Kounellis)' 작품이 보인다 ⓒ 김형순


이제부터 김수자 작가와 카셀 도큐멘타 본 전시장 작품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수자 작가는 아주 작은 보따리로 만든 우주와 세상을 도시락처럼 싸가지고 다닌다. 뛰어난 발상이자 놀라운 상상력이다. 작가가 서양미술계를 일단 설득시켰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서구인이 볼 때 김수자의 이 작품에 담긴 21세기 정신 즉 유연성, 융통성, 즉흥성, 우연성, 노마드 정신 등에 대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준 셈이다.

그녀의 보따리는 낡은 일상품을 활용하는 '아르테포베라' 미술의 대가인 그리스 출신 이탈리아 작가 '쟈니스 쿠넬리스(J. Kounellis)'의 개념이 전후 문맥 상 잘 맞아떨어져 상승효과를 준다. 나는 이 전시관을 기획한 큐레이터의 높은 안목에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이곳에 와서 뼈저리게 깨닫는 것은 우리가 서양 작가에 대해 정보가 너무 없다는 점이다. 우리도 김수자의 '보따리' 같은 작품을 이해하기 쉽지 않듯이 우리가 서양 작가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나라의 사상, 철학, 문화풍토, 역사적 배경, 경제·사회적 문맥을 다 꿰뚫어 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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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루 오귀베(Olu Oguibe) I '이방인과 피난민을 위한 기념비(Monument for strangers and refugees)' 쾨니히 광장 2017. ⓒ presse[at]documenta.de ⓒ Documenta 14 Kassel


여기서부터는 아래 '슬라이드' 사진을 보면서 감상하면 된다.

'알리토노스(D. Alithinos)'는 손발이 노끈에 묶인 채 신음하는 사람은 형상화했다. 주변에 의자는 쓰려져 있고 녹음기만 보인다.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연상시키고 정치적 암흑기를 대뇌이게 한다. 하긴 우리도 개발독재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순식간에 허물어버리는 사건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또한 그런 상처가 낳은 후유증이 언제나 끔찍한가.

그리고 '자닌 안토니(J. Antoni)'는 배틀 짜는 그리스 율리시스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또 그리스의 요셉 보이스라 불리는 영화감독 및 작가인 '카니아리스(V. Caniaris)'는 목이 없는 군상의 처참한 형상을 시각화해 서늘한 전율마저 흐르게 한다.

'다부(B. Davou)'는 펄럭이는 깃발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깃발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이나 예상 못 할 돌풍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계시록 풍의 작품이다. '레슬러(O. Ressler)'의 작품 '민주주의는 뭔가'는 공감이 많이 간다. 지금 세계는 예외 없이 민주주의가 문제다. 미국의 민주주의마저도 이제 망가지고 있지 않은가.

위 사진은 카셀대상(City of Kassel Awards)을 받은 '올루 오귀베(O. Oguibe)'의 작품이다. 그는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작가로 독립큐레이터이자 저명한 미술이론가이기도 하다. 모든 디아스포라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담긴 글을 돌에 새겨 '오벨리스크'로 세웠다.

난민의 임시주거지를 형상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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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와 K(Hiwa K)' I '우리가 숨을 내쉴 때' 2017. 그 토관 안을 들여다보니 침대며 전기, 심지어 컴퓨터까지 일상품이 널려 있다 ⓒ presse[at]documenta.de/Documenta 14 Kessel ⓒ Documenta 14 Kassel


카셀 도큐멘타는 본 전시장과 말고도 색다른 기법과 내용이 담긴 작품이 많은 '노이에 갤리리(Neue Galerie)'와 과거 귀족들 만찬장이었던 '오랑제리(Orangerie)미술관'과 '도쿠멘타 홀'과 '카셀중앙역' '카를사우어 공원' 일대, '글로리아 극장' 등도 있다.

노이에 갤러리는 가 보지도 못했으나 유튜브로 보니 우리가 금기시하는 에로틱한 작품도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비쿠냐(C. Vicuña)'가 그린 마르크스와 레닌 초상화도 보인다. 여기서는 보기 드문 회화작품이다. 또 해골로 만든 국적 없는 국기에 국경을 넘어 인류공존과 평화를 갈망하는 염원이 담은 작품도 있다.

이제 끝으로 난민의 처절한 삶을 배수관아파트로 비유한 쿠르드족 출신 이라크 작가의 '하이와 K(Hiwa K)'의 '우리가 숨을 내쉴 때'를 보자. 이 작품은 난민의 임시주거지(토관하우스)를 형상화한 것이다. 돈과 힘을 독점한 사람들의 희생자인 난민들이 불안정한 가운데 지구 곳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양산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카셀 도큐멘타는 이렇게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주제를 정치적이나 사회적 쟁점에 종속되거나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자유롭고 평화적인 방식인 아트라는 비옥한 영토에 심어 전 세계에 알리는 소통방식이 역시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이 바로 카셀 도큐멘타를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하는 데 그 기반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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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순

#카셀 도쿠멘타 #김수자 #요셉보이스 #하랄트 제만' #마르타 미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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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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