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중원절, 굶주린 귀신을 위한 축제

[우리가함께한시간-6] 싱가포르에서 만난 고스트 페스티벌

등록 2017.09.25 09:23수정 2017.10.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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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늦겨울, 남편과 함께 회사에 사표를 내고 10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싱가포르에 왔다. 1년간 어학 공부를 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이 연재는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는 젊은 유학생 부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담는다.... 기자말


중원절 싱가포르 고스트 페스티벌 기간, 거리에 음식을 두고 향을 피워 굶주린 귀신들을 위해 제를 지내고 있다. ⓒ 김지나


이상한 날이었다. 온 동네가 연기로 가득 찼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소각로에선 사람들이 불로 무엇인가를 태우고 있었다. 길바닥에는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그릇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음식 앞에 놓인 향은 연신 향내를 내뿜고 있었다.

"그레이스, 대체 저 음식들은 뭐야?"

그레이스와 유모차를 나란히 끌며 길바닥 음식들을 향해 손짓하자 그레이스는 그것도 몰랐냐는 듯이 답한다.

"저걸 지금에야 봤어? 지금 고스트 페스티벌(Ghost festival) 기간이잖아!"

중국에서 중원절로 불리는 고스트 페스티벌은 음력 7월 한 달간 굶주린 귀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한족들은 귀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바치고 향을 피워 제를 지내며 종이돈을 태워 귀신들을 즐겁게 해준다. 한족들이 세운 나라 싱가포르에서 역시 그 전통은 이어진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귀신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읔... 제발, 그레이스 귀신 이야기는 딱 질색이라고!"

"들어봐, 고스트페스티벌 기간엔 말레이시아에서도 거리에 음식을 놓고 제를 지낸단 말이지. 그런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귀신들이 어떻게 음식을 먹는줄 알아?"

"어떻게 먹는데?"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는 게 아니라 음식 앞에 가만히 서서 냄새로 음식을 빨아들인 데."

중국 전통인 중추절은 황량한 벌판과 바다 건너 이국땅인 싱가포르, 그리고 인근 국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도 그 의식이 이어진다. 화교들은 전 세계에 약 18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가운데 90% 이상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떨어져나온 화교들이 세운 국가 싱가포르의 화교 비율이 75%라면, 말레이시아는 전체 인구의 약 29%가 중국계 후손들이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 중 4%가량을 화교가 차지하고 있다. 이 세 국가에 사는 화교들의 특징은 역사적으로 중국 남부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중국 남부 지역의 사람들은 셈이 빠른 것이 특징인데 그만큼 각 국가의 부를 장악하고 있다.

싱가포르 고스트 페스티벌 기간, 굶주린 귀신들을 위해 제를 지낸 후 태운 부적들의 잿더미가 쌓여있다. ⓒ 김지나


화교가 중국이란 한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 나라의 화교를 대하는 정책에 따라 한족 문화나 언어를 유지하는 정도는 다르다. 싱가포르의 경우 고(故)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영어를 모국어로 삼은 후 각 학교에서 모든 교육은 영어로 진행되고, 업무상 서류작업 역시 영어로 이뤄지고 있다. 한족들은 각 가정에서 중국어를 배우며 중국어로 말을 할 순 있지만 정작 한자를 읽거나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세대에는 영어가 중국어보다 익숙해. 중국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10%도 안 될걸."

엄마 모임에서 만난 싱가포르인 케린(가명)은 이어 설명한다.

"예전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중국 없이 비즈니스 하기 힘든 시대잖아. 그런데 싱가포르인들이 한자를 쓰고 읽을 수 없는건 싱가포르의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어."

말레이시아 화교들은 싱가포르 화교보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낮지만 화교학교에서 한자를 익히고 중국 고유문화와 역사를 배운다. 그레이스 역시 말레이시아인으로 화교학교를 나온 후 싱가포르인 남편을 만나 싱가포르 국적을 얻은 케이스다. 그레이스는 말레이시아 화교 정책에 대해 "말레이시아에선 화교 학교에 대해 크게 투자를 하진 않는데 그렇다고 크게 억압하지도 않아. 그래서 돈 많은 화교가 화교학교에 투자하고, 화교들은 고유의 문화나 언어를 유지하고 있어." 그만큼 말레이시아 화교는 한자를 읽고 쓰는 것에 익숙하다. 반면 한족들에 대한 적대감이 큰 인도네시아의 경우 정부에서 화교학교를 폐쇄하고, 한자 사용을 금지했다.

세계 곳곳에 뻗어있는 한족들을 그저 '짱개'라고 비하하며 한 단어로 담기엔 그들을 둘러싼 상황과 처지가 수없이 다양하다. 그리고 지난 19일 고스트 페스티벌 마지막 날, 싱가포르 곳곳에선 그 어느 때보다 더 아찔하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렇게 굶주림에 시달리며 이승을 전전하던 귀신들은 연기와 함께 저승으로 돌아갔다.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한 귀신 몇은 여전히 이승에 남아있을지도.

*참고
정성호(2004) '살림지식총서 060'
https://ko.wikipedia.org/wiki/%EC%9D%B8%EB%8F%84%EB%84%A4%EC%8B%9C%EC%95%84_%ED%99%94%EA%B5%9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18701&cid=42836&categoryId=42836
#싱가포르 #화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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