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그림 차례상' 올린 노동자들, 왜?

[현장] 3일 서울 교육청 앞 합동차례 지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등록 2017.10.03 17:16수정 2017.10.0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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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차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등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3일 합동 차례상을 차렸다. ⓒ 신나리


송편, 포도, 시루떡, 대추, 문어, 잡채가 차례상에 올랐다. 차린 것은 많지만 먹을 수 있는 것도,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차례상 음식은 맛도 향도 나지 않는 사진이고 차례를 지내는 이들은 7일째 단식을 이어가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3일 오후 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시 교육청 앞에 합동 차례상을 차렸다. 500밀리리터 물병 40개가 향과 초를 올릴 받침대로 쓰였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노조원들이 차례로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렸다. 이들은 절을 하거나 묵념을 하며 '그림 차례상' 앞에 모였다.

안명자 전국교육공무직본부장은 "(교육 당국의 꼼수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느라) 조상들에 대한 차례조차 지내지 못하게 된 비정규직 신세가 서럽다"고 말했다.

박금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하 학비노조) 위원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규직 대비 최소 80%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어디 갔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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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차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등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3일 합동 차례상을 차렸다. ⓒ 신나리


협의된 내용 말바꾼 교육부측?

전국여성노조,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등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모인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아래 연대회의)는 지난 달 27일부터 집단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교육공무직인 이들의 사측은 교육부와 교육청이다. 연대회의는 교육부 측의 '최저임금 무력화 꼼수'에 반발해 농성을 시작했다.

연대회의가 주장하는 교육부 측의 꼼수는 통상임금 산정시간이다. 교육부 측은 학교비정규직의 근무시간을 기존 월 243시간에서 209시간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연대회의는 반발했다. 근무시간이 34시간이 줄어들면 임금이 현저히 줄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부 측의 월 209시간은 2018년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사실상 없는 안이다.


현재 학교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월 급여는 평균 150여만 원이다. 연대회의는 기존의 월 243시간에 내년도 최저임금 7530원을 적용해 월 183만 원으로 기본급이 인상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교육부 측의 주장대로 209시간이 되면 기본급은 157만 원이다.

사실 월 243시간과 209시간 논란은 기존에 협의가 이뤄진 부분이었다. 연대회의의 주장에 따르면, 연대회의와 교육부 측은 2017년에 월 243시간을 적용하되 2018년 임금체계개편을 논의하는데 합의했다.

박 위원장은 "본교섭 4차 당시 교육부측과 2018년 임금체계개편 논의를 부칙으로 한 합의를 이뤘는데, 갑자기 교육부측이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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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차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등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3일 합동 차례상을 차렸다. ⓒ 신나리


결국,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곡기를 끊고 거리에 나섰다. 그사이 단식을 이어가던 노조원 두 명이 병원에 긴급 후송됐다. 단식농성 7일 차, 45여 명의 노동자들이 농성장에 남아있다. 학비노조에서 단식에 동참한 이들의 평균연령은 53세다. 이들은 음식을 먹지 않아 약해진 잇몸 때문에 소금으로 간단한 양치만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30년 차 종갓집 며느리는 생전 처음 차례를 지내지 못한 채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이 약속한 비정규직 공약을 공공기관이 모른척 하며 임금을 깎으려 꼼수를 부리면 일반 기업은 더 심할 것"이라며 "모든 비정규직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죽어도 이 농성장에서 죽을 것"이라 강조했다.

#비정규직 #합동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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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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