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여행의 백미는 '이야기 꽃'이었습니다

[포토에세이] 장에서 만난 노년과의 수다, 헤어지기 아쉬워 속내 술술 꺼냈다

등록 2017.10.26 21:17수정 2017.10.2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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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석모도 보문사 앞, 특산물들을 판매하는 할머니들을 통해서 어머니를 본다. ⓒ 김민수


가을햇살이 눈부신 날(지난 20일)이었다. 새우젓 담글 새우를 산다는 명목으로 당일치기 짧은 가을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강화도 오일장, 외포수산시장, 석모도 젓갈시장, 보문사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을날이 어찌나 청명한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일행은 저마다, 여행일정이 없었더라도 이렇게 좋은 날에는 어딘가로 훌쩍 떠났을 것이라고들 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길이었지만, 시장과 거리에서 만난 이들과 풍경들은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던 고아의 마음 한 켠의 외로움을 자극했다.

가을여행에 동행한 분들은 대부분 노년의 삶을 사시는 할머니들이셨다. 어머님이 살아계셨더라면 동생뻘되실 분들이니 내게는 누님들이라고 하기엔 조금 더 윗분들인 셈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어머님 또래의 어머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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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 먹음직스러운 새우젓 값이 비싸다. 중국어선의 싹쓸이 영향이라니 씁쓸하다. ⓒ 김민수


여행의 목적은 새우젓으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혼자서 여행하기에는 버겁고 누군가 동행해 준다면 기꺼이 가고 싶은'이었다. 그리고 노년의 여행이란, 여기저기 찍고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천천히 구경하며 가족을 위해 뭔가를 손에 사들고 오는 재미가 아닌가?

들르는 곳마다 비상금을 털어 이것저것 사지만, 자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줄 것들이 대부분이다. 여행, 여전히 가족들을 위한 장보기가 있는 여행인 것이다. 오랜만에 자신들만을 위한 조금의 사치라는 것은 식당에서의 맛난 식사 한끼 정도였다.

오가는 길에 피어난 이야기꽃을 통해서 여행의 별미는 '이야기꽃'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소소한 이야기부터 거대담론에 이르기까지 넘나들며 자유로이 유영하는 대화, 거기엔 삶의 노련함이 묻어있었다.


"하찮고 낡아버린 것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것인지, 이제야 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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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포수산시장 문득, 저것이 고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잔혹한 시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 겹쳤다. ⓒ 김민수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던가, 아우슈비츠던가, 4.3항쟁이던가, 아니면 생매장당하는 닭이나 돼지나 오리였는가?

이렇게 사람은 결국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감사하기는커녕 늘 군림하고 있는가? 감사하지 못하고, 마치 자기가 주인인 양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을햇살에 말라가는 굴비를 보며 "갑자기 왜 저게 사람처러 보이죠?" 했더니만, "굴비처럼 엮여서 끌려간다는 말 있잖아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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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 외포수산시장 내부에서 바라본 서해, 작은 창으로 파고들어온 가을 햇살 ⓒ 김민수


이렇게 화창한 날인데 무거운 생각, 무거운 말은 하지 않았으면 했다. 다행스럽게 무거운 주제보다는 청춘시절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 추억이 되어버린 시절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공통점은 '다들 한때는 젊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때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알게 되는 요즘이라우. 볼 수 있다는 것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숨쉴 수 있다는 것이, 배고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 모든 것들 하찮고 어쩌면 낡아버린 것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것인지 이제야 알겠소. 그런데 지금도 늦지 않았어. 이전보다 힘들긴 하지만, 여전히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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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강화오일장에서 만난 노점상 할머니 ⓒ 김민수


그랬다. 나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듯이 어머니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 내 나이만큼 혹은 내 나이보다도 어린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도 점점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이게 퇴폐적인 노래인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 다리에 힘이 빠지고 나니 말이야, 그 말이 진리야. 걸을 수 있을 때, 다리에 힘 있을 때 많이들 다녀. 글씨가 희미해지기 전에 책도 많이 보고..."

이젠 이런 이야기들이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고, 깊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도 머지않아 그 나이가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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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김치 강화오일장에서 만난 순무김치 ⓒ 김민수


강화오일장에 들렀다. 뭐니뭐니해도 순무김치가 인기였다. 언젠가 강화도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에 들어갔을 때, 석모도젓갈시장에서 가장 먼저 맛 본 것이 순무였다. 젓갈과 이런저런 농산물을 파는 아주머니가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순무를 깎아 먹기 좋게 썰어 놓았었다.

보통의 무보다 딱딱하고, 배추고랭이에서 나는 맛 같은, 말로 표현하기는 참으로 묘한 맛이었다. 순무김치는 갓 담근 것보다 익은 후 순무 특유의 향이 더 깊었다. 젊을 때는 그 맛이 별로였는데, 입맛도 나이 따라 바뀌는 것이라 요즘엔 특유의 향을 가진 순무, 갓김치 같은 것들이 좋다. 그것도 푹 익어서 시기 직전의 것들이.

입맛이 변하기까지도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으니, 생각이 바뀌고 변화를 이루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겠는가? 무엇보다도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그랬다. 살아 생전에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효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냥 우리 곁을 떠나시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예고도 수없이 하지만, 그런 예고 앞에서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효도할 수 있을 것 같이 착각하다 그냥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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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삶이 그 몸에 새겨진 듯하다. ⓒ 김민수


불효자들이 부모님의 무덤에서 더 많이 우는 법이란다. 불효자였으므로 나는 더 어머님과 아버님을 생각하는 것일 터이다. 괜시리 시장통에서 혹은 거리에서 어머님 또래의 분들을 보면 마음이 짜해지고, 아버님 또래의 분들을 보면 또 마음 한 켠이 아프다. 그렇게 불효자였구나 싶어서다.

석모도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 쉬고 쉬고 오는 길이라도 두 시간를 달려 아침에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서로 공유한 추억들이 더해져 오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리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마음에 담고 있는 이야기들을 술술 꺼낸다. 참 재밌다.

"그려, 여행의 별미는 어디 갔다왔는가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별미지. 정말, 오랜만에 실겉 말하고 웃었네. 입에 거미줄 치고 산 날이 많았는데, 이제 당분간 거미줄 칠 일 없겠어."

그랬다. 여행이란, 장소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1970~1980년대 관광버스를 빌려 장소불문하고 '멀리 멀리~'를 주장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버스가 둥실둥실, 종일 춤을 춰대도 지치지 않던 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조금은 알듯하다.
#강화도 #석모도 #어머니 #노년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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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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