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택한 나는 왜 변호사 등록을 거부당했나

[주장] '종교적 병역 거부자는 변호사 등록할 수 없다'는 대한변협, 아쉬움이 남습니다

등록 2017.11.01 17:50수정 2017.11.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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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4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이행하는 대신 실형을 산 백종건 변호사의 변호사 재등록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가는 시점에서 적절치 않은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사건의 당사자인 백종건 변호사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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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주인공 변호사(실제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를 위해 부산변호사회에서 공동변호인단을 꾸려 변호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처럼 역사는 군사정권 당시 유명무실했던 사법부의 기능을 대한변협이 수행했다고 평가한다. ⓒ (주)NEW


대한변호사협회(아래 '대한변협')는 인권단체로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김병로, 이인, 허헌 등 변호사는 6.10 만세운동, 3.1운동 등 독립운동 사건의 무료 변호를 맡아 무죄를 주장하고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다. 1921년 조선변호사협회를, 1923년 형사변호공동연구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군사독재시절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나섰다. 1960년대에 두 번이나 대한변협 회장을 맡았고, 변협 회장으로서 구속까지 당한 바 있던 이병린 변호사는 인권변호사의 소임을 다하면서도, 변호사회를 통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변호사 개인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변호사회의 힘으로 할 수 있다."

당시 대한변협은 앞장서서 독재정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군부의 탄압을 받았다. 접견을 제한받는 것에서부터 변론을 문제 삼아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변호사 자격을 정지당하기도 했고, 다양한 불이익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들은 멈추지 않았다.

영화 <변호인>도 당시 부당하게 수감된 주인공 변호사(실제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를 위해 부산변호사회에서 공동변호인단을 꾸려 변호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처럼 역사는 군사정권 당시 유명무실했던 사법부의 기능을 대한변협이 수행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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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택한 나는 왜 변호사 등록을 거부당했나 ⓒ 백종건


인권수호 해야 할 대한변협, 그저 '어쩔 수 없다'니

하지만 2017년에는 어떠한가. 나는 사법시험을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연수원 수료 직후 다른 '군미필' 동기들과는 달리 종교적 신념에 따라 4주의 기초군사훈련을 거부했고, 약 6년간 재판을 받으면서 대체복무 제도 도입을 기다렸다. 6년 동안 많은 공익활동과 무료변론을 맡으며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호소하였다. 하지만 결국 도입되지 않았고 감옥에 수감됐다. 수감된 사이에 대한변협은 나의 변호사 등록을 취소했다.


오랜 수감기간을 거쳐 석방된 뒤 다시금 변호사회에 등록을 신청했다. '변호사회의 본질은 인권단체'라는 희망을 가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아래 '서울회')는 헌법과 국제인권규범 그리고 변호사법에 대한 적극적 법해석을 통하여 등록 적격 결정을 내렸다. 이찬희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이 결정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변호사법을 형식적으로 적용하여 등록을 거부할 경우 또 다른 피해(인권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단체는 이를 적극적으로 구제하여야 한다."

다만, 등록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 권한은 대한변협에 있었다. 그리고 2017년 10월 24일, 대한변협은 등록거부를 결정했다. 서울회의 '등록적격' 결정을 뒤집는 처분이었다. 바로 다음 날인 10월 2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였다.

"대한변협의 양심적 병역거부 변호사에 대한 변호사등록거부 결정은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을 무시한 반인권적 결정이다."

대한변협은 '실정법 준수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제출했다. 자신들에게 등록을 허가할 권한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변호사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는 변호사가 될 수 없다'고 한 변호사법 제5조를 근거로 들었다.

법률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의 과정을 마친 자는 변호사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변호사법 제4조 제1호). 다만, 모든 변호사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변호사회에 등록을 해야 한다(변호사법 제7조 제1항). 대한변협은 등록신청을 받으면 지체 없이 변호사 명부에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변호사법 제7조 제4항).

이처럼 변호사의 자격 있는 자가 등록신청을 한 경우 변호사법은 '등록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반면 등록거부 규정의 경우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변호사법 제8조 제1항 : "대한변협은 제7조제2항에 따라 등록을 신청한 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제9조에 따른 등록심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2. 제5조에 따른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자."

즉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라도 등록신청을 '거부할 수 있다'라고 하여 등록거부 여부의 결정을 변호사협회의 재량사항으로 명시했다. 만약 등록거부가 필수적이었다면 법률에는 '등록을 거부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변호사법은 변호사회가 등록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등록심사위원회의 의결 즉 투표'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만약 대한변협의 해석대로 자신들에게 등록거부에 아무런 재량이 없다면, 등록거부에 앞서 투표까지 거치도록 법률이 규정되어 있는 것 자체가 심각한 모순이라고 할 것이다.

이처럼 변호사법은 '등록을 거부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거기에 더하여 등록심사위원회의 투표를 거치도록 규정되어 있다. 즉 현행 변호사법은 재량권이 인정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 대한변협과는 달리, 서울회는 변호사법상 등록을 허가할지 거부할지 결정을 내릴 권한은 당연히 변호사회에 있다고 봤다.

등록심사위원회는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며(변호사법 제12조 1항), 변호사회는 등록거부를 위하여 등록심사위원회에 사건을 송부하더라도, 등록심사위원회가 등록을 결정하면 등록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변호사법 제12조 제2항).

대한변협은 이 사건 등록신청에 관하여 9월 중순 상임이사회를 열어 등록을 받아줄지 등록을 거부할지 논의했다. 김현 대한변협장은 여러 가지로 고민했다고 한다. 김 협회장도 대학생 때 군사독재 및 유신 반대 시위에 나섰다가 6개월 정학 처분을 받아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낙방한 경험이 있다. 즉 신념에 따른 박해를 경험한 당사자였던 것이다.

김현 협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다른 판사님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사법고시 면접 기회를 다시 얻었고, 변호사가 될 수 있었으며, 결국 협회장까지 되었다. 아마 그는 '이번에는 내가 도울 차례가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는 등록심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오래된 이 인권문제에 디딤돌을 놓아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다. 그 날, 등록심사위원회의 결론은 단 1표 차이로 갈라졌다. 단 1표 차이로 등록거부가 결정되었다. 등록심사위원 중 5명이 등록거부 의사를 표했다. 등록심사위원회는 판사 1명, 검사 1명, 변호사 4명, 대한변협의 장이 추천하는 교수 1명과 변호사 아닌 자 2명, 이렇게 총 9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변호사법 제10조) 재적과반수 결정으로 의결한다.

사실 등록심사위원회가 열리던 날, 나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등록심사위원회가 열리던 18층 중회의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탔는데, 다른 두 명이 이번 등록거부 건에 대해 대화했다. 그  한 명은 등록신청을 한 변호사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비난했다. 자신들은 등록신청을 한 변호사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며, 등록신청에 적격결정을 한 서울회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명백한 편견이었다. 대단히, 아쉬운 결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더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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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택한 나는 왜 변호사 등록을 거부당했나 ⓒ 백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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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변호사회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10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원탁회의를 열었다. 2017.10.18 ⓒ 연합뉴스


법원과 헌재의 변화, 대한변협은 사명 다 하고 있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입법적 해결이 시급하다'고 판결문에 분명히 명시했다. 또 헌법재판소 역시 '입법자(국회)는 진지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가적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설사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더라도 법 적용 기관으로서는 양심우호적 법 적용을 통하여 양심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여야'한다고 결정했다.

게다가 이처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관하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만 35건의 무죄판결이 있었다. 현재 전국 법원에는 유죄판결을 하지 않고 변화를 기다리는 건수가 이미 600건을 넘어섰다. 대법원조차 110건에 달하는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변화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유죄판결을 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대체복무제도 도입의 시급함을 강조하고 있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대한민국이 가입한 자유권규약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여러 차례 결의를 통해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당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약속한 바 있고, 문재인 정부 하에 임명된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관, 법무부장관까지도 대체복무 도입을 통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에서도 3건의 대체복무 법안을 발의하였다.

그런데 법적으로 '인권을 옹호할 사명'을 가진 변호사들로 구성된 대한변협이 이러한 '인권 침해' 사안에서 '양심우호적 법적용'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심지어 소속 회원이었던 변호사에 대해서 등록을 거부한다고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현행법상 자신들에게 권한이 없으며,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은 변호사의 책임과 사명에 맞지 않는다. 이러한 결정은 우리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양심우호적 법적용 노력'을 언급한 취지와도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서울회에서 2016년 6월경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한 변호사 1297명 중 74.3%인 964명이 양심적 병역거부의 자유가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답했고, 80%는 이러한 인권침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한변협의 결론은 이러한 소속 변호사들의 여론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번 등록신청은 대한변협이 국내외에 인권단체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선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군사독재 당시 인권을 옹호하고 약자들을 위해 싸우던 대한변협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다시금 그 기억과 역할을 되새겨줄 수 있었다.

게다가 변호사 등록에 관한 권한이 변호사회에게 있고, 그 권한을 통해 소속된 변호사들을 지켜줄 수 있음을 선언하고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등록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법적 권한을 포기하면서까지 등록을 거부하고 빠르게 보도자료까지 배포하는 모습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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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옹호'를 강조하는 대한변협. 이 등록거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 대한변협 홈페이지 갈무리


법무부 이의신청으로도 안 되면 국제사회로

나는 변호사법 제8조 제4항에서 규정된 대로,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제출할 것이다. 만약 법무부에서 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법원에서 이 사건을 심리하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검토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대한변협이 한 등록거부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1980년대에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회계사의 등록신청을 거부한 그리스 정부와 관련 기관에 대하여, 유럽인권재판소는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판결했다. 그 판결문은 교과서는 물론, 인권사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대한변협이 유치에 성공한 2019년 세계변호사협회 연차 총회(IBA Annual Conference 2019)에서 세계 각국 변호사들 앞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현재 세계변호사협회(IBA) 120개 회원국 중 병역거부자를 수감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싱가포르 단 2개국뿐이다.

대한변협은 그 홈페이지에 '협회가 하는 일' 제일 앞 장에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변호사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대한변협은 그 가장 중요한 업무로서 인권 옹호를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주요한 업무로서 국민이 국가권력 등으로부터 기본적 인권을 침해당하는 부당한 사례가 있을 경우 이를 조사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등 국민의 인권 옹호를 위하여 각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양심적병역거부 #대한변협 #서울지방변호사회 #백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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