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꼭 가야 해요? 난 당장 글 쓰고 싶은데" 아들의 폭탄선언

고3 엄마 입시 체험기, 힘든 시간 건너왔을 세상의 모든 고3을 응원한다

등록 2017.11.03 21:01수정 2017.11.0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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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그러니까 아들이 고2 막바지를 보낼 때였다. 순조롭게 학교 생활을 한다고 여겼던 아들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고1 때는 각종 대회나 교내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사교육 없이도 그럭저럭 공부를 해내어 대견했다. 그런데 고2가 되더니 활동도 시들, 공부도 시들, 급기야 2학기 말에는 수업 시간에 걸핏하면 자는 그런 학생이 되어 있었다. 생활기록부에 적히던 갖가지 수상 실적과 양호한 성적이 점차 나빠지면서, 대입을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갔으면 하는 기대도 낮아졌다.


중2 전후로 사춘기가 다 끝난 줄만 알았더니, 고2에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간은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미래에 대한 걱정', '대학 교육에 대한 회의', '군대에 언제 어떻게 갈 것이냐'까지 미리 앞당겨 걱정을 해대니, 부모 속이 편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행히 주변에 조언을 해줄 만한 친구들이 있어서, 아들이 흔들릴 때마다 만남을 권유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예술계 이모 삼촌들, 교육학박사 친구, 고교 교사들. 이런 나의 친구들이 아들을 만나 여러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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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임박한 시험장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지난 2015년 11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 시험장에 앉은 수험생들이 시험 시간이 임박한 가운데 감독관의 안내에 따라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그렇다. 꿈과 현실의 간극.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이러이러한 입시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 그런 조언들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고3이 되면서, 아들은 차분하게 마음을 잡아가는 걸로 보였다. "그래. 고3이면 누구라도 공부한다지. 방황할 겨를도 없을 거야." 남편과 나는 이렇게 말하며 걱정을 덜었다.

아들이 고3이 되고 나서, 학기 초에 열리는 학부모 총회에 나갔다. 오신 분들이 적어 담임 선생님과 잠깐 면담 기회가 생겼다. 담임은 아들이 논술 전형 준비에 매진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역시 고3이 되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남편과 나는 아들의 뜻을 존중하는 편이다. 아들이 철학과에 갈지도 모르겠다고 해도, 속으로는 대체 철학과 나와서 뭘 먹고 사나 걱정하면서도, 본인이 좋으면 해야지 하고 마는 정도다. 논술 준비를 열심히 하고, 또 실력도 있다 하니, 무난히 대학에 들어가겠구나 싶었다. 그 이후는 또 길이 생기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불쑥 말했다.

"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래요. 그것만 원해요."


내가 대답했다.

"누가 하지 말래?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네 맘대로 해. 그런데 대학 가서 하면 되잖아?"
"대학 꼭 가야 해요? 난 지금 당장 글을 쓰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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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그간 읽던 책들 입시가 끝나고 아들이 독서실에 쌓아 놓고 읽던 책들을 들고 왔다. ⓒ 조은미


다 내가 뿌린 씨앗의 결과였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북클럽을 함께 하며, 많은 책을 읽게 했던 것이다. 아들은 어느새 나보다 더 많은 책들을 찾아 읽고 있었다. 종종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작가 이름이나 책 제목을 말했다.

아들의 폭탄선언이 이어졌다. 자기가 원하는 대학의 문예창작과 하나만 준비하겠다고. 수시 6개 대학 지원의 기회와 정시 지원의 기회는 다 버리고, 실기로 들어가는 문예창작과에 올인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순진한 아들이라니. 문예창작과 실기로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주변에서 하는 얘기도 그랬다. 예고 출신들이 수두룩한데, 시 좀 쓴다고 해도 합격 가능성은 작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들을 회유해서, 문창과와 일반 대학 논술 전형 준비를 병행하기로 했다.

힘든 시간 건너왔을 세상의 모든 고3과 부모를 응원하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아들은 긴 추석 연휴 내내 논술학원을 매일같이 가며 꾸준히 공부했다. 여러 대학의 철학과에 수시 원서를 넣었다. 물론 그가 원하는 1순위 대학의 문예창작과도 지원했다. 부모의 우선 순위는 그나마 문창과보다는 철학과인데, 아들의 우선 순위는 문창과였다. 수시 6개 대학 응모는 보험 같은 것이었다.

입시가 다가올수록, 아들의 하루하루를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아들이 학교 갈 때, 나는 아들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씻고 물을 채워주곤 했다. 엄마가 해주는 몇 안 되는 돌봄 행위였다. 물통을 꺼낼 때, 가방 안을 슬쩍 보게 되었다. 문제집은 한두 권 있으나 마나 하고 대개 시집 너댓 권이 들어 있었다. 가끔 넌지시 말했다.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책은 좀 줄이고, 수능 공부를 좀 늘리지…"

아들은 건성으로 '네' 짧게 대답하고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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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문학의숲 행사에서 시낭송 중인 아들 북클럽 문학의숲 5주년 행사에서 아들이 한강 작가의 시를 낭송했다. ⓒ 조은미


10월 중순이 되자, 문예창작과 실기 시험이 있었다. 아들은 데려다주겠다는 걸 굳이 마다하고 혼자 나섰다. 시제가 주어지고 한 시간 반 동안 시를 쓰는 시험이었다. 무난하게 본 것 같다고 했다. 1차 합격 후 얼마 안 있어 면접이 이어졌다. 면접 때도 혼자 갔다. 나도 고3 엄마 노릇 좀 하고 싶은데, 모든 걸 혼자 하니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10월 마지막 날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었고, 아들이 그 명단에 포함되었다.

아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한 곳이니 기쁜 일이었다. 귀가한 아들을 안아주었다. 애썼다고,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이어 나의 질문은 이랬다. "그래도 수능 볼 거지?"

아들은 수능도, 수시 6개 대학 논술 전형도 보지 않겠다고 했다. 원하는 문창과에 합격했으니까. 일고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아들의 입시는 끝났다. 나는 홀가분하면서도 그동안 논술과 수능 준비한 게 아깝다는 생각도 조금 남았다. 어쩌면 남들이 좀 더 쳐주는 4년제 대학에 갔으면 하는 바람이 깔려 있는지 모르겠다.

아들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시인이 되려 하고, 혼자서 치열하게 그 길을 준비해왔던 것이다. 이제 문창과 입학으로 그 첫걸음을 떼게 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아들은 자기의 길을 차분히 준비하는데, 엄마인 나는 내 바람을 투영하여 이런저런 권유를 하지 않았나 싶다. '고3 엄마는 밥만 잘해주면 된다'고 다른 엄마들이 농담처럼 말했었다. 무조건 믿어주었어야 했다.

이제 수능이 보름쯤 남았다. 초긴장 상태로 하루하루 수능을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은 다 나름의 꿈을 안고 있을 것이다. 모두 내 아들의 친구들이다. 힘든 시간을 건너왔을 세상의 모든 고3들을 응원한다. 자녀들을 마음 졸이며 지켜봤을 그 부모들 역시 수고 많이 하셨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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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발제하는 아들 북클럽에서 '유토피아' 발제중인 아들. 아들을 책의 세계로 이끈 것은 나였다. ⓒ 조은미


#고3 입시 #문학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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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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