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장교 출신 신부의 고언 "군종병과 없애야"

[입영부터 전역까지 외전②] 군종장교 출신의 어느 신부님의 메일

등록 2017.11.13 15:46수정 2017.11.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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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자료사진) ⓒ flickr


지난 9월 25일, 신병교육대에서의 종교 활동을 비판하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뿐만이 아니라, 다음 포털에도 게시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만큼 많은 반발도 있었습니다. 특히 종교계에 몸을 담고 계신 분들은 극렬하게 행동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첫줄부터 스스로 신부라고 밝혔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기사 내용 중에 천주교 신부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반박문을 보내셨구나?'

그러나 다음 내용을 확인했을 때, 그 생각은 싹 사라졌습니다. 항의 메일이 아닌 겁니다.

"전 광주대교구 소속 고근석(솔로몬) 신부라고 합니다... 군과 종교 관련 기사 잘 읽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언론인에게 메일을 보내는 호사(?)를 누려봅니다...^^! (중략)

…전 2011년 4월부터 2015년 6월까지 4년간 해군에서 군종 신부로 복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신부가 되기 전, 신학생 시절, 병으로 1998년 3월부터 2000년 5월까지 2년 2개월 만기 전역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 예비군 포함 민방위 2년 차까지 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살아왔습니다...(중략)

…전역을 앞두고, 해군 군종병과에서 원고를 부탁하여 고심 끝에 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군의 군종 제도와 관련하여 제 나름대로 정리한 글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실리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혹시 우리 국군의 군종병과와 관련한 글이 필요하시다면 제 졸고를 보내드릴 의향이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이리 메일을 보냅니다... 내부 고발은 아니고 병생활과 군종 장교로 지내본 사람으로서 군종 제도와 관련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책을 정리해본 글입니다..."

당연히 저는 신부님께 감사드리며, 원고를 부탁드렸습니다. 궁금하시죠? 그래서 공개합니다. 광주대교구 소속 고근석 신부님의 원고!


군종장교 출신 현직신부가 권하는 군종병과를 폐지해야 할 이유, '다종교 사회 인정' 등…

육군 병사로 2년 2개월, 예비군 8년, 민방위 2년, 그리고 재입대하여 해군 군종장교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이제 또 다시 재전역을 준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예비역 군종 칼럼 원고 부탁을 받고 과연 무슨 말씀을 드리고 떠남이 좋을까 며칠을 고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 군이 시행하고 있는 군종장교 축소와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군종병과 폐지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이 제안을 보고 무슨 터무니없고 뚱딴지같은 소리야, 곱게 전역이나 할 것이지 무슨 행패냐 하며 일언지하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분도 계실 거고, 나름 이 의견에 숙고해주실 분도 계실 거라 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제안을 드림은 지금 이 시각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장병들을 위하여 부단히도 애쓰고 계시는 군종장교들의 분열을 조장함이 결코 아니며, 그동안의 군종장교들의 수고와 노력을 폄하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군종 제도가 실시된 지 60여년이 흐른 지금, 현재의 군종장교로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군을 위하여 우리가 정말 생각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지난 4년을 회고하며 내린 결론이 바로 이 제안입니다. 기껏 4년 살아놓고 뭘 안다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역으로 저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군에서 헌신하신 분들이 계시고, 또 그러하실 분들이 계시기에 더더욱 이 의견을 감히 제언하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다종교 사회라는 것을 다시금 직시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헌법에도 종교 자유를 천명하고 있기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적인 조직체라 할 수 있는 군에서 4개의 특정 종단만으로 군종장교 제도를 운용하는 모습은 향후 군에 큰 부담이 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하는 게 제 소견입니다.

…두 번째는 예산 절감입니다. 제가 걱정할 부분은 아니겠지만, 지난 4년 동안 지켜본 바로는 국방비 동결 및 삭감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군종장교 인건비를 비롯한 각 종교 시설 건축 및 운용비 등을 포함한 군종 병과에 해당하는 연간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제 소견으로는 이 예산이라도 확보한다면 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세 번째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장교 정원 확보 및 운용입니다. 해군만 보더라도 영관 장교로 책정된 정원이 대령 1명, 중령 7명을 포함한 21명입니다. 제 사견으로는 군종병과에 영관 장교 정원이 왜 이리 많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군대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합법적으로 무기를 소지하고 전투를 준비하는 조직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병과에 더 많은 인재가 군에 남아 헌신할 수 있도록 우리네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군종장교로써 참다운 미덕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 제언에 대한 대안을 간략히 제시할까 합니다. 바로 그 대안은 지금도 군에서 시행하고 있는 민간인 성직자 추대입니다. (중략) 그 부대 지역 내에 있는 민간 성직자들을 선발, 종교 행사 및 위문 활동과 관련해서 출입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 부대에서 인가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충 상담 같은 경우는 전문 상담관들을 더욱 확대, 배치하는 것입니다. (중략) 분명 허무맹랑하고, 대책 없는 대안일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어떻게든 시도를 해보려 한다면 성직자가 굳이 계급을 달지 않고도 군에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해서 제시해 본 것입니다.

진심이 담긴 군종장교의 원고, 해군 군종병과는 무시했다

이상이 고근석 신부님의 원고입니다.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실제로도 우리 군은 '쓸모가 없는' 장교보직이 많습니다. 있으나 마나한 자리가 굉장히 많죠. 이 원고를 보고 느낌이 왔습니다. 왜 해군 군종병과에서 실어주지 않았는지요. 너무나도 정곡을 찌른 것이죠.

해군 군종병과에서는 틀림없이 신부님에게 '달콤한 덕담'을 원했을 겁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군을 사랑하는 고근석 신부님은 '쓰디쓴 조언'을 주셨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 '입에 쓴 약'인 신부님의 진심 어린 조언은 아무래도 해군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입니다.

해군, 더 나아가 군과 국방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입에 쓴 약'을 달콤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들이 진짜 군을 위한 애정이니까요. 끝으로 고근석 솔로몬 신부님의 원고 끝부분을 공개할까 합니다. 군을 사랑하시는 고근석 신부님의 진심과 용기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지난 4년의 군종장교로서의 생활을 마감하며, 더 나아가 20년 가까운 군과의 연을 마감하며 남기는 마지막 글이자 군에, 특히 함께했던 군종장교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제언입니다. (중략) 성직자라고 한다면 지금 있는 자리에 안주하기보다 시대의 징표를 읽으려 노력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그러한 혜안은 지니고 있지 못하지만, 이제 병력이 아닌 첨단 기술과 장비로 재정비, 재구성하려 개혁과 쇄신을 모색하는 군 안에서 앞으로 군종병과의 위치는 어떠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보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전후방 각지에서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려 자기 자신도 잊고 오늘을 살아내는 대한민국 국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없이 부족하고 미약한 이 제언을 드립니다.

끝으로, 부득탐욕(不得貪慾)을 잊지 마시고,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십시오.

(관련기사: 피자 치킨으로 훈련병 속인 교회, 너무하네요)

덧붙이는 글 광주대교구 고근석 신부님의 약력

1996년 3월 7일 광주 가톨릭 대학교 입학.
1998년 3월 3일 의정부 육군 제306보충대로 첫 입영.
1998년 3월 6일 제20사단 예하 결전 교육대로 배속.
1998년 4월 17일 훈련소 수료 및 제7군단 배속.
1998년 4월 20일 제7군단 직할 제7강습대대 2중대 2소대 2분대 배속.
2000년 5월 2일 만기 전역.
2001년 3월 복학 및 광주 가톨릭 대학교 예비군 중대 편입.
2007년 1월 24일 사제 수품.
2008년 예비군 동원 기간 만료.
2009년 목포시 민방위 편입.
2011년 4월 20일 군종사관 69기로 영천 제3사관학교에 재입영.
2011년 6월 24일 해군 군종사관 33기로 대위 임관.
2011년 7월 동해 해군 제1함대 부임.
2013년 7월 김포 해병 제2사단 부임.
2014년 7월 목포 해군 제3함대 부임.
2015년 6월 30일 전역.

* 현재 볼리비아로 선교활동 파견 중
#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군대 #군종병 #고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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