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재, 문경새재, 추풍령... 왜 고개마다 그토록 한이 맺혔을까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 고갯길에서 불렸던 노래들과 위봉재를 응원하는 나의 노래

등록 2017.11.21 10:35수정 2017.11.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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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 마루에서 두고온 터전을 본다면... 눈물, 이별, 고달픔, 한, 사연…으로 상징되었던 고개에서의 노래. 지나온 길이 보이고 집과 고향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지점에 서게 된다면 장탄식과 신음이 저절로 터져 나오기도 할 것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관련없는 비행기재 정상에서 찍은 사진으로 임실군 산서면과 장수를 넘겨주는 고개이다) ⓒ 김길중


아리랑을 비롯한 민요와 대중가요, 그리고 문학 작품 속에 고개가 등장한다. 노래 몇 곡의 가사를 옮겨보겠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 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충청북도 제천에서 충주로 넘는 고갯길이 박달재요, 그 님이 누구인지 몰라도 울고 넘는 고개였음을 노래하고 있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진도아리랑> 속에 문경새재가 등장한다. 거리가 상당한 진도에서 왜 문경새재가 나오는지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다고 한다. 강원도 일대로부터 아리랑이 불리다가 전국화하면서 따라간 구절이 문경새재를 담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또 진도군 임회면에 문전새재라는 고개가 있었고 그게 잘못 발음되면서 문경새재로 둔갑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이 노래 속의 고개도 눈물의 소재가 된다.

한 곡 더 살펴보자.


미아리 눈물 고개 / 님이 넘던 이별 고개 /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맬 때 /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제목에 담고 있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가사이다.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 어이해서 못 잊는가 망향초 신세 /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비까지 내리니 그 고갯길 넘는데 슬픔이 배가되지 않을까 싶은 <비 내리는 고모령>의 가사이다.

이 밖에 고개를 다루는 노래들은 한결같이 구슬프고 한을 담아내고 있다.

'이화령 고개 언젠가는 또 만나겠지 굽이굽이 울고 넘던 이화령 이화령 고개'(<이화령 고개>),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추풍령 고개>, 배호).

그리고 그 절정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고 저주하는 <아리랑> 속에서 볼 수 있다.

눈물, 이별, 고달픔, 한, 사연….

이런 것들에 엮어지는 게 고개를 대했던 우리 사회의 시선이었다. 고개를 노래할 때 으레 저런 단어들이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떠날 일 없던 농경사회에서 미지의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의 정점이 고개였으니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전쟁과 중요한 사변과 같은 시기의 대치가 있던 곳에 고개가 등장하기도 한다. 우금치와 임진왜란의 배티와 곰티가 그랬다. 수많은 죽음과 삶이 엇갈린 곳이 고개였다. 사연 많은 어느 집안 딸내미가 팔려가며 마지막으로 살던 터전을 뒤돌아볼 수 있는 곳이 고갯길이었다. 우리네가 살아온 게 그랬고, 그 대목에 꼭 등장하기 때문에 고개가 이리 애달픈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위봉재 오르는 길 완주 소양면 송광사에서 동상면 수만리로 이어지는 위봉재. 위봉사를 기준으로 소양쪽은 뱁재, 수만리쪽은 무주령으로 나뉘어 불리기도 했다. 오르막 구간 2.8km에 상승고도 320여 미터에 달해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가 많이 찾는 구간이다. 사진은 테마스페셜 '자전거로 고개를 오르다' 화면 캡처. ⓒ JTV


'위봉재'라고 부르는 고개가 있다.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에서 동상면 수만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이 고개의 옛 이름에 '뱁재'와 '무주령'이 등장한다. 뱁재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에서 썼을 법한 '뱁'에서 유래한, 보잘것없고 쓰잘 데 없는 고개라고 추정된다. 뱁재는 그리 호락호락한 고개가 아니다. 위봉사까지를 '뱁재'라 부르고 수만리 쪽으로는 '무주령', 즉 주인이 없는 고개라고 이름을 붙인 데서 '뱁'이 등장한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나는 '수만리로 넘어가기 위한 고개가 아니라 여차하면 경기전의 어진을 긴급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위봉산성까지 가는, 길의 끝으로 대했기에 뱁재라 붙이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물로 가득한 오지, 동상면 수만리로 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의 역할이 볼품없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뱁재는 무주령과 합해지면서 비로소 온전하게 위봉재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오늘날의 위봉재는 다르다. 기껏해야 해발 350m에 불과한, 오솔길을 통해 오르기 팍팍한 고갯길이 아니라 자동차로 10분이면 넘어설 통과지점에 불과하다. 시대가 그만큼 변했고 고개도 달라졌다. 더 이상 고개가 이별의 장소일 리도, 한 많은 삶을 통곡할 행인의 여정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김동률의 <출발>에 등장하는 언덕을 주목해보면 어떨까 싶다.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호기심 많은 누군가 가볍게 떠나 언덕(고개)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서는 길 속에 등장하는 경쾌함의 대상, 희망의 장소로 고개를 노래해보면 어떨까 싶다. 더 이상 길은 자연에 굴복해 힘겹게 넘어서는 과거의 고개가 아니다.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의지이며, 그 단락에 불과한 고개라 여긴다면 달리 대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대목이다.

여전히 진부한 노래 속의 고개 대신에 오늘의 위봉재를 기려 응원가를 서투르게 써보며 마감하고 싶다. 여기에서 언급한 고개들을 모두 넘어보고서 위봉재를 응원했던 만큼의 마음을 담아 써보고도 싶다.

천년고찰 송광사가 응원하고 있잖아요
조금만 더 힘을 내요 그대
여기서 쉬어도 좋고 조금 더 가서 쉬어도 좋아요
조금만 더 힘을 내요 그대
다 와 가요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힘들었던 만큼이나 벅참을 얻을 거예요 그대
바람을 갈라 내려가는 그대의 뺨에
시원하고 강렬한 나무와 바람이 키스를 해줄게요
그대여 힘을 내고 내달려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대를 응원해요
뱁재는 위봉재가 되었고 이제 주인이 있는 고개입니다
당신이 이 길의 주인공이니까요


위봉재 옆에 있는 위봉폭포 위봉재는 전란시 전주에 있는 경기전의 어진이 옮겨져 보관하게 되어있는 위봉산성을 끼고 있고 완주 9경중 하나인 위봉폭포를 가지고 있다. ⓒ 김길중


덧붙이는 글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자전거 여행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매체인 '전북 포스트'에 동시에 보냈습니다.
#위봉재 #자전거로 고개를 오르다 #뱁재 #무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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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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