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좌판 갈등'

중구청 옥외영업 허용 6개월, 도로점용료에 '휘청'

등록 2017.11.21 18:18수정 2017.11.2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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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 ⓒ 정대희


서울 중구청 앞에서 A(47)씨가 몸에 시너를 뒤집어썼다. 라이터 부싯돌이 불꽃을 일으키자 시뻘건 불이 그의 몸을 감쌌다. 순간이었다. 출동한 소방대원이 황급히 소화기를 들어 불길을 제압했다. 찰나였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목과 귀 부위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청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일은 '분신소동'이란 제목을 달고 짧게 언론에 소개됐다. 하지만 이면에는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중구청과 상인, 상인과 상인간의 깊은 갈등이 있다. 퇴근길 직장인들의 발길을 붙잡는 도심 골목, 근대화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추억의 공간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서울 중구청과 상인의 갈등

"공정하고 평등한 행정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A(47)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서울 중구청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이다.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기도 하다. 그가 목소리를 높인 대상은 "중구청"이었다.

지난 10월 31일, 그는 서울 중구청 가로환경과로부터 한 통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문자를 받았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도로점용 3차 허가 신청안내였다.

"을지로노가리골목에 대한 도로점용 2차 허가기간이 오늘로 종료됨에 따라 내일부터는 옥외영업을 하실 수 없으며, 향후 적발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옥외영업. 흔히들 '좌판'을 펴고 하는 장사를 말한다. 중구청은 지난 5월 지역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 577㎡(174.5평) 한해 옥외영업을 허용했다. 단, 허가 조건 중 하나로 '도로점용료'를 내걸었다.

이게 화근이 됐다. '도로점용료'는 영세 상인에게 부담이 됐다. 가겟세까지 내면, 한 달 꼬박 장사를 해도 남는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도로점용료'라는 빚이 생겼다. 가게가 클수록 유리한 시책이라는 게 A씨의 말이다.

"가게 앞이 넓이 큰 가게들은 테이블을 많이 깔 수 있어 수익이 나는데, 그렇지 않은 가게는 1000원짜리 노가리 팔아 도로점용료도 못 냈다. 앞 가게도 하고, 옆 가게도 해서 어쩔 수 없이 (도로점용 허가를) 신청했는데, 3개월간 4평(13.68㎡) 쓰고 200만원이 넘는 돈이 나왔다. 이게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한 시책이냐. 죽이는 시책이지."         

B 치킨집도 마찬가지다. 2개월간 중구청에 도로점용 허가를 신청했으나 면적이 작아 좌판을 편 날 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많았다. 하지만 도료점용료는 산정방법에 따라 부과됐다.

금액은 6.46㎡(2평)에 68만9750원이다. 지난 13일 만난 B치킨집 상인은 고지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중구청의 '도로점용 허가신청 안내' 문자를 받고도 이번엔 신청서를 안냈다. 헛돈 쓰는 일이어서다.

중구청은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2개월간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17개 업소에 도로점용료로 약 5263만 원을 청구했다.

상인과 상인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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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청이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있는 한 호프집에 청구한 도로점용료 ⓒ 정대희


좌판 때문에 상인간의 갈등이 빚어졌다. 도로점사용료 부담에 일부 업체가 옥외영업을 포기하면서 상인간 사이가 더 벌어졌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17개 업소의 '옥외영업'을 살펴보면 1차 17개 업소, 2차 13개 업소, 3차 8개 업소로 6개월 만에 반토막 났다. C치킨집의 말이다.

"하루는 D 호프집 사장이 가게에 찾아와서는 '왜 도로점용료를 안 내서 남한테 피해를 주냐'고 언성을 높였다. 황당했다. 옥외영업을 허용한 게 중단될 까봐 하는 소리일 텐데, 나는 좌판 깔면 손해만 본다. 나한테 남 생각하라 할 게 아니고, 본인부터 남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좌판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옥외영업 허용 이전에도 도로에서 불법 영업 논란으로 상인간 갈등의 골이 깊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도로점사용료'는 여기에 불을 끼얹은 꼴이 됐다. 좌판을 깔 수 있는 가게와 그렇지 않은 가게로 나뉘면서 옥외영업을 두고 상인들이 둘로 쪼개졌다.

하지만 중구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뾰족한 묘책을 못 찾고 있다. 산정방식에 포함된 요율을 조례개정을 통해 기존 0.05에서 0.02로 낮춘다는 계획만 있을 뿐이다. 중구청 가로환경과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노가리 골목 상인들이 옥외영업을 요구해 몇 가지 허가 조건을 걸고 도로점용 허가 신청을 받고 있다. 문자는 행정 서비스 차원에서 한 것일 뿐, 만료기간에 업소가 직접 신청하게 돼 있다. 구청은 서류가 들어오면, 절차에 따라 허가를 해줄 수밖에 없다. 다만, 옥외영업을 시행하면서 도로점용료 때문에 힘들어 하는 업소가 있어 요율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옥외영업 #도로점용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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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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