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대로 살자" 정주영 회장의 인생 시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⑫ 허허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등록 2017.12.02 20:31수정 2018.01.2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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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대하다(對酒)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낙천 백거이(樂天 白居易)의 <대주(對酒)>라는 시이다. 이 시는 생전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근심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주 음미했다고 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당면한 개인적 현실문제 앞에서는 왜소해지지만, 이 시를 읊으며 마음을 위로하며,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 이명수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와우각상쟁하사(蝸牛角上爭何事)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살거늘         석화광중기차신(石火光中寄此身)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자     수부수빈차환락(隨富隨貧且歡樂)  
허허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癡人)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술을 대하다> 중 한 토막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생전에 걱정, 근심으로 애가 탈 때 이 시를 애송하며 용기를 냈다고 하여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총성 없는 전선이라는 기업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일을 다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 시련에 처했을 때 이 시를 읽다가 호탕하게 껄껄껄 웃으며 힘을 내는 정주영 회장을 상상해 본다.

아버지의 소를 훔쳐 팔아 시작한 장사로 굴지의 대기업을 이룬 정주영 회장의 발자취는 본받을 점이 많다. 학력은 소학교이지만 좋은 책을 찾아 열심히 읽으며 지식과 교양을 쌓았다고 한다. 수많은 독서와 현장 경험이 융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냈을 것이다.

스스로 노력하여 크게 성취한 인물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삶의 좌표가 되기도 한다. 정주영 회장의 어록 중에 "사람은 의식주를 얼마나 잘 갖추고 누리고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얼마만큼 미치면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이 있다. 깊은 철학이 담긴 이 말에서도 걸물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는 비유는 <장자>에서 빌려온 것이다. 달팽이의 두 촉수 중 오른쪽 뿔의 나라와 왼쪽 뿔의 나라가 수시로 전쟁을 하여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내는데, 다투어 얻으려는 바가 극히 보잘것없다는 뜻을 함축한 우화이다.

장자의 상상력은 압도적이며 비유와 은유는 호쾌하고 담대하다. 전국시대 제후국들의 피비린내 나는 영토 싸움을 미물 중의 미물인 달팽이, 그것도 뿔 위의 다툼이라고 비유했다. 우주는 무한하고 끝없는 공간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면 달팽이처럼 미미할 것이고, 100년을 산다고 해도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잠시 스쳐 가는 순간일 것이다. 고작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정도의 짧은 순간을 살면서 웃으며 살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는 뜻이다.


왕은 왜 광대의 말을 따랐나

사마천의 <사기> 열전 가운데는 '골계열전'이 포함돼 있다. 골계(滑稽)란 말이 매끄럽고 익살스러워 웃음을 자아내는 일을 의미한다. 기지와 해학이 뛰어난 인물들은 재치 있는 말재주로 사람들을 웃게 하고 깨우치게 했다. 고대 중국에 연극과 음악, 춤에 능한 예능인을 '우(優)'라는 한자로 표현했다. 광대라는 뜻을 포함한 배우의 '우' 자도 같은 한자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 때 궁중 안에서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우맹(優孟)이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곧 '우맹'은 맹씨 성을 가진 예능인이라는 뜻이다. 본래 노래를 하는 소리꾼인데 언변이 유창하고 풍자와 해학이 뛰어났다.

초나라 장왕은 말 한 마리를 끔찍이도 아꼈다. 기골이 장대한 사나이들은 전쟁터에서 말을 타고 무용을 뽐내던 시기이니 말을 사랑하는 것은 기이한 일도 아니다. 그 애마에게 아름답게 수놓은 비단을 입히고, 화려하게 장식한 침상을 놓아 주었으며, 대추와 좋은 육포를 먹였다. 날마다 배불리 먹기만 하고 움직이는 일은 없자 돼지처럼 살이 피둥피둥 쪄서 일찍 죽고 말았다. 슬픔을 가누지 못한 장왕은 대신들에게 명하여 대부(大夫)의 예로서 장례를 치르라고 하였다.

참으로 황당한 명이었다. 대신들이 앞 다투어 옳지 못한 일이라고 간하자 왕은 노발대발하여 명을 거역하는 자는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신들은 꼼짝없이 말 장례를 치르기 위해 상복을 입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우맹은 궁궐 마당에 엎드려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울었다. 왕이 놀라서 이유를 물으니 우맹이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죽은 말은 대왕께서 몹시 아끼신 말이 아닙니까? 천하에 힘을 떨치는 위대한 초나라 대왕으로서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겨우 대부의 격식으로 장례를 치르라고 하시니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

이 말에 장왕은 기분이 좋아졌다.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반대만 하여 기분이 무척 상했는데, 우맹은 자신의 막강한 힘을 인정해 주고 마음을 알아준 것이다. 장왕은 초라하지 않을 장례 방법을 물었다. 우맹이 대답했다.

"장례는 군주에게 걸맞게 치르도록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옥을 다듬어 관을 짜고, 병사들을 동원하여 무덤을 파고, 백성을 동원하여 흙은 져 나르게 하고, 다른 나라에 외교 사절을 보내서 조문을 오도록 하고, 부장품도 같이 관에 묻고, 묘지기도 새로 뽑는 등 아무튼 최고로 성대하게 치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맹이 간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장왕은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저 속으로 '이놈이 지금 나를 놀리고 있구나!' 하면서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스운지라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내가 그렇게 잘못 생각했나?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고 물었다. 우맹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람의 법도로, 짐승은 짐승의 법도로 처리하시면 됩니다. 가마솥을 관으로 삼고 온갖 양념을 정성껏 하여 사람의 뱃속에다 장사를 지내는 것이 짐승에 대한 최상의 예입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 동서고금의 진리

같은 뜻을 지닌 말이라도 재치와 풍자를 섞어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효과가 있다. 우맹은 화술의 달인이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고단수 화술의 기법이 숨어 있다. 사람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누군가가 반대하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말이라고 깨달아도 금방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하물며 왕의 말이 곧 법인 절대 왕정 시대가 아닌가. 대신들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왕의 비위에 거슬리면 반발을 사서 그 자리에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우맹은 일단 왕의 말을 긍정했다. 잘못을 바로 알려주기보다는 먼저 상대방의 마음에 동조하는 액션을 취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가는 기교가 탁월하다. 우맹은 매우 뛰어난 지혜와 두둑한 배짱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 같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많은 속담과 격언은 웃음이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해왔다. 1970년대 이후 수많은 학자가 웃음에 관한 관심과 임상시험을 시행하면서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웃음이 NK세포를 14%나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우리말로는 '자연 살상 세포'라고 부르는 NK세포는 말 그대로 암세포 등 우리 몸에 해로운 세포나 바이러스를 스스로 찾아서 죽이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뇌는 한 번 웃을 때마다 엔도르핀을 포함한 여러 가지 쾌감 호르몬을 쏟아내는데, '엔케팔린'이란 호르몬은 모르핀보다 무려 300배나 강한 통증 완화 효과를 낸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의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병 치료에 웃음을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웃음을 최고의 의약으로 권한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웃음 치료의 효과가 많이 알려졌다. 웃음을 통해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이겨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웃음에는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이 있다.

사람은 웃을 때 가장 아름답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은 "아름다운 의복보다는 웃는 얼굴이 훨씬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웃는 얼굴은 주변 사람의 기분까지 좋게 만든다. 무언(無言)의 미소가 우리들의 주위를 밝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온화하게 한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300∼600번 정도 웃는데, 성인들은 기껏해야 하루 15번 정도밖에 웃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각박한 세상에서 웃을 일이 별로 없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유머 감각은 참 중요하다. 누구나 꽉 막힌 사람보다 재밌고 유쾌한 사람을 좋아할 것이다.

웃음 강사가 알려준 웃음 명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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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면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다. ⓒ pixabay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는데, 현대에 와서 여러 과학적 실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사실임이 밝혀졌다.

폴 에크먼 박사는 미국심리학회가 인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다. 표정, 몸짓, 목소리만으로 거짓말을 알아차리고, 상대방이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파악해 내는 표정 연구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얼굴에는 표정을 만들어 내는 근육이 42개인데 이 근육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19가지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중에 한 가지만이 진짜로 즐거워서 웃는 것이고 나머지 18가지는 가짜 웃음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의 입술을 당겨 가짜 미소를 짓게 해도 행복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진실이 아닌 것에도 잘 속는다고 한다. 그래서 웃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전환하고 싶다면 한바탕 웃음으로 뇌를 속일 필요가 있다. 진짜로 웃으나 가짜로 웃으나 똑같은 쾌감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에 웃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인간관계의 법칙은 어김없이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가 적용된다. 오는 정이 고우면 가는 정도 곱고, 내가 잘하면 상대방도 잘하게 되는 것은 인심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다.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면 얼굴의 근육을 풀고 밝게 웃으면 된다. 가정에서 부모가 웃어야 자녀가 웃고, 회사에서 사장이 웃어야 사원이 웃는다.

우리 뇌에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라는 특별한 신경세포가 있다고 한다. 거울 뉴런은 다른 행위자가 행한 행동을 관찰하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위를 직접 할 때와 똑같은 활성을 내고, 인간이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게 바로 거울 뉴런 덕분이다. 거울을 보고 웃으면 거울 속의 사람도 웃는 것처럼, 가정에서 부모가 행복하면 자녀가 그 기분에 젖어 든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언젠가 책 출판 문제로 꽤 인기 있는 웃음 강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전문가답게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다. 내 인상이 많이 굳어 보였는지 대뜸 얼굴 스트레칭을 따라 해 보라면서 시범을 보였다. 먼저 '아-에-이-오-우' 발음을 하며 입 주변 근육을 풀고서 '개구리 뒷다리' 하면서 입꼬리를 한껏 올리라고 하였다. 입꼬리가 밑으로 내려가면 심술 주머니가 되는데,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좋아지고 웃는 표정이 예뻐진다고 말했다.

그는 '웃음 명상'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아주 쉽다. 그냥 웃으면 된다. 주변의 사물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웃음 명상의 출발이다. 날씨가 좋아서 고맙고, 비가 와서 고맙고, 바람이 불어도 고마운 것이다. '웃음은 위장의 조깅'이라는 표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온몸으로 크고 길게 웃으면 웃음 세포가 활성화되어 낙관적인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하루에 두세 번 10초 정도 배꼽을 잡고 크게 웃으라는 조언에 따라 산책을 할 때면 크게 웃어 본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지만 자꾸 하다 보니 제법 익숙해졌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면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다.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인간관계도 웃음이라는 윤활유가 들어가면 한결 원활해진다. 웃음이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간은 웃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생물"이라고 했다. 나는 조물주가 선사한 웃는 재주라는 선물상자를 너무 늦게 열었지만, 늦은 만큼 더 많이 웃으면서 살고 싶다.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도 덕을 쌓는 일이다. 일소일소(一笑一少),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지' 하면서 혼자서 빙그레 웃어 본다.
#백거이 #대주(對酒) #인문학적 붓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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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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