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 앞 손 꼭 잡은 두 어른... 저는 살아 내려왔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두 어른에게 보내는 손 편지

등록 2017.12.01 16:11수정 2017.12.0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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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문정현.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고 스승입니다. 두 어른이 온몸으로 길어 올린 깊고 치열한 사유와 삶의 철학을 담은 입말이 ‘대담집 <두 어른>’으로 출판됐습니다. 책은 비정규노동자의 쉼터 ‘꿀잠’(아래)에서 신청하거나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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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두 어른은 부산역으로 향하는 1차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 ⓒ 노순택


35미터 크레인에 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담벼락에 오른 백발의 두 어른도 있습니다. 크레인은 오른 사람은 309일 만에 땅에 내려온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입니다. 담벼락에 오른 두 어른은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부산공장을 달려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문정현 신부입니다.

세 사람의 감동적인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지난 11월 2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대담집 <두 어른> 출판기념회장입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외치는 자'입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노동자집회에서 사자머리를 휘날리며 촛불을 들고 주먹을 치켜 올렸습니다. 거리에서 외친 그의 사자후 연설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남은 자'입니다. 지금도 은빛수염을 휘날리며, 제주 강정마을에서 3800일 넘게 평화미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앞 골고다 언덕에선 매일 그의 절규에 가까운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아래는 출판기념회장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두 어른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쓴 손 편지입니다. 진심은 통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객석에 울려 퍼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어깨를 들썩이고 흐느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면,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께

그해 겨울은 참 추웠습니다.
죄 없는 노동자들 400명을 자르겠다는데
새끼 딸린 애비들 400명을 한칼에 도륙을 내겠다는데
싸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합원들을 목숨처럼 여기던 위원장들은 이미 다 죽었고
그 추운 날 이불을 들고 시청광장에서 노숙을 하던 조합원들.
박창수의 관을 메고 김주익의 만장을 들었던 한 많은 우리조합원들.
내 동지 박창수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나의 동지 김주익이라면 이 상황에서 뭘 할까.
85크레인밖엔 없었습니다.
사다리에 손바닥이 쩍쩍 들러붙는 크레인을 오르던 새벽.
삶도 죽음도 이미 내 것이 아니던 시간.
김주익이 목을 맨 계단을 지나
김주익의 시신이 뉘어있던 삶과 죽음의 경계선 크레인.
희망보다는 절망이 가까웠고
삶보다는 죽음이 훨씬 유혹적이던 공간.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도무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 129일만 기다렸습니다.
129일이 되면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그날만 지나면 내 운명을 내 목숨을 내가 선택해도 될 거 같았거든요.
누군가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말해주길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129일만 기다리는 걸 눈치 챈 사람들이 있었나 봐요.
송경동 신유아 김여진과 날라리들 쌍차 기륭 동지들,
그리고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희망버스라는 게 온다는데
그 전날 공장은 이미 시커먼 용역깡패들이 물 한 방울 셀 수 없을 만큼
둘러싸서 희망버스가 백대 천대가 온다 하더라도
크레인은커녕 공장 근처에도 닿지 못할 거 같았습니다.
공장 담벼락마다 바퀴벌레처럼 새카맣게 붙어있던 무장경찰들과 용역깡패들.
희망버스 타고 온 사람들을 막아서던 무자비하던 폭력들.
크레인 아래 있던 조합원들마저 사지가 들려 나가고
완전히 고립된 크레인.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희망버스가 하늘을 날지 않는 이상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꿈결처럼 담을 넘어오던 사람들.
담쟁이넝쿨처럼 너울너울 담을 넘어 크레인 아래서 손을 흔들던 사람들.
한복입은 백 선생님, 흰수염이 먼저 담을 넘던 문 신부님.
역사의 구비마다 막힌 철벽을 그렇게 맨 앞에서 훌쩍 넘으시던 두 어른.
2차 희망버스 때 빗속에서도 퍼붓는 물대포 앞에서 손을 꼭 잡고 계시던 두 분.
삶이 곧 전선이었던 두 동지.
눈물 젖은 땅을 비켜서지 않았던 친구.
그렇게 철옹성의 담을 넉넉하게 넘어오시던 두 분의 옷자락과 수염을 보며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살아서 내려갈 수도 있겠구나.
뜨거운 물에 목욕도 하고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고 다음 생일을 맞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전 살아서 내려왔습니다.
그때 사다리를 내려주던 우리조합원들은 복직했습니다.
막상 얼굴 뵈면 쑥스러워서 드리지 못한 인사를 이제야 올립니다.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르신 고맙습니다.
온마음을 다해 함께 해주셨던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KTX해고승무원 동지들, 세월호, 강정, 용산, 밀양, 쌍차, 파인텍, 건설, 티브로드, 하이디스, 비정규직 강사노조, 전주택시, 삼성직업병 피해자들, 그리고 한상균 위원장!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대담집 <두 어른>(오마이북 펴냄)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신청하거나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모든 판매수익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위해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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