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백일 맞아 우리 부부에게 선물주겠다는 시어머니

아이를 키우며 두 엄마의 사랑을 천천히 알아갑니다

등록 2017.12.22 08:42수정 2017.12.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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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야외 활동 사진 ⓒ 최다혜


노곤해지는 오후 2시즘이면, 어김없이 큰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온다. 그 날 아이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는 것이다. 이젠 익숙해져서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못 했다. 표정이나 활동 모습뿐만 아니라 옷차림새도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정한 아이, 편안한 내복 차림의 아이들도 있었다.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로 잘 보듬어진 아이도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의 차림새를 요리조리 살피는건, 큰 아이의 옷차림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스러워서 였다.

활동량이 많은 어린 아가들에게는 깨끗하고 편안한 옷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변함없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집을 보낸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사진으로 남는 원 생활에, 초라한 모습으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 옷을 한 벌, 두 벌 사고, 옷이 많은데도 주변에서 옷을 준다고 하면 냉큼 받았다. 나의 이런 노력(?) 덕분에 올해 옷은 옷장 세 칸을 가득 채우고도, 리빙박스 두 박스에 가득 차 있다. 물론 이제는 깨끗하고 편하고 단정한 옷 몇 벌을 입혀 보낸다. 이런 내 행동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연재 100일 선물 말고, 너희 선물을 고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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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사레 쳐놓고 닳도록 입었던 친정 엄마가 사준 셔츠. ⓒ 최다혜


12월 첫 토요일에 둘째아이 100일 잔치를 했다. 거창하지 않게 식구들끼리 모여서 덕담 나누고 맛있는 식사와 선물을 대접하는 정도로 치렀다. 별 생각이 없던 우리 부부와 달리, 가족들은 작은 아이 100일 선물을 어떤 것으로 해줄지 많이 고민이었던 것 같다.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연우(큰 아이 이름), 연재(작은 아이 이름) 두 아이, 이제까지 키우느라 너무 고생 많았다. 연재 100일 때, 너희들 필요한 거 말하렴. 너희들을 위한 선물을 해주고 싶구나."

기쁨과 동시에 머리가 하얗게 됐다. 난 정말 필요한 게 없는데... 어머님께 필요한 물건이 정말 다 갖춰져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어머님은 이미 마음을 굳히셨던 모양이다. 남편과 의논해서 꼭 알려달라고 하셨다.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했다. 남편에게 이래저래 이야기했고, 반응은 나와 마찬가지였다.

"우리 필요한 게 뭘까? 진짜 다 있는데..."

다시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부족한 게 없으니 100일 잔치 때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이야기 많이 나누자고 말씀드렸다.

"연우, 연재는 늘 예쁘고 좋은 옷 입는데, 너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 아이들에게 좋은 거 양보하고 정작 너희는 소박하기만 하구나... 너희들을 위한 선물, 꼭 고르렴."

내가 큰 아이 어린이집 사진을 볼 때, 우리 딸이 행여 초라해보일까봐 속앓이 했듯이, 어머님도 그러셨던 것이다. 눈물이 왈칵 날 뻔 했다. 나와 남편이 우리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때, 어머님은 우리를 걱정하셨던 거다. 엄마니까.

배 아파 낳고, 사랑과 시간으로 정성들여 키운 아이가, 아빠가 되었다고, 또 엄마가 되었다고, 초라해질까봐 마음 아프셨던 것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야, 어머님의, 그리고 나를 기른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큰 아이가 27개월이나 지나서야 어렴풋이 느꼈으니, 그걸 알아차리기까지 시간도 꽤 길었다.

되돌아보니, 이런 사랑을 받은 게 이번만이 아니었다. 첫째가 어릴 때, 엄마랑 함께 강릉에 데이트를 갔다가, 엄마가 다짜고짜 여성복 매장에 가서 셔츠를 한 벌을 사주셨다. 한 벌에 10만원 정도 하는 그 옷을 너무 비싸다고, 옷 충분하니 괜찮다고 아무리 손사레를 쳐도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그때는 왜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엄마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래놓고 엄마가 사 준 그 옷을 1년 내내 닳도록 신나게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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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우리 아들, 며느리! ⓒ 최다혜


요즘은 어머님이 끝없이 전복을 보내주신다. 전복 뿐인가. 모시 송편에 아이스 망고까지, 비워지려 하면 다시 냉동실을 채워주셨다. "힘내"라고 말씀하시면서. "아이 둘 키우는 거, 보통 일이 아니"라며 계속 보내주신다.

일주일에 한 번 올까 말까 했던 엄마도, 둘째가 태어나고 더 자주오셔서 둘째를 안아주신다. 그리고 날 편하게 밥 먹으라고, 등 떠미신다. 엄마도 아기 안으면서 팔이 아프셔서, 자꾸 자세를 바꾸시고, 포대기를 찾으시면서도...

대학생 때, 심리학 교수님께 부모와 자녀는 정신적으로 각자 독립을 해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나도 엄마가 되면 내 아이들 속시원하게 독립시킬 거라고 쉽게 생각했다.

우리 엄마도, 어머님도, 그리고 나도, 오빠도. 우리는 모두 아직 홀로서기를 못 하고 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엄마와 자식 사이의 독립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님께서 해 주신다는 둘째 100일 기념 우리 선물을 결국 정하지 못 했다.

우린 정말 충분히 갖고 있고, 모자람이 없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그래도 제대로 받은 선물이 있다. 어머님도 엄마였다는 걸. 여전히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염려하시며, 먼 발치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그 마음을 깨달은 것, 이게 제일 큰 100일 선물이 아닐까.
#부모님의사랑 #시어머니 #친정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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