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 원 내고 1kg 감량... 헬스장 기부천사 나야 나

[올해 못 이룬 계획] 삼겹살 때문에 '폭망'한 다이어트... 내년엔 꼭 '성공기'를 쓰겠습니다

등록 2017.12.24 20:20수정 2017.12.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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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복부 비만이 있어요. 이건 오히려 전신 비만보다 위험해요. 복부 비만만으로도 심혈관 계통의 병이나 당뇨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지난해 종합검진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담당 의사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종합검진 프로그램 중 대사증후군 검사에서 복부비만, 혈압, 혈당, 중성지방 등 5가지 지표 모두 정상치를 벗어난 상태라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접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퇴근 후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배가 더부룩할 때는 한두 끼 굶곤 했고, 술자리도 조금 줄였다. 그러니 꽉 뭉친 복부가 조금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해 새해에도 어김없이 '복부비만 탈출'을 실천계획 1순위에 넣었다.

하지만 나의 굳건한 맹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특별한 관리와 주의가 필요하다고 겁을 줬는데도, '그래도 내가 워낙 건강하잖아. 설마 큰일은 없겠지'라는 위안 앞에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의 복부지방을 대하는 자세도 점점 관대해졌다. 중년 남성의 볼록한 복부를 향해서는 세상의 시선이 그나마 관대하지 않던가. 뱃살 조금 있다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외모도 꼭 흉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50년 정도 살았으면 '나잇살'이나 '사장님 배'도 조금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들이 서서히 의지를 잠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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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 러닝머신(트레드밀) ⓒ pixabay


여름이 되니 덥다는 핑계로 헬스클럽에 빠지는 일이 속출했다. 트레이너는 지방을 연소하는 빨리 걷기운동을 하루 1시간만 해도 충분하다고 조언했지만, 등록한 지 1주일도 안 돼 나의 굳은 맹세는 무너지고 있었다. 헬스장 등록만 했다 하면 왜 이렇게 회식이 속출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2주 동안 헬스장을 3번밖에 못 갔는데, 큰 맘 먹고 가려 하면 모임이나 회식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었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일한 후 소주 한 잔에 삼겹살을 구우며 인생을 논하는 것 또한 삶의 기쁨 중에 하나 아니겠는가. 내가 그랬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따르자니 바삭바삭한 치킨이 울고, 톡 쏘는 소주를 따르자니 시원한 맥주가 먹고 싶다. 이건 '짜장이냐 짬뽕이냐', '비냉이냐 물냉이냐', '족발이냐 보쌈이냐'에 견줄 만한 행복한 갈등이 아닐 수 없다.

헬스클럽을 탈출해 합류한 회식은 이러한 흐름에 따라 나름대로 코스가 생겼다. 1차는 삼겹살에 소주, 2차는 노래방 가서 배를 잽싸게 꺼트리고 3차는 치킨에 생맥주다. 지금도 삼겹살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누가 그랬던가. '아침은 신선이, 점심은 사람이, 저녁은 귀신이 먹는 것'이라고 했지만, 헬스클럽 문만 박차고 나오면 그런 말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아침은 축적된 포만감으로 굶고 점심은 대충 끼니만 때우다 저녁엔 또다시 폭식이나 과식하기에 십상이었다.

이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니 '천고마비'의 계절이 돌아왔다. 결국, 또다시 2년 전의 전철을 밟고 말았다. 정작 살을 찌워야 할 말(馬)을 대신해, 회식을 빙자한 기름지고 느끼하고 살찌는 것만 찾아다니는 '고칼로리 하이에나'가 된 것이다.

현재 체중의 10% 정도를 우선 감량 목표로 삼았지만, 어느새 나는 헬스클럽 상위 10% 안에 드는 기부 천사가 되고 말았다. 인사치레로 건넨 '삼겹살에 소주 한잔 오케이?'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콜!"을 외쳐대니, 헬스클럽 3개월 등록비용 60만 원으로 얻은 수확은 겨우 -1kg였다.

'고칼로리 폭주'를 멈춰 세운 두 글자

역시 의사의 경고는 괜한 말이 아니었다. 일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몸에 조금씩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전과 다르게 점점 체중이 더 늘었다.

몸이 무거워지니 조금만 무리를 해도 근력과 관절에 이상이 생겼고 배변습관까지 달라졌다. 게다가 눈까지 침침하고 피부 트러블까지 자주 생겼다. 몇 달 만에 생활습관으로 인한 폐해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에 조금만 유사한 병이 올라와도 온통 내 증상인 것 같고 그 생각만 집착하게 됐다. 결국, 최근에는 검진을 받으라는 건보공단 통지서를 받고도 혹시 무슨 병이라도 나올까 봐 무서워 외면했다.

그러던 11월, 갑자기 가족 중 한 분을 하늘나라로 떠내 보낸 일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삶을 추스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분께서는 가벼운 복통쯤으로 여겨 여러 병원을 거치다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검사 결과, 급작스러운 심혈관계 질환이었고 진단 후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그동안 사는 게 바빠 병원과 거리를 두고 사셨고 몸이 아프면 약에 의존하며 검진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걸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요즘 복무비만을 탈출하기 위한 다이어트의 실천 의지가 약해지니 가족들은 서슴없이 독설을 날린다. 어느새 배불뚝이가 되어 버린 나를 가족들은 '아재'라 쓰고 '영감'이라고 읽는다.

내 복부비만이 위험한 이유는 각종 성인병의 원인인 종합선물세트이기 때문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심장이나 뇌졸중, 심근경색, 당뇨 등 여러 가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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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자료사진) ⓒ pixabay


아, 언제까지 다음 날 아침에 먹어야 할 양까지 다 먹고야 헤어지는 '고칼로리 하이에나'가 될 것인가. 혹시라도 내 건강 상태로 인하여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제는 결심해야 한다.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잠깐의 고통은 내일의 행복이라고 했다.

직장생활의 기쁜 순간이나 힘든 순간 나와 함께 해주었던 회식. 그러나 대표 회식 메뉴들이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원인이 된다면 더는 나에게 친근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회식이라고 굳이 먹을 것에 '올인'할 필요는 없다. 회식을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윤활유 역할'로 두고 싶다면, 이제는 메뉴에 지배당하지 않겠다.

최근 나온 <게으른 사람들의 심리학>에서 저자 허용회는 게으름으로 인해 가장 크게 잃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꿈'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는 부담감과 의무감에 휩싸여서 해야 할 것에만 집중할 뿐,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을 미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운동이나 다이어트를 하나하나 미룸으로써 궁극적으로 전반적인 삶 자체를 후퇴시키고 있는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목차를 찾아 대책부터 살펴봤다. 목표에 성공하려면 꿈꾸는 미래를 먼저 상상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게끔 계획을 세우란다. 그러면 확신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했다.

그렇다. 올해는 폭망한 다이어트, 내년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매일 운동하리라. 합병증이 생기기 전까지는 증상이 없어 알아차리기 어렵다. 속옷이 준비돼야 겉옷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보이는 것뿐 아니라 내 안부터 건강해지리라 다짐한다. 또 음주나 부적절한 식습관도 반드시 개선해야겠다. 내 몸이 건강해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충분한 후회를 했고 이미 계획을 세웠으니, 이제 남은 것은 내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신념을 바꾸는 일이다. 내년에는 '다이어트 성공기'를 기대해도 좋다.

잠깐! 송년회를 위해 삼겹살집에 회식 예약전화 거는 김 대리, 거울에 비친 상사의 배를 먼저 생각해주시라.
#계획 #다짐 #다이어트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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