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화재 관련 선정적인 언론보도, 도움 안 된다

[주장] 쉽게 비난의 대상 찾으려 하는 언론 보도가 문제

등록 2017.12.24 13:17수정 2017.12.2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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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행한 가운데, 22일 오후 사고 현장의 모습. ⓒ 이희훈


사랑하는 가족을 허망하게 잃은 제천 화재 사고 유족들은 이 모든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왜 하필 그날 그 사우나에, 그 헬스클럽에 가족을 보냈을까'라고 후회할 것이다.

혹시라도 그 곳을 추천해준 이가 있다면 그 사람도 원망스러울 것이고 그날 그 곳에 가는 것을 막지 못한 본인을 책망할지도 모른다. 가족을 제때 구해주지 못한 소방당국을 향해 원망이 생기는 것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특히 이층 유리창을 빨리 깼으면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그 원망은 더욱더 커지는 듯하다. 그 원망은 정부에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것이고 모두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무엇으로 그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를 객관적으로 살펴, 왜 이토록 인명피해가 컸는지 분석해야할 언론은 다르다. 29명이 사망했다. 일부에서 2층 유리창을 빨리 깼으면 더 많은 이들을 구조했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나는 그 방면 전문가가 아니니 그 부분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결과만 가지고 그날의 현장 쉽게 분석해서는 안 돼

하지만 결과만 가지고 그날의 현장을 쉽게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건 명확하다. 만약 진화에 나선 소방관들이 2층 유리창을 먼저 깨다가 주변 화재에 제대로 대응을 못해 건물 앞에 위치한 LPG탱크가 폭발했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그리고 그 구조 상황은 어떻게 평가될까? 만약 유리창을 깼는데 이른바 역류 현상(Back Draft)이 발생해 이층에 불길이 거세게 번져 문제가 확대되었다면 이 구조상황은 또 어떻게 평가되었을까?

당연히 '화재진압의 ABC도 지켜지지 않았다' 또는 '무리한 화재진압이 대형 참사를 불렀다'라고 평가되었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한 상황이다. 결과만 가지고 절대 그 상황을 평가할 수 없는 법이다. 실제 2012년 부산 노래방 화재에서 역류현상으로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무려 9명이 사망했다. LPG가 폭발해 대형사고로 이어진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긴박한 화재의 진압과정에서 소방관들은 쉴 새 없이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어디부터 화재를 진압할 것인가', '언제 건물 내로 진입할 것인가', '진입은 어디로 할 것인가' 등등. 끊임없이 순간의 상황을 판단해 선택해야 한다. 그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다.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가장 빠르게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받고 경험을 쌓는다. 그리고 그들은 축적된 훈련과 경험에 따라 그 과정을 진행한다. 따라서 일부 상황만을 가지고 이를 쉽게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분석일 수밖에 없다.


이번 화재 사고 진압 과정의 문제점을 찾으려면,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과정에 대해 철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만약 유족들이 그 결과가 이해할 수 없다면 유족 대표도 참여해서 진상 규명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그 결과 명백한 과실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가 책임질 일이 있다면 그 또한 당연히 져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지금까지 보도되거나 알려진 사실만 놓고 보면, 제대로 된 인력과 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소방 구조 현실과 화재에 취약한 건물 등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눈에 띈다.

사고 현장에는 판단에 영향 줄 여러 요소가 늘 존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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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현장 잔해 치우는 국과수 관계자 23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화재 잔해를 옮기고 있다. ⓒ 유성호


<셜리-허드슨 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로도 나온 유명한 미국 비행기 불시착 사건이 있다. 뉴욕의 한 공항에서 이륙한 항공기가 이륙하고 얼마 후 새떼와 충돌한다. 비행기는 엔진 2개가 고장 나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 긴급한 상황에서 인근 공항으로 회항을 시도한다. 하지만 베테랑 기장과 부기장은 그대로 회항을 하다가는 결국 도시 한복판에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어 허드슨 강에 비상 착륙을 시도한다.

다행히 이들의 판단은 옳았다. 비록 비행기는 강에 가라앉았지만 승객과 승무원들은 모두 무사히 구조된다. 하지만 미국 연방교통 안전위원회(NTSB)는 조사과정에서 공항으로 회항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며 기장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기본 전제가 잘못되어 있다. 바로 인적 요소를 배제한 시뮬레이션이었다.

시뮬레이션은 새떼와 부딪히고 바로 공항으로 회귀를 시작하면 안전한 착륙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새떼와 부딪히면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해야 하고 어느 공항이 가까운지도 확인해야 한다. 비행높이와 건물 상황 등을 보고 무사히 회항이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도 해야 한다.

당연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긴박한 사고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요소를 확인해야 하고, 이로 인해 불가피한 시간 지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연된 시간을 넣은 뒤 다시 시뮬레이션을 했을 때 회항이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번 제천 화재가 왜 이렇게 큰 인명피해를 낸 것인지는 명확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이런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와 별개로 유족들이 느끼는 여러 가지 분노와 회한 그리고 고통은 국민 모두가 위로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만을 가지고 섣불리 비난의 대상을 찾으려 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국민의 한사람으로 매우 분노할 수밖에 없다.
#재천 화재 #소방당국 #역류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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