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유' 기적 일궈놨더니 국가가 265억원 '꿀꺽'

[서산개척단⑩] 폐염전부지 농지로 개간한 노력, 다 빼앗겨

등록 2017.12.29 15:58수정 2018.01.1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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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한 박정희 정권은 부랑자, 고아들을 충남 서산에 가뒀습니다. 바다를 막아 땅을 일구게 했습니다. 이들과의 강제 결혼을 위해 부녀자도 끌려왔습니다. 보상 대신 그들 앞에 놓인 것은 20년 상환으로 갚아야 할 빚 뿐. 대부업자는 국가입니다. [편집자말]
"아니 시불. 내 땅 임대료를 내라자녀. 안 냈어. 결국 최고장까지 날라오더라고. 나중에 남들도 다 내고 하더라고. 나도 별 수 있나... 정부가 하는 게 도대체 뭐여. 정말 개판이여."

내 땅을 내 돈 주고 산 얘기가 나오자 정영철(76)씨 입에서 욕지거리부터 튀어나왔다. 서산개척단에 끌려와 강제노역해서 받은 땅을 피로 일군 정씨의 두 손에 남은 건 20년에 걸쳐 분납금과 이자를 내라는 '국유재산 매매계약서' 뿐이다.

내 땅이라 믿게 한 가분배증은 단숨에 휴지조각이 됐다. '자활지도사업에관한임시조치법' 시행령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관련기사 : "칼만 안 들었지, 정부가 50년 동안 강도짓 한 거야")

"뺏어갈 바엔 개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때 했으면 '에이 몇 년 동안 속았구나' 하고 별로 억울하지도 않았을겨. 이건 완전 옥답을 다 만들어 놓으니 임대료 내라, 변상금 내라, 돈 주고 사라. 국민을 상대로 나라가 사기친겨."

힘 없는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힘 있는 국가는 앉아서 돈을 벌었다. '국유지'니 임대료를 내고 쓰라 했다. 내지 않으니 '변상금'을 내라 했다. 그러더니 결국 돈 주고 '내 땅'을 사라고 했다.

임대료를 내지 않겠다고 버틴 이들이 지불한 변상금만 8억 6425만 원이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내야 했던 임대료가 8억 4000여만 원이다.
내 땅을 내 돈 주고 사야했던 매매 대금은 247억 4000여 만 원에 이른다.

이 비극에서 득을 본 자는 오로지 나라뿐이다. 땅 값을 매기는 데 있어, 개척단원들의 강제 노역, 황무지를 옥답으로 만든 10여 년 노력은 전혀 책정되지 않았다.


충남 서산시 '양대·모월지구' 국유지 263만 8884㎡. 국가는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 낸 사람들의 역사를, 그 행간을 모두 지워버렸다. 결국 국가는 폐염전을 손 하나 대지 않고 개간하는 '기적'을 행한 것이 됐다.

지워진 사람들... 국가는 철저히 이용했고 무참히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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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씨가 '국유재산 매매계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지워진 행간 속에는, 개척단원들로부터 '가분배증'을 사서 땅을 일군 이들도 포함돼있다.

김세중(72)씨가 그러했다. 김씨는 1968년 윤아무개씨에게 28만 5000원을 주고 '가분배증'을 샀다. 김씨의 부모님과 김씨 내외, 형제 자매 5명이 오롯이 매달려 10여 년간 땅을 일궜다. 땅은 그들에게 '희망'이었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밥 먹고 살 수 있으면 그 이상 바랄 것도 없었다.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벼가 자랄 수 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 이어진 그의 노력은 정씨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냥 원래 바다 바닥 형태 그대로였어요. 여기는 산이고 저기는 푹 꺼져있고. 높은 데 흙을 퍼서 낮은 데로 옮기고, 그걸 세숫대야에다 퍼 날랐어요. 이쪽 끝에서 저쪽까지 100m인데 하루 종일 다져도 표도 안나요. 그렇게 내 일생을 바쳤는데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매해 3월 3일, 김씨가 나라에 빚을 갚아야 하는 납부기한이다. 돌아오는 2018년 3월 3일에는 땅 값과 이자로 922만 원을 내야 한다. 2034년까지, 그는 나라에 빚을 진 빚쟁이로 살아야 한다.

억울함에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지만 줄줄이 패소했다. 법은 가난하고 못 배운 이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사건 토지는 폐염전부지를 개간한 것에 불과하다."
"가배분 조치는 그 분배에 관한 근거법령 없이 이루진 셈이 되어 무상분배로서의 효력을 가질 수 없다."
"개량비 공제에 관한 구 국유재산법시행령은 정당한 사유로 점유하고 개량한 자에게 당해 재산을 매각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규정이므로 이 사건에서는 이를 적용할 수 없다 할 것이고 달리 변상금을 부과함에 있어 개량비를 공제하거나 할 아무런 법률상의 근거가 없다."
"원고들은 국유재산의 사용·수익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국유재산을 점유하거나 이를 사용·수익한 자다." - 변상금부과처분취소 관련 대전지방법원 행정부 판결, 2006년 5월 17일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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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인지면 모월리 일대, 개척단원들이 개간한 땅의 모습이다. 왼쪽은 1968년 항공사진, 오른쪽은 1977년 항공사진이다. 10년 사이 땅이 반듯하게 정리됐음을 알 수 있다. ⓒ 영화 <서산개척단>(가제) 갈무리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았다. 다행히도, 권익위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한청소년개척단의 수용시설은 근로기준법상 노임의 통화지급 원칙에도 불구하고 법적 근거 없이 양곡으로만 노임이 지급되었다. (중략) 이주 정착과 자조근로 명목의 노력동원 과정에 상당한 인권유린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2011년 국민권익위 의결 중

개척단원들의 강제노역과 '내 땅'인줄 알았던 이들의 개간 노력이 인정됐다.

"상당기간 노동력을 제공해 폐염전부지를 농지로 개간해 이득이 생겼는데도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민원인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고 국가가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개량비를 뺀 금액에 대해 장기분할상환 방식으로 불하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2011년 국민권익위 의결 중

즉, 폐염전을 논으로 바꾼 개간비라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권고는 권고일 뿐이었다. 국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김세중 : "개간비라도 다오, 버려둔 땅을 평당 5만 2000원짜리는 만들어놨으면 그 대가를 달라는 거잖아요. 근데 논값은 내라 그러고 개간비는 못 주겠다잖아요. 정부는 손 안 대고 코 푼 거예요."
정영철 : "정부 관계자 붙들고 얘기하면 우리한테 대가를 줘야 한다고 그려. 근데 법이 없댜. 그래서 못 준댜. 아니 법을 사람이 만들지 짐승이 만드냐고."

'국가에 의한 강제수용'과 '중대한 인권 침해'는 이미 공식적으로 인정 결정이 난 바 있다.

2006년 김아무개씨는 자신의 형이 대한청소년개척단에 강제 수용됐고 군인이 쏜 총에 사망했다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2010년 진실화해위는 '일부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강제 수용 부분은 인정하되 총상은 진실규명불능 결정을 내렸다. 강제수용에 대해 진실화해위가 내린 권고는 '사과'다.

"국가는 5.16 군사정변 이후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하여 일부 개척단원들을 강제적으로 수용하여 노역하게 함으로써 중대한 인권을 침해한 점에 대하여 진실규명대상자 김OO 등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 2010년 진실화해위 상반기 조사보고서 중

그러나 그 누구도 이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국가가 이들을 외면한 사이 김씨의 한은 깊어져 가고 있다.

"우리 아버지도 76세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더 살아 뭐하겠나 그런 생각밖에 안 들어요. 우리가 잘못했다고 방망이 두드린 재판관놈들 원망스럽기 한이 없어요. 제대로 처리 안 해준 서산군수도 직무유기죠. 내가 할복해서 죽어버리면 그제야 이 문제가 알려져서 사람들이 해결해주지 않겠나 그래요. 이런 허드레 고민만 하니 밤에 잠이 오겠어요.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어요."
#서산개척단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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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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